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LGSM, 광부를 지지하는 동성애자들!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1980년대에 거의 1년에 걸친 영국 광부들의 파업과 그 파업에 연대했던 레즈비언, 게이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그들은 스스로를 LGSM(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 광부를 지지하는 동성애자들)이라고 불렀다. 


영국광부들의 성격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여러 영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그들은 과묵하고 무뚝뚝한 마초스타일의, 한국으로 치자면 ‘경상도 아저씨’ 같았다. 게다가 시대적 배경은 80년대. 80년대 경상도 아저씨들이 성소수자들과 연대한다니. 왠지 불가능한 조합일 것 같았다.


영화의 시작은 나의 예상대로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성소수자 인권활동가쯤으로 보이는 마크는 TV에서 파업중인 광부들이 탄압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받았던 것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마크는 광부들과 연대하기 위해 동료들과 모금운동을 하고 후원금을 전달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계속 거절당했으면 영화가 다큐멘터리로 끝났겠지만 어쩌다가 웨일즈 지역의 한 탄광촌에 귀가 어두운 노인이 이 연대전화를 받아서 흔쾌히 오케이하는 것을 계기로 감동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태어나서 레즈비언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어나 광부를 처음 보는 런던의 레즈비언과 게이들의 어색한 만남이 이뤄졌다. 동성애자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탄광촌 사람들에게 LGSM 멤버들은 그동안 수없이 받아봤을 불쾌한 성적인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으나(스크린을 보는 내 마음도 조마조마 했다) 그들의 입에서 조심스레 나온 질문은 "레즈비언은 모두 채식주의자인가요?", "둘 다 남자면 집안일은 누가 해요?" 같은 것들이었다. 이렇게 깜찍할 수가! 관객들은 귀여움에 소리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나는 이 장면이 특히 좋았다.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해준다면 그 누구와의 연대라도 어렵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사적인 성생활에 대한 무례한 질문을 일상적으로 받고, 혐오적인 언론에 의해 공공연하게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기도 한다. 누구도 이런 불쾌한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웨일즈의 탄광촌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고지식해보이지만, 그래서인지 예의, 의리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고지식하게 잘 지키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심장에 해로울 정도로 매우 귀여웠다!)



사실 영화에는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 장면이 정말 많은데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영화를 보고 직접 감동을 느끼기를 바라서 더 이상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를 꼭 보길 바란다. 나에겐 올해의 영화로 꼽을 만한 영화였다!

 

행성인과 민주노총이 공동으로 상영회를 연다는 소식에 

영화에도 등장한 실존인물 ‘마이크 잭슨’이 영상편지를 보내줬다. 

감동!



 

그리고, 나의 연대


나는 6월 26일부터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전임자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그 역사나 관련법이나 모르는 것 투성이고, 스스로 여성임에도 페미니즘도 너무 어렵다고 느낀다. 내 관심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였기 때문에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나 로힝야족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처럼, 중요하긴 하지만 ‘나 아닌 누군가 열심히 싸워주겠지’하고 한켠에 치워둔, 내 안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아주 작은 문제였다.



그런데 내 친구가 나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내 친구의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었고,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시스젠더(cisgender), 헤테로(heterosexual)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건지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가 뭔지 겨우 알았더니 AIQ(무성애자, 간성, 퀘스쳐너리/퀴어)가 붙기 시작하는 등, 예전에는 몰랐던 단어들이 점점 늘어나고 어려운 개념들은 따라가기 벅찬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막연히 아웃팅은 나쁘단 생각에, 친구를 위한답시고 그에게 과하게 조심을 당부하는 것이 친구를 답답한 벽장 속에 가두는 폭력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꽤 충격을 받기도 헀다. 내가 페이스북에 쓰는 글에 이성애자임을 암시하는 말을 하는 것도 왠지 자신의 성정체성을 오픈하지 못 하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실수하고 비난 받진 않을지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런던 프라이드는 그런 나의 마음 속 불안을 말끔히 씻어주는 영화였다. 내가 신도 아니고 어차피 모든 분야에 정통할 순 없다. 결국 진심과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주지 않고 싶다는 내 진심이 전해진다면, 상대방의 인권을 존중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면 연대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연대는 결국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얼핏 광부들의 파업은 성소수자들과 전혀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광부들에게 폭력적인 정권은 또다른 약자집단에게도 똑같이 폭력적인 것이다. 그것은 성소수자, 여성, 이주 노동자 혹은 또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다. 억압에 맞서려면 함께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즈비언과 게이들이 광부들의 삶에 뛰어들자 무채색의 화면이 무지개빛으로 화려하게 반짝반짝 빛났다. 우울한 얼굴로 앉아서 술만 마시던 이들이 함께 디스코를 추고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파업이든 투쟁이든 결국 더 행복해지기 위해 싸우는 거라면 '그냥 이게 더 신나고 그래서 더 행복하니까!'라는 이유로도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삶과 직접 관계 없어 보이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후추’ 같은 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돈까스 먹을 때 딸려나오는 크림스프 위에 조금, 설렁탕에도 조금, 고기를 구울 때도 조금. 전체 요리에서 후추가 차지하는 부피는 0.01%도 안 되겠지만 없으면 아쉽다. 그리고 인생은 꽤 길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자꾸 생각이 난다. 후추가 주는 미묘한 그 맛을 알기 때문에 그 옛날 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후추교역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한 것이 아니겠는가. 후추 그까짓게 뭔지 몰라도 후추를 뿌리면 그냥 더 맛있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니까!


어느날 갑자기 성소수자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가 한꺼번에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사람들은 뭔가 인생이 심~심~하고 밍밍해서 허전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을 찾아 원정대를 꾸릴지도 모른다.


그니까 있을 때 잘해야지. 후회하지 말고~


아무튼 다양한 이들과 연대하는 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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