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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데이팅어플을 통해 번개를 한다. 예전같으면 하찮게나마 얼사(얼굴 사진)나 몸사라도 올려놓고 나를 전시했겠지만, 요즘은 그냥 사진란은 신체 실루엣만 해상도를 낮춰 대충 잘라 올리고 문자 텍스트에 공들이는 편이다. NPNC(No Pic No Chat)가 대부분인 ‘이바닥’에서 흐름에 역행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흥미롭게도 얼사를 올릴 때보다 쪽지를 더 받는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지만(웃음) 시각적 정보값을 많이 노출하는 것보다 판타지로 사람을 미혹시키는 전략이 아직도 유효한가 싶었다. 물론 그들 중 절반은 사교(사진교환)를 요청하고, 내쪽에서 거절하면 상당수는 소통을 중단한다. 하지만 만남에 양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한편으로는 서로 외모를 재는데 피로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도 추측해본다. 어쨌든 삼십대가 꺾인 이후의 데이트는 해를 거듭할수록 쉽지 않고, 앞으로 더 험난할 예정이다.
얼마 전에는 아침부터 게이 데이팅어플 블루드를 통해 메세지가 왔다. 그역시 사진은 없었다. 키와 나이, 몸무게를 확인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소위 은둔들의 대화는 당신의 구체적인 삶과 허황된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스킨십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당장 만나고 싶다는 제안에 눈을 비비며 잠도 깨지 못했다고 대꾸했다. 수차례 밀당을 하면서 서로 선호하는 성향과 체형과 체위를 이야기나누며 텐션을 높였고 결국 조금 이따 오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모텔을 대실했고 가벼운 대화와 이런저런 스킨십으로 관계를 시작했다.
애널을 이완시켜달라는 요청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애무를 해줬다. 조금씩 이완되는듯 했는데 별안간 상대가 복통을 호소했다. 한참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이 관계를 지속할지 고민했지만 다행히 나는 이성적인 인간이었다. 네 아픔을 가라앉히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에 관계를 중단하고 그를 눕혀 쉬게 하고 배를 만져줬다. 오랜만에 시도했다는 그의 말투엔 미안함이 배었다. ‘이 젤이 온열기능이 있다고 하니까 이걸 발라봐.’ 할머니 배탈난 손주 배 쓰다듬듯 그의 배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아픔은 가라앉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키를 반납하고, 거동까지 어려워진 그를 부축해 근처 병원에 갔다. 등록을 하고 진료를 마칠때까지 기다렸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진단을 받았고, 약을 타서 먹는 것까지 보고 택시를 태워 보냈다. 이후 챗방에서 이야기나누고 날을 다시 잡자고 약속한 것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볼일을 보고 몇 시간이 지나 다시 어플을 열었는데, 별안간 ‘일부 상대가 위험이 감지되어 차단했습니다’ 라고 메세지가 뜨더니 그와의 대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억을 더듬어 활동명을 검색했지만 그의 계정은 검색조차 되지 않았다. 혼자 전전긍긍하다 블루드 고객센터에 문의를 넣었다. ‘데이팅 어플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상대를 차단하는 경우도 있나요?’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사용자 보호를 위해 리스크가 있는 유저, 그러니까 보안에 위협이 되는 유저는 자동으로 걸러내어 차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데이팅 어플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차단했다는 말인가? 나는 어떤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은 것인가? 그는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차단까지 당해야 했던 걸까? 그의 핸드폰에 악성 코드나 해킹 프로그램이 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를 나쁜 뜻이 있거나 다른 이들에게 신고당한 전적이 있던 것일까. 그게 그를 위험한 인물로 미리 설정하고 차단해야 하는 당위가 될 수 있을까? 한동안 멍한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무언가 꿈같은 상황들이 지나갔는데, 대실 기록 외에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배를 쓰다듬었던 손은 여전히 살결과 온도가 느껴졌지만 실체는 사라졌다. 하나 확실한 건 데이팅어플이 자동으로 실행한 사용자 보호가 내가 원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은둔으로 자신을 설명한 친구라는 점이 신경쓰여 그가 병원에서 등록을 할때 나는 굳이 저만치서 기다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쓸데 없는 배려였다. 오픈카톡방이라도 파둘 걸. 그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제는 얼굴도 가물한 그의 배탈이 가라앉았기를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갈무리를 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관계는 차차 다른 몸들과 포개며 희미해지겠지. 그래도 하나 배운게 있다면 이제 만남을 갖게 되면 간단한 의약품을 구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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