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행성인 HIV/AIDS인권팀)


행성인 HIV/AIDS 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혜민입니다. 저는 성소수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고려대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팀(RCP 팀)의 구성원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통해 2017년 11월, 저를 포함한 RCP 팀이 미국의 성소수자 건강 연구소인 펜웨이 연구소(The Fenway Institute)와 UCLA의 윌리엄스 연구소(Williams Institute)에 방문하여 연구를 발표하고, 미국 공중보건학회에 참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미국의 성소수자 연구소에 다녀오다


@펜웨이 연구소(The Fenway Institute)

 

미국 보스턴의 펜웨이 연구소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펜웨이 연구소(The Fenway Institute, http://fenwayhealth.org/the-fenway-institute/)는 성소수자 건강을 연구하는 기관이에요. 펜웨이 연구소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성소수자 커뮤니티 의료기관인 펜웨이 헬스(Fenway health)에 속해 있는 연구소입니다. 펜웨이 연구소는 미국의 보건사회복지부의 공중보건계획인 "Healthy People 2010"에 성적 지향과 관련한 새로운 목표를 도입하는 데 큰 공헌을 한 단체이기도 해요.
 

펜웨이 헬스 건물 내 성중립 화장실

 


1971년에 설립된 펜웨이 헬스는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을 포함한 보스턴의 이웃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무료 진료소였어요. 초기에 펜웨이 헬스는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었는데, 이제는 450명이 넘는 의료진들이 28,000여 명의 환자들을 돌보는 큰 의료기관이 되었답니다. 설립 당시, 펜웨이 헬스 건물은 구석진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고 해요. 1980년대 HIV/AIDS 위기를 겪었던 당시 미국을 생각해보면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이 다니던 의료기관을 머릿 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랬던 곳이 2009년 보스턴의 펜웨이 파크가 보이는 시내에 10층짜리 건물을 갖게 된 것은 제가 듣기에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어요. 이 10층짜리 건물에는 펜웨이 연구소뿐만 아니라 산부인과, 안과, 치과 그리고 약국까지 있어서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들이 웬만한 진료를 건물 내에서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펜웨이 성소수자 건강 가이드 2판, 펜웨이 연구소 지음

 


개인적으로는 이번 펜웨이 연구소 방문이 정말 뜻깊고, 한편으로는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그 이유는 2013년 제가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성소수자 건강에 대해서 알려준 저의 첫 '선생님'이 펜웨이 연구소이기 때문이에요. 사실, 한국에는 성소수자 건강과 관련해서 볼 수 있는 마땅한 교과서도 없었기 때문에(지금도 없죠), 외국의 책이나 논문들을 많이 참고해야 했었는데요. 그 때 제가 찾은 게 바로 펜웨이 연구소에서 출판한 성소수자 건강 가이드(The Fenway Guide to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Health)와 국가 성소수자 건강 교육 센터(National LGBT Health Education Center)의 동영상 강의였어요. 펜웨이의 성소수자 건강 가이드는 미국에서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해 서술한 첫 번째 의학 교과서라고 하구요. 국가 성소수자 건강 교육 센터 홈페이지(https://www.lgbthealtheducation.org)에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을 위해 성소수자 건강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 동영상 강의들이 업데이트되고 있어요.
 

펜웨이 연구소에서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 연구' 발표, 2017.11.02

 


펜웨이 연구소에서 RCP 팀은 2016년 진행했던 '한국 성인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와 올해 데이터를 수집한 '한국 성인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의 결과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발표 장소에 있던 모든 연구원들이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 결과 발표를 경청했어요. 발표가 끝난 뒤, 연구원 한 분이 저에게 찾아왔어요. 제 발표 자료 중에 성소수자 관련한 한국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한국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는 터키뿐이에요. 그런데 그 분이 바로 터키에서 온 분이었던 거죠. 미국에서 5년째 공부하고 있는 그 분은 본인도 언젠가 터키로 돌아가서 저희 연구팀이 진행한 것과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뭔가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한국과 터키를 흔히 "형제의 나라"라고 하던데, 그 날 처음보고 말을 나눈 그 분에게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어요.
 
뿐만 아니라, 저는 펜웨이의 연구진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배웠어요. 발표를 마치고 펜웨이를 나서면서 훗날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팀이 한국에 성소수자 건강 연구소를 만들게 된다면, 해외에서 한국의 연구소에 방문해서 자신들의 연구를 공유해주는 이들에게 이런 자세로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발표 당일 오전, 행정을 담당하는 디렉터가 펜웨이 헬스 건물의 1층부터 10층까지 각 부서를 직접 방문하여 안내해주었고, 연구 발표 시간에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RCP 연구팀의 발표를 듣고 많은 연구원이 질문과 코멘트를 했어요. 발표가 끝난 후에는 5명의 디렉터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한국의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못다 한 얘기들을 나누었어요. 디렉터들은 지금 한국의 성소수자가 겪는 상황이 미국의 1980-1990년대와 비슷하다며 매우 공감해주었고, 자신들이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지요. 자신들의 과거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좀 더 나은 미래의 모습을 제시해준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이들을 만나 연구에 대한 열정을 얻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꾼 것과 더불어 외국의 연구팀을 맞이하는 자세까지 배울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펜웨이 연구소의 디렉터들과 고려대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팀


 

@윌리엄스 연구소(The Williams Institute)
 
RCP 팀이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UCLA 로스쿨 산하 연구소인 윌리엄스 연구소였어요. 윌리엄스 연구소는 법학자와 경제학자, 인구통계학자, 사회과학자, 공중보건전문가들이 모여 성소수자 관련 법·정책을 포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기관이에요(https://williamsinstitute.law.ucla.edu/). 연구소에서는 출판되는 연구들은 주로 성소수자 인구 통계, 낙인과 차별, HIV/AIDS, 교정시설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요. 윌리엄스 연구소는 RCP 팀의 구성원이자 행성인의 공동운영위원장인 호림이 올해 7월부터 내년까지 방문과학자로 머무는 곳이기도 하지요. 
 

행성인 회원인 RCP 팀의 최보경 선생님과 함께

 


윌리엄스 연구소는 소수자 스트레스 모델을 제시한 Ilan Meyer 박사님이 소속된 기관이기도 해요. 소수자 스트레스 모델은 비성소수자에 비해 성소수자가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성소수자로서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소수자 스트레스를 통해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사이의 건강 격차를 설명합니다. 소수자 스트레스 모델은 이후에 진행된 성소수자 건강 연구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 뿐만 아니라, Meyer 박사님은 미국 동성결혼과 관련한 소송에서 공중보건 전문가로서 증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윌리엄스 연구소에서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발표, 2017.11.09


 
감사하게도, RCP 팀은 펜웨이 연구소에 이어 윌리엄스 연구소에서도 '한국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와 '한국 성인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발표하고, 질문과 코멘트를 받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국가의 연구비 지원 없이 연구팀 내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연구비를 마련했다는 점에 놀라워했어요.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발표를 마친 후 받았던 질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트랜스젠더 연구에 관한 것이었어요. 한 연구자가 연구에 참여하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기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RCP 팀의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질문했어요. RCP 팀은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의 설문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각보 활동가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많은 분의 자문을 받았었는데요. 자문을 받는 과정에서 질문도 하고 논의도 하면서 연구팀 내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어요. 이 질문을 통해 연구자와 당사자의 목소리가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 2017 미국 공중보건학회에 다녀오다
 
보스턴의 펜웨이 연구소와 로스앤젤레스의 윌리엄스 연구소를 방문한 그 시기에 RCP 팀은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2017 미국 공중보건학회에도 참가했어요. 저는 3년 전인 2014년에도 같은 학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석사 과정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참가한 학회였고, 무엇보다 이 학회에 성소수자 건강과 관련한 공중보건 전문가 집단이 있다는 점 때문에 매우 들떠 있었어요. 2017년 학회에서는 RCP 팀원들과 함께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게 되어 기대에 차 있었지요. RCP 팀은 이번 학회에서 LGB 집단과 일반인구집단의 건강 상태를 비교한 연구와 LGB 집단이 중고등학생 시절에 겪은 괴롭힘이 성인 시기의 우울 증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저는 학회에서 다루는 다양한 주제 중에서도 성소수자의 건강과 HIV/AIDS 관련 세션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어요. 성소수자의 건강과 관련한 세션 중에서 흥미로웠던 연구 주제는 의료전문가의 성소수자에 대한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온라인 수련/교육 프로그램, 성소수자의 가족계획 관련 서비스, 여성 성소수자의 체질량지수(BMI)와 신체 활동 등이 있었어요.
 
HIV/AIDS 관련해서는 특히 PrEP(Pre-exposure prophylaxis, 노출 전 예방법)에 대한 연구들이 눈에 띄었어요. 올해 4월 참가한 미국 국내 성소수자 건강 학회(National LGBTQ Health Conference)에서도 많은 연구자가 PrEP과 관련해서 PrEP을 하게 되는 동기, PrEP을 중단하는 이유, PrEP 이용에 있어서 장벽으로 작용하는 요인 등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이번 학회에서도 PrEP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있었어요. MSM 집단뿐만 아니라 여성, 특히 흑인 여성이 PrEP을 예방적 도구로써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 심리적, 환경적인 요소들에 대해 분석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어요. 이 연구에서는 흑인 여성들의 PrEP 이용에는 PrEP에 대한 인식과 지식도 중요하지만, PrEP에 대한 커뮤니티의 반응과 약의 부작용, 그리고 PrEP에 대한 남성 파트너의 인식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윌리엄스 연구소의 연구자 Jody Herman


이번 학회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연구는 윌리엄스 연구소의 Jody Herman이라는 연구자가 발표한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 이용 관련 연구였어요. Herman은 미국 전역에서 27,715명의 성인 트랜스젠더가 참여한 2015 트랜스젠더 설문조사 보고서(The Report of the 2015 U.S. Transgender Survey, USTS)의 공저자이기도 합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Herman은 트랜지션 관련 의료적 조치의 이용이 트랜스젠더의 자살 생각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한 예비 결과를 발표했어요.
 
트랜스젠더의 자살 생각과 자살시도에 대해 분석한 여러 문헌을 종합한 연구(Adams, et al., 2017)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중 50.6%는 작년에 자살 생각을 해본 적이 있고, 10.7%는 작년에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비트랜스젠더 인구집단의 자살 생각과 시도 경험에 비교하면 각각 14배, 22배 높은 수치라고 해요. 트랜스젠더의 자살 관련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에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폭력이나 차별을 경험하거나 가족으로부터 거부당하는 등이 있습니다. Herman의 연구는 그 중에서도, 의료적 트랜지션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호르몬 요법이나 트랜지션 관련 외과적 수술을 경험한 경우, 이러한 의료적 조치를 원하지 않거나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에 비교해 자살 생각의 비율이 적게 나타났어요.
 
Herman의 발표를 듣고 나서 올해 연구팀에서 수집한 '한국 성인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데이터를 활용해서 비슷한 연구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CP 팀의 연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 중에서 호르몬 요법이나 트랜지션 관련 외과적 수술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트랜스젠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나누어 이들의 자살 관련 행동을 비교해볼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한국처럼 국민건강보험의 적용 없이 의료적 트랜지션의 비용을 트랜스젠더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고, 의료진들이 트랜스젠더의 트랜지션 관련 의료적 조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시설도 부족한 나라에서 트랜스젠더의 건강과 관련해서 더욱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펜웨이 연구소의 연구자 Sari Reisner

 


2014년에 개최된 미국 공중보건학회에 참가했을 때, 트랜스젠더의 건강에 대해서 발표하는 펜웨이 연구소의 Sari Reisner라는 연구자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Reisner는 LANCET이라는 저명한 의학 저널에서 트랜스젠더 건강을 학계 내에서 가시화하는데 기여한 사람으로 소개되기도 한 연구자입니다(http://www.thelancet.com/journals/lancet/article/PIIS0140-6736(16)30839-X/fulltext?rss%3Dyes).
 
발표가 끝나고 나서, 저는 Reisner에게 찾아갔어요. "나는 한국에서 성소수자 건강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이다, 나중에 당신이 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 건강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고 더듬더듬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다음에 참가할 학회에서는 올해 수집한 '한국 성인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의 결과를 성소수자 건강 연구자들과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음 학회에서 Reisner를 만나게 된다면,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이 동료들과 출판한 여러 논문들 덕분에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요.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도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해 관심이 있는 연구자, 활동가,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모여서 서로의 활동에 대해 공유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 2014년에 이어 2017년에도 행성인 웹진의 기자로 미국 공중보건학회에 참석했어요. 도움을 주신 행성인에 감사드립니다.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팀



 
<참고문헌>
Adams, N., Hitomi, M., & Moody, C. (2017). Varied Reports of Adult Transgender Suicidality: Synthesizing and Describing the Peer-Reviewed and Gray Literature. Transgender Health, 2(1), 6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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