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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You have the power."

by 행성인 2018. 3. 4.



면(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요즘 SNS의 글들을 보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것 같다. 지난달 14일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혐오표현규제법안이 어제 발의 취소 됐다는 기사를 봤다. 당시 함께 발의한 의원들(일일이 적어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올해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글 말미에 적어두었음)이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다. 이유야 간단하다. 일부 정치 세력은 혐오할 대상을 늘 찾고 적극 이용하고 있는데, 혐오이용 전략이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 생기는 게 눈엣가시인 것이다. 이 법안이 취소된 맥락과 차별금지법이 세워지지 않는 맥락은 같고, 소수자에게 이 법안이 꼭 필요한 이유 그 자체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 조금은 위안이 될 영화를 공유할까 한다. 오늘 이야기 할 영화는 동성배우자연금투쟁에 성공한 사례를 기록한 <로렐>이다.


결론을 먼저 언급하면 로렐 헤스터(줄리안 무어 역)는 적극적으로 동성배우자연금투쟁에 참여해 법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 이 영화에 나온 이야기는 미국 뉴저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담았으니 말 그대로 (좀 거창하게 말하면) ‘개헌’을 이룬 셈이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다. 로렐은 폐암 4기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병상에 누워있을 수 없었다. 연인 스테이시 앙드레(엘렌 페이지 역)에게 의지해서 시위 현장에 나가고, 발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개헌을 쟁취하기 전, 지역 의회에서 한 발언을 재구성한 장면이 인상 깊다.




“저는 평등을 원합니다.”


이 말의 맥락을 좀 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발언은 지역 의회에 가기 앞서 LGBT 단체가 요청한 인터뷰에서 한 말과 이어지는 대사다. LGBT 단체의 활동가가 로렐 사건은 퀴어운동의 동력이 될테니, 동성 결혼을 지지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요청하자, 로렐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동성 결혼 지지보다 평등을 지지합니다.”


이 말이 자칫 퀴어포빅한 대사로 읽힐 수 있다고 필자도 생각한다. 동성배우자 결혼 지지한다고 말하면 내일 아침 출근길에 넘어지기라도 하나. 따지고 보면 결혼 투쟁 자체가 평등권 쟁취 그 자체인데 말이다. 하지만 위의 대사를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숨겨진 단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저는 동성 결혼 지지보다, (모든 권리에서의) 평등을 원합니다.”


결혼을 포함, 모든 권리 안에서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의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동성배우자 연금 상속 권리뿐만 아니라 퀴어가 살아가면서 응당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의 평등. 로렐은 이 가치를 적극적으로 의회에서 주장했고, 법은 바뀌었다. 이 사건은 미국 LGBT운동의 큰 힘이 됐고, 2년 뒤 미국 정부는 동성 결혼을 (이 표현이 참 싫지만) ‘합법화’했다.


다시 차별금지법과 혐오표현규제법안으로 돌아가보자. 차별과 혐오를 막자고 주장하니 일각에서는 (퀴어포빅한)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한다. 지금처럼 편안하고 제한없이 소수자를 혐오하고 제도적, 물질적 박탈을 지속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그들에게 로렐의 이 대사를 다시 읊어줘야 할 순간이다.


“우리는 우리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길 원합니다.”                  


**** 혐오표현규제법안 발의 취소한 의원들 : 고용진, 김민기, 김부겸, 김상희, 김영호, 김정우, 민홍철, 박정, 변재일, 손금주, 신창현, 심기준, 오세정, 원혜영, 윤관석, 이찬열, 인재근, 임종성, 정동영, 정성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