겨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일단 하나부터 명확히 하고 시작하자. LGB 커뮤니티에서는 바이/팬인 사람의 비율이 가장 많다
미국의 통계이므로 한국의 실정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바이섹슈얼이 LGBT커뮤니티 내부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확실하다. 또한 미국의 경우 바이섹슈얼은 LGBT 역사에서도 큰 기여를 했다. 일례로 “프라이드의 어머니”라고도 불리우는 브렌다 하워드는 스톤월 항쟁의 1년 기념을 위해 처음으로 행진을 준비했고 현재 6월에 전세계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행사의 기본을 만들었으며, “프라이드”라는 개념을 가시화했다. 다른 예로 1977년 심리학자이자 바이섹슈얼 운동가였던 앨런 록웨이는 동성애자 권리 법령을 데이드 카운티 플로리다에서 주민투표에 붙였는데, 이는 미국 내 성공적인 동성애자 권리 관련 투표로는 최초였다. 전(前) 미스 아메리카이자 오렌지 주스 관련 대변자였던 아니타 브라이언트가 굉장히 호모포비아적인 ‘우리 아이들을 구하세요’ 캠페인을 벌이자, 록웨이는 플로리다 오렌지 주스에 대한 국가적 불매운동을 선언했고-이것은 호모포비아에 대응해 "게이콧(gaycott)"이라 불렸다- 이에 따라 플로리다의 시트러스과일의원회는 브라이언트의 몇백만달러 계약서를 취소한다.
1980년대에는 미국 내부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바이섹슈얼 집단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70년대와는 달리 많은 여성들이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섰다. 또한 80년대 미국은 바이섹슈얼의 권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집단도 많아졌다. 예를 들어 1987년 워싱턴의 ‘게이와 레즈비언 인권을 위한 행진’에는 75명의 바이섹슈얼들이 참가했다. 이는 <바이섹슈얼 운동-우리는 가시화 되었는가?> 라는 글로 이어지고, 처음으로 미국 내 바이섹슈얼 단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가시화 되었는가? 1987년 던져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바이섹슈얼리티는 지속적으로 지워지고 하나의 과정으로 취급당한다. 최근 한국에서 f(x) 엠버의 ‘보더스’ 뮤직비디오가 발표될 당시, 차별적 발언을 하는 팬들 중에서는 ‘엠버가 레즈비언/FTM 게이인건 안되지만 바이섹슈얼/팬섹슈얼인건 괜찮다’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즉 바이섹슈얼리티/팬섹슈얼리티는 그 자체로 덜 위협적이고 언제든지 이성애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렇게 바이섹슈얼들이 투명취급 당하는 것은 바이섹슈얼 커뮤니티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2011년에 샌프란시스코 인권위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바이섹슈얼에 관한 연구는 이들을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바이섹슈얼들만을 위한 조사가 어렵고, 역사적으로 바이섹슈얼들이 공헌한 일들은 지워지며, 활동단체에서도 지워지는 일이 많다.
바이섹슈얼리티의 정의를 살펴보자. 몇 가지 다른 정의 중에서도 통용되는 것은 ‘남자와 여자 둘 다에게 성적 이끌림을 느낀다’는 것이다. 고루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성별이분법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에나 쓸 수 있던 개념이고, 지금은 새 개념이 필요한 때다. 영국에서의 바이섹슈얼 그룹인 BiUK와 함께 만들어진 Bisexuality report에 따르면 ‘바이섹슈얼리티는 하나보다 더 많은 젠더에게 끌림을 느끼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정의가 ’모든 젠더에게 끌림을 느끼는’ 팬섹슈얼리티의 정의와도 차이 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바이포비아의 예로는 무엇이 있을까?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의 LGBT 리소스 센터는 바이포비아 유형에 대한 세세한 목록을 적시하고 있는데, 아래의 목록은 그 중 일부일 뿐이다.
-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이 헤테로섹슈얼 혹은 호모섹슈얼이라고 생각하는 것
- ‘반대’의 젠더를 가진 사람과 사귈 때는 헤테로섹슈얼, ‘같은’ 젠더를 가진 사람과 사귈 때는 호모섹슈얼로 정체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 바이섹슈얼들은 그저 정체화가 덜 된 거라고 생각하는 것
- 바이섹슈얼들이 당신의 성적 판타지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 바이섹슈얼들이 바이섹슈얼 이외의 다른 정체성으로 패싱하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 바이섹슈얼들이 ‘다른’ 젠더의 사람들과만 진실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 바이섹슈얼들은 신뢰할 수 없다고 믿는 것
- 바이섹슈얼들이 ‘이성애적 관계’에서 얻는 이득을 위해서 선택한다면 ‘이성애적’ 관계만을 취하리라고 믿는 것
- 바이섹슈얼들이 ‘바이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것이 유행’하기 때문에 바이섹슈얼이라고 커밍아웃한다고 생각하는 것
- 바이섹슈얼리티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 바이섹슈얼들은 그저 혼란스러워하는 것뿐이라고 믿는 것
슬프게도 바이섹슈얼들은 이성애자 집단에서도, 성소수자 집단에서도 이런 바이포비아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바이섹슈얼들은 바이섹슈얼 커뮤니티 내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가 있음에도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 2010년에 행해진 National Intimate Partner and Sexual Violence survey에 따르면 바이섹슈얼들이 이성애자나 동성애자에 비해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비율이 높다. 또한 위의 샌프란시스코 인권위에 의해 나온 “Bisexual invisibility: Impacts and Recommendations”라는 조사에 따르면 이성애자나 동성애자에 비해 자살시도율도 높았으며 바이섹슈얼 여성의 경우 절반이 강간 생존자였다.
자료 출처 _ Bisexual Resource Center
자료 출처 _ Amplify a project of Advocates for Youth
Bisexual Resource Center의 Bisexual Health Month에 행해진 연구조사에 의하면 바이섹슈얼 청소년 여성이 성폭력을 경험했을 확률은 레즈비언들의 2배였다. 또한 장시간 연구조사 결과 다른 모든 집단에서 자살시도율이 줄어들었는데 바이섹슈얼들만 자살시도율이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관련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바이섹슈얼이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얼마나 심각한지가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고유한 이슈들이 있을 것이고, 엄연히 존재함에도 이에 대한 연구는 왜 진행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바이섹슈얼은 여전히 커뮤니티 내부에서 지워지는 존재로 취급된다. 가시화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데다, 지정성별 여성 바이섹슈얼의 경우 포르노의 소비로 인해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호모포비아적 이성애자들에 의해 ‘덜 위험한’ 집단처럼 취급된다. ‘인간은 한가지 성별에만 끌림을 느낀다’는 명제를 부수는 것이 바로 바이섹슈얼/팬섹슈얼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이섹슈얼은 지워지는 투명한 집단이 아니다. 바이섹슈얼도 저마다의 특수성이 있고, 하나의 정체성으로써 엄연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작년 퀴어 퍼레이드에서 호명된 것은 레즈비언, 게이, 그리고 조각보 얘기가 나오면서 비로소 트랜스젠더가 나왔을 뿐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성소수자 내부에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바이포비아를 종식시키는 것은 어떨까.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을까.
참고자료
http://williamsinstitute.law.ucla.edu/wp-content/uploads/Gates-How-Many-People-LGBT-Apr-2011.pdf
http://www.binetusa.org/bihistory.htm
https://bisexualresearch.wordpress.com/reports-guidance/reports/thebisexualityreport/
https://lgbt.ucsd.edu/education/biphobia.html
http://sf-hrc.org/sites/sf-hrc.org/files/migrated/FileCenter/Documents/HRC_Publications/
Articles/Bisexual_Invisiblity_Impacts_and_Recommendations_March_2011.pdf
http://bihealthmont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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