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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평가

[활동 평가] 행성인 2023 '활동팀, 회원 역량 조직의 해'를 보내며

by 행성인 2024. 1. 26.

지오(행성인 운영위원장)

 

 

편집자 주: 본 원고는 2024년 2월 3일에 예정된 행성인 정기총회에서 발표하는 2023년 활동평가를 수정, 가공한 것임을 알립니다.

 

 

2024년 정기회원초오히 웹자보

 

 

2023년을 시작하면서 영화 ‘겨울왕국 2’의 대사였던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는 지금 해야할 일을 해야 해” 이 말을 잘 기억하자고 운영위원들과 나누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윤석열 정부 하에서 사회운동이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던 바, 조급해하지 말고 무력감에 흔들리지 말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자는 다짐이었습니다. 

 

예상했음에도 그 이상으로 사회운동은 큰 어려움을 겪은 한 해였습니다. 간호법, 양곡법, 노조법2,3조 개정, 방송3법 개정까지 무려 4개의 법안이 대통령 거부권에 밀려 폐기되는 사태에서 보듯 소위 민주·진보·인권 진영의 이슈들은 정쟁의 도구가 되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의 부정, 노동탄압,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폭압 등 전 영역에서 퇴보의 역사를 다시 쓰는 가운데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전국적으로 성평등 도서에 대한 공격을 통해 페미니즘 백래시와 반동성애를 등에 업은 보수세력들이 지역에서 혐오의 세를 규합하며 지역 내 인권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시도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사회운동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2심 승소나 성소수자 커플의 출산이 이슈가 되는 등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더욱 가시적으로 드러난 한해였기도 합니다. 더불어 혼인평등과 관련하여 가족구성3법이 발의되고, 동성혼 법제화 서명을 받는 대중캠페인이 시작되는 등 의미있는 진전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여러 사회운동 단위들의 혼인평등 운동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며, 이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그동안 쌓아온 연대의 역량이 만들어 낸 성과임을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군형법, 전파매개금지조항 합헌 판결을 지나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까지 보수화된 정치의 흐름은 성소수자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더구나 진보정치의 쇠퇴와 보수양당 구조의 공고한 벽은 변화에 대한 기대조차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회운동은 느리더라도 길을 만들어 왔습니다. 총선이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오지만 아무런 기대도 가질 수 없는 위기감과 무력감 속에서 사회 운동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성찰과 함께 다른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 또한 시작되고 있습니다. 현 정권의 전방위적인 탄압은 그동안 접점이 없던 다양한 영역에서 연대를 모색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체제전환 운동이라는 급진적인 흐름이 조성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기본적인 제도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소수자 운동은 다른 영역들과는 분명 다른 지형에 놓여 있다 하겠으나, 성소수자의 삶은 사회운동의 의제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흐름들을 잘 살피면서 균형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시국에도 행성인은 이사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새로운 성산동 시대를 열었습니다. 25주년에 이어, 2년 연속 규모가 큰 후원을 조직했고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이는 코로나19를 지나며 움츠렀던 활동을 다시 잘 펼쳐낸 것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새로운 공간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어 뿌듯함도 큽니다. 그러나 이사에 매진하느라 회원 조직이 미진했음은 아쉬움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집회 참여와 같은 회원들과 함께 하는 연대 활동이 줄어든 것은 많은 고민을 남깁니다. 연대는 행성인의 중요한 가치이면서 집회를 통해 행성인을 알려오고 이를 통해 회원들과 공감하고 관점을 알리며 신규 회원의 유입을 이끌어내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연대활동에 상임활동가들의 비중이 높아진 것과 사회적으로 대응해야할 사안들이 쏟아지면서 연대의 의미와 효용이 회원들 안에서 그만큼 줄어든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염두하며 24년에는 회원들과 연대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한 ‘선택과 집중’의 장치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함께 나눌 자리들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올해의 평가와 행성인에 남은 과제들은 분명 연결되어 있습니다. 올해 행성인의 목표는 ‘활동팀, 회원 역량 조직의 해’ 였습니다. 많은 부분 노력을 기울였고 성과도 남겼으나, 평가와 남은 과제들을 볼 때는 부족함을 더 많이 느낍니다. 조직 강화는 언제나 행성인의 주요한 목표였지만, 그 방향은 조금씩 달라져 왔습니다. 올해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2024년, 행성인은 회원단체로서 조직 역량 강화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회원들의 관심과 욕구들이 활동으로 연결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와 자리들을 마련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회원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다지는 한편, 단체 홍보를 강화하여 행성인의 활동을 널리 알려냄으로써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후원조직을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2024년은 단체 안팎으로 과제가 많은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총선 이후를 누구도 쉽게 전망하지 못하면서도 별다른 기대를 가지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운동은 계속됩니다. 성소수자 인권의 주요 의제와 더불어 혼인평등 운동은 더욱 열기를 띌 것이고 기후위기, 반전, 노동, 페미니즘과 같은 다양한 사회 의제들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행성인은 내부를 단단히 살피면서도 이러한 연대활동에도 이전과 같이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페미니즘 백래시가 반동성애, 트랜스 혐오와 맞물린 상황을 고려할 때 페미니즘이 성소수자 대중들에게 연결된 의제로 인식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한 과제이리라 생각합니다. 회원 여러분들과 함께 조급해하지 않고 쉽게 휘둘리지 않으며 하나씩 우리의 것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3년, 회원 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 덕분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성인은 성소수자인권단체로서의 역할을 잘 해올 수 있었습니다. 연초 성소수자들의 든든한 동료였던 고 임보라 목사님의 부고는 아프게 남았습니다. 임 목사님을 비롯하여 우리 곁을 떠난, 그러나 분명 우리와 함께하는 동료들을 잊지 않으며 각자의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행성인으로 모여 같이 만들어온 활동과 시간들, 그 역동을 잘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힘으로 우리는 또 계속 해 나아갈 것이니까요. 2024년에도 행성인과 함께 투쟁!



 

 

✦ 올해의 활동 총평은 운영위원들과 함께 나눈 평가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운영위원 한 명 한 명의 노고가 한 해의 평가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