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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

침묵하는 다수는 카운트되지 않는다? - <동성애・동성혼 문제, 어떻게 봐야하나> 현장르포

by 행성인 2015. 10. 8.

 

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아침부터 <동성애・동성혼문제, 어떻게 봐야하나> 토론회 소식이 공유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탈동성애, 반동성애 토론회가 개최되는 요즘인지라 주변 지인들도 이제는 귀찮다고 자조한다. 그래도 한번쯤은 잠입 같은걸 해보고 싶었다. 매번 '종교'와 '학부모' 이름들이 난무했던 토론회에 비해 이번 주최는 바른사회시민회의, 자유와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라는 것도 신선했고. 그래봐야 그 밥에 그 나물, 대부분 직함만 돌려쓴 것 같은 익숙한 구성원들이지만.

 

토론회는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진행되었다. 자리를 잡고 자료집을 살피는데 목차에도 종교는 빠져있다. 그동안 반동성애 논의가 종교적으로만 접근된데 대한 반성일까? 동성애를 '종교적으로만 접근하지 말자'는 취지를 거듭 강조하는걸 보면 그간 보수기독교 반동성애세력들이 배설한 허무맹랑한 동성애혐오가, 광장에서 선보인 '종합예술'이 어떻게 조리돌림 당했는지 저들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주섬주섬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시작 즈음엔 60명가량의 참가자들이 토론회장을 채웠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분과언어들로 채우겠구나 싶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발제와 토론문의 공통적인 주장은 그리 낯설지 않다. 미리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동성애에 대한 정당한 과학적 주장이 필요하다.

- 기존의 종교적 접근 말고도 학제간 담론형성이 중요하다.

- 차별금지법, 동성혼은 이후 근친상간, 수간과 같은 도덕붕괴를 초래할 마중물이므로 반드시 반대해야한다.

- 동성애 반대를 위해서는 동성애 운동집단처럼 연구소와 재단을 설립하고, 캠페인 등을 통해 공론화해야한다.

 

주제발표의 첫 주자는 민성길 연세대 정신의학과 명예교수였다. (참가자들은 그를 반동성애담론의 거목으로 추대하는 인상이다. 패널 중에는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감상도 있었다.) 그는 여러 인용 자료들을 들며 동성애 '찬성논리'를 비판한다. 일테면 일반 인구 중 동성애자들의 수가 많다든지,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처럼 정신상태가 건강하다든지,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들. 이런 주장을 우리가 언제 했나 싶지만, 그는 해외의 자료들을 근성있게 인용하며 비판해나간다.

 

지식이 짧은 탓에 모든 근거자료의 출처와 시시비비를 따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인용 자료의 해당국가에서 일어나는 성소수자이슈의 대세를 부정할 수는 없었을 터. 그의 논조는 일견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가령 서구의 성소수자 담론은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일개 잡지에 실리면서 여론이 형성된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도, 전환치료나 동성애 후천설 등의 연구는 논문을 학회지에 발표하지 않고 저서로만 남겨 여론형성이 어려웠다고 평가하는 관대함은 말인지 막걸린지 모르겠다. 노학자 특유의 고집이 묻어나는 패턴이다. 전환치료의 정당성을 설파하고자 발제 중에 본인이 탈동성애 당사자라고 은연중 굳이 자기고백을 하는 지점은 듣는 이로 하여금 복잡한 감상에 젖게 했다.

 

이어서 이태희 미국변호사와 이용희 교수의 발제가 있었다. 이들은 평소 논조로 항상 해오던 이야기들을 반복한지라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이나 이야기하고싶은 지점은 없다. 동성애의 실체를 말하자면서 성폭행으로 상처입은 동물사진을 보여주는 저의가 무엇인가. 다만 이용희교수가 발제 후반 던지는 제안들은 자못 흥미롭다. 건강한 성윤리 확립을 위한 6가지 방안이라고 하는데,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동성애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성과학연구소 설립

- 동성애의 폐해를 바르게 알리고 홍보할 수 있는 국민 교육, 계몽, 홍보전문기관 설립

- 동성애 합법화 관련 법적 소송에 대응하는 법률단 조직

- 언론, 미디어, SNS활용을 통한 역량강화와 인권보도준칙 폐기

- 동성애/성중독 치유 프로그램 개발

- 동성애 비합법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 조직

 

 

‘연대’와 ‘기금마련’은 사회운동의 문장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익숙할 풀뿌리운동의 단어들이다. 새삼 우리의 가치가 헛되지 않았음을 여기 반동성애의 도가니에서 깨닫는다. ‘침묵하는 다수는 카운트되지 않는다. 요란하게 소리치는 소수가 국민 여론을 이끌어갈 때가 많다.’ 는 문장에 이르면 콧방귀가 샌다. ‘침묵은 죽음’이라는 액트업의 생존구호가 저렇게 오염될 수 있구나. 성소수자운동을 벤치마킹하는 이용희교수의 ‘미러링’은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서구에 맞서 동성애 반대를 법제화한 80여개국과의 국제연대로, 퀴어퍼레이드에 맞선 국제컨퍼런스와 80개국이 함께하는 건전한 성문화 축제라는 야심찬 제안으로 나아간다.

 

과학과 법, 교육와 윤리를 분과 삼은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문 발표도 흥미로웠다. 첫 번째 토론자 조우석 문화평론가는 대놓고 거친 표현들을 서슴지 않았다. 이미 토론직후 공유된 기사의 증언처럼 그의 표현은 노골적이다 못해 무례하다.

 

그는 좌파성향을 똑똑한 좌파, 무식한 좌파, 더러운 좌파로 삼분할한다. 무식한 좌파가 국가붕괴를 꾀하는 ‘괴뢰정당’이라면, 똑똑한 좌파는 교육, 문화, 언론을 구사하며 입을 놀리는 이들, 이른바 ‘좌파 정서에 물든 애들’이다. 그리고 더러운 좌파, 동성애가 있다. 한국의 좌파가 교회파괴-국가전복-사회분열 그리고 가정의 해체를 겨냥한다고 하는데, 사정이 이렇다면 그에게 좋은 좌파의 행방은 물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가 거론하는 2007년 이후 좌파정치의 계보 역시 노무현-통진당(민노당)-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우익의 관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계보정리는 중요치 않다. 그가 문제 삼는 지점은 좌파정치와 동성애가 규합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뜨악한 지점은 동성애와 좌파의 밀월을 보여준다며 오랜 활동가들의 이력을 일일이 나열한 대목에서였다. 보아하니 위키백과에서 고스란히 긁어온 내용이다. 사실 확인 없이 실어온 무책임과 무지함도 기가 막히지만, 기재된 프로필을 하나씩 지목하며 무시조로 선보이는 ‘아재개그’는 저열했다. 하지만 발언보다 소름 돋는 건 연신 ‘맞습니다’를 아멘처럼 읊조리는 주변의 참가자들. 이들 '좌파 동성애자'들에게 총리를 시켜야된다는 조우석의 비아냥은 기도 안 찼지만, 그만큼 우리의 동지들이 적진에서도 좌파 동성애운동의 대표로 부상했다는 사실은 괴이쩍게 다가왔다. 적도 인정한 투사들에겐 도리가 없다. 정욜과 곽이경을 국회로! 

 

동성애는 더럽다, 저질이다를 되뇌는 사이에 스탭이 쪽지를 건넨다. 그걸 그대로 복기하며 '여기 성소수자 활동가 몇몇이 잠입해서 녹음하니 말을 조심하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들으라고 하겠습니다.' 라는 기백은 어디서 나오는지. 들리는 얘기로 그는 KBS 이사라고 한다. 직함을 ‘문화평론가’에 숨겨 막말을 서슴지 않던 그의 무례한 의도가 얕게만 느껴진다.

 

두 번째 토론자는 한효관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 활동가의 발언이었다. 첫 토론자가 크게 각인되었던지라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다. 다만 인상적인 건 미국의 동성혼법제화 이후 한국과 일본의 비교였다. 한국에는 긴즈버그 대법관이 왔는데, 일본에는 동성결혼 법제화에 반대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왔다고 한다. 긴즈버그 대법관을 누가 데려왔는지 성토하는 부분은 기분나쁘게 안쓰럽다. ‘우리에겐 존 로버츠를 데려올 힘이 없단 말인가?’ 라는 토로는 사법적극주의만이 답이 아님을,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 기금마련과 연대를 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으로 회귀한다.

 

마지막토론자는 황성욱 자유와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변호사였다. 헌법과 판례를 비교 분석하면서 동성혼이 왜 인정될 수 없는지 설명하는 것이 발표의 골자였다. 토론회 패널들 중 (그나마) 자료 분석에 성실했다는 인상을 준다. 동성혼 법제화를 요구함에 있어 사례수집과 분석을 놓치지 말아야한다는 경각심도 받는다.

 

많은 패널들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판단보다는 법과 과학, 사회운동과 여론형성 등 구체적인 전술전략에 눈높이를 맞췄다. 종교를 중심으로 포진해있던 혐오세력의 파벌들이 작정하고 현실정치의 장으로 세속적인 각성을 했다는 느낌도 든다. 이들은 성경의 논리보다 미국의 동성혼법제화를 앞서 거론했다. 미국의 동성혼법제화는 법원의 입법영역침해고 월권이라는게 공동의 의견이었다. 반동성애운동이 서구의 동성결혼 법제화와 오바마 대통령, 반기문 UN사무총장 등 권위있는 정치인들의 발언으로 압박을 받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겐 반동성애를 기치로 하는 국가들이 더 많다, 는 주장이 반복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반동성애 진영도 위기를 느끼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토론회장은 사방으로 자신들을 드러내는 동성애자처럼 우리(반동성애운동)도 담론을 넓혀 뭉쳐야 되지 않느냐는 결의로 가득했다.

 

동성애에 투사된 저들의 집단적인 피해의식과 위기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무엇이 저들을 결집시키는 걸까. 우리는 이미 이긴 게임이고 시간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성소수자운동의 성장처럼 저들의 전략도 진화하는 느낌이다. 이 지루하고 성가신 싸움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어떻게 끝낼 수 있을지는 막막하기만 하다. 저들의 위기와 결의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현명한 대응과 전략을 구상할 수 있을까. 

 

그보다, 빨리 경악스런 자리를 빠져나와야 한다! 토론회가 끝나고 사회자는 단체사진을 찍는다고 참가자들을 모았다. 자리를 피하려는데 스탭이 유달리 내게 사진찍고 가라고 채근한다. 눈치챘나보다. 대충 인사하고 나오려는데 소매를 덥석 잡혔다. 옷이 좀 튀었나. (과연 옷 때문 만이었는지는 묻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