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실 행성인 활동을 결심한 것은 작년부터였다. 성소수자로서 나와 같은 문제들을 경험하고, 나와 비슷한 상황들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행성인 홈페이지를 기웃거렸다. 그러나 오프라인 활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용기가 필요했고, 의지와 열정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 그렇게 일 핑계, 시간 핑계 등을 대며 차일피일 참여를 미루다 한 해가 지나갔다.

 

새로운 2017년을 맞으며, 내 신년 계획표에 행성인 활동 시작이 1번으로 써졌다. 작년 말 어머니께 바이섹슈얼로서 커밍아웃을 하고 난 후, 어머니의 정신적 지지를 등에 업은 것이 아주 크게 작용했다. 올해에는 꼭 왕성한 활동을 해보리라 다짐하며 드디어 2017년 1월 올해 첫 신입회원모임에 참여하였다. 사실 이 날도 오전에 일이 있어 시간이 빠듯하고, 하늘에서 눈까지 펑펑 쏟아져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왠지 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활동을 미룰 내 모습이 눈 앞에 훤해 기를 쓰고 행성인을 찾았다.

 

 

디딤돌 프로그램

 

시작 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터라 처음부터 모든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간단한 행성인의 역사, 현재 활동, 소모임 소개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작고 폐쇄된 나라에서도 끊임없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운동들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새삼스레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바로 Ice-breaking 시간으로 넘어갔는데, 간단한 자기소개와 더불어 자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또는 여행하고 싶은 곳을 함께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모두 한번씩 돌아가며 소개 한 후, 인형을 넘겨가며 서로의 여행지를 기억하는 게임을 진행하였는데,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데에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나 다들 초면이다 보니, 게임이 끝난 후 서로의 닉네임보다는 여행지만 기억에 남아 “스페인님” 등 서로를 여행지 이름으로 부르는 웃지 못 할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만든 피켓

 

2부에서는 각자 원하는 메시지를 쓴 피켓 만들기 활동을 진행하였다. 처음에는 다들 소극적으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어느 새 의미있는 메시지를 담은 컬러풀한 피켓들이 완성되어 있었다. 나는 “나는 나 너는 너” 라는 메시지를 썼는데, 사실 처음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디딤돌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들은 지코의 노래 “나는 나 너는 너”를 그대로 따왔다. 하지만 쓰고 보니, 내가 항상 하고 싶었던 얘기인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니 간섭하지 말고 서로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자” 라는 메시지가 함축적으로 잘 담긴 것 같았고, 다른 회원분들이 공감해주시는 모습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의 피켓도 인상적인 문구들이 많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 더더욱 만족스러웠다.

 

디딤돌 모임 후 개인적인 저녁 약속이 있어 다른 회원분들과 길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HIV/AIDS인권팀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기약하며 행성인 사무실을 나섰다. 디딤돌이라는 이름답게 이번 모임을 통해 더 열린 세상으로 한발을 내디딘 것만 같아 눈길이어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참석하기 전에는 친구도 없이 혼자 가는데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어떡하나, 내가 행성인 분위기와 잘 맞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들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굉장히 환영 받는 느낌이 들었고,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혹시 행성인 활동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 용기를 내지 못 한 분들이 계시다면, 신입회원모임에 한 번만이라도 꼭 와보시길 권유하고 싶다. 함께 가는 길은 더이상 외롭지 않다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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