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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커밍아웃의 강요와 동성애혐오의 포용으로 탄생하는 신가족주의

by 행성인 2009. 10. 21.
 -영화 <산타렐라 패밀리>를 보고

 

 


게이 커뮤니티의 하위문화와 장르 영화의 보편화 된 관습을 절묘하게 직조해내는 스페인 퀴어 영화의 솜씨는 일품이다. 나아가 이 영화들은 게이 커뮤니티 내부의 다양한 차이들을 짚어낼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뜨거운 사회적 이슈들을 수렴하며 정형화된 동성애 재현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하고 있다. 예로, <퀸즈>는 게이전용호텔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요리사들의 파업을 이야기의 한 축으로 가져오면서 상업화된 게이문화의 일면을 폭로하고 있고, 베를린영화제 초청작인 <베어컵>은 ‘베어’ 커뮤니티의 하위문화가 제공하는 볼거리를 배경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게이의 입양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 밖에서 불법체류 중인 불가리아 게이와 스페인 게이의 사랑을 다룬 <불가리안 러브>는 게이 커뮤니티 내부의 계급차이와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러한 역량은 ‘게이익스플로이테이션_gayexploitatio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철저히 상업화된 퀴어 영화들 양산하면서 더불어 그에 대한 성찰과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두터운 저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번에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한 <산타렐라 패밀리> 역시 앞서 소개한 영화들처럼 퀴어영화의 장르적 외연을 넓히고 주제적 깊이를 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결혼 후 두 명의 아이를 낳은 후에야 뒤늦게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막시’는 유명한 레스토랑의 사장으로서 만족스러운 독신 게이의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 부인의 죽음으로 7년 간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자식들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때맞춰, 옆집에 이사 온 매력적인 전직 축구선수 ‘호라시오’와의 아슬아슬한 연애도 시작된다.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미래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과연 그는 아버지와 애인이라는 익숙하지 못한 두 가지 역할에 모두 충실하면서 일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여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멋진 가족을 만들어낸다! 그럼 그 대안적인 가족을 구성해 가는 가부장으로서 막시의 역할에 주목해보자. 그 가족의 핵심적인 구성 원리에는 ‘커밍아웃’과 ‘동성애혐오’를 재전유하는 노력이 숨어있다. 


  이미 커밍아웃한 막시와 달리 청소년 축구부 코치로 있는 호라시오는 학부모의 시선이 두려워 커밍아웃을 꺼려하는데, 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가 삐걱댄다. 막시의 강압에 시달리던 호라시오는 결국 축구 관련 프로그램의 생방송 중에 우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막시와의 사랑을 되찾고 나아가 막시가 가부장으로 있는 가족의 또 다른 ‘아버지’로서 안전하게 편입한다. 일반적으로 서구에서의 커밍아웃은 곧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해왔다. 그것은 이성애규범적인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해버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가족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커밍아웃이 필수인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호라시오의 커밍아웃이 가져온 파장들 중 가족 외적인 부분, 즉 일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침묵해버린다. 그래, 사랑과 가족을 얻었는데 뭐가 더 필요할까!


  다음으로는 호모포비아를 바라보는 영화적 시선을 살펴보자. 막시의 아버지는 동성애혐오적인 농담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막시의 어머니는 동성애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편견과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마치 이들은 동성애친화적인 시류에 뒤쳐진 존재로 희화화 되어 있는 듯하다.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지닌 이들은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만큼은 소수자처럼 느껴진다. 그리하여 막시가 그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관객은 호모포비아에 대한 적대감이나 불쾌감보다는 오히려 그런 그들조차 끌어안아 버리는, 즉 가족으로 흡수해버리는 동성애자의 관대함과 마주한다.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저질 유머조차 너그럽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가능한 것은 영화가 차곡차곡 쌓아온 동성애친화적인 내공 덕분일 것이다.


  가족이 되기 위해 커밍아웃을 해야만 하고 동성애혐오조차 포용해버리는 동성애친화적인 공간은 단순히 동성애와 이성애의 관계가 역전되어 있는 호모필리아적_Homophilia 재현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동성애친화적인 인식론의 출발지점은 나 자신의 소수자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궁극적 도달지점은 나와 다른 타자(성)에 대한 수용일 것이다. 이것은 호모필리아적 세계의 폐쇄성에 대한 경계심을 환기해준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지해야할 사실은 가족으로 회귀하는 동성애자들의 등장, 즉 (퀴어영화에서) 억압된 가족주의의 귀환이다. 막시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이유는 그가 게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래전에 자신을 버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여 부재했던 7년간의 세월을 보상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막시가 주는 순간, 그 두 사람은 화해의 포옹을 하는 것이다. 이제 동성 성애적 존재로 부각되어 있는 막시가 아들과의 근친상간을 염려하는 주변의 시선만 극복해낸다면 당당한 아버지로서 온전한 가족을 구성해 낼 수 있다. 동성애자들의 삶을 옥죄던 이성애 규범적 가족주의를 현실과의 타협 속에서 재전유하여 탄생시킨 '신가족주의'는 그 시도만으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태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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