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웅(행성인 미디어TF)
예전 행성인 웹진이 웹진기획팀 체제로 발행되었을 때, 이 팀은 행성인의 여느 단위 중에서도 가장 정기적으로 운영되었다. 기억하기로 웹진팀은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기획회의와 교정교열 작업을 위한 자리를 가졌다. 기획회의에는 행성인 활동소식뿐 아니라 인권사안을 비롯하여 주제별 기획을 다뤘다. 자신들이 다루고싶은 주제와 더불어 행성인 활동을 익히며 성소수자 인권의제를 배우고 활동에 참여하는데 나아가 이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감각을 길렀던 것이다. 그렇게 필자를 섭외하고 원고를 취합하여 발행 직전 주말이면 교정교열 작업을 가졌다. 일요일 오전에 나와서 출력한 원고들을 돌아가며 체크하고 촌평하는 자리는 소싯적 교회에 나가는 기분도 들게 했다.
안팎의 사정으로 2019년 웹진팀을 해소하고, 다시 웹진을 기획하기까지 수 년의 시간이 걸렸다. SNS를 통해 활동을 전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웹진 기획과 발행뿐 아니라 퀴어커뮤니티에서 저널 활동을 해나가는 일은 적잖이 품이 많이 들어 활동팀을 꾸리기에 부담이 크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 달에 한 번 발행하는 웹진은 성소수자 이슈를 인권운동의 관점으로 들여다보고, 인권활동의 소식들도 전하는 낮은 문턱의 채널이라는 남다른 매력이 있다. 글을 쓰고 싶은 행성인 회원들에게 가장 먼저 제안하는 활동이 웹진팀이었지만, 와서 글만 쓰는 건 아니었다. 활동 소식을 가장 넓게 나누며 저마다의 욕구를 확인하면서도 외부 정세를, 인권운동과 커뮤니티 이슈를 연결하고, 이를 매월 큐레이션 하면서 정리하고 전달까지 하는 일이 웹진팀의 활동이었다. 기획한 주제를 집필할 수 있는 필진을 섭외하기 위해 회원이나 단체 바깥 활동가들과 관계를 만드는 것도 웹진팀 활동에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2022년 3월 행성인은 미디어TF를 만들어 웹진 발행을 재개했다. 처음 미디어TF에서는 웹진 발행을 기본 활동을 삼으며, 미디어 비평과 모니터링, 회원들의 동정을 살피며 인권의제 바깥의 현안들까지도 다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력이 된다면 팀을 운영해보자는 꿈도 가졌다. 2년 반의 시간이 지난 지금, 미디어TF의 활동은 어떨까? 지난 23일 미디어TF에서는 중간모임을 가지며 웹진 현황과 웹진 활동의 성과를 나누며, 앞으로의 바람과 제안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글은 모임을 가지며 남기는 소회다.
행성인 웹진은 안정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활동팀을 운영하던 시절보다 원고 수는 절반 가량 줄었지만, 방문자수는 상승세를 보인다. 올해 1-7월 평균 방문자 수는 10,541명이다. 지난해 상반기 9,000명 남짓 방문한 것에 비하면 완만한 상승을 보이고 있다. 7월만 보더라도 11,904명이 방문했다. 2018년 7월 방문자 수 20,801명에 비하면 많이 적지만, 이 격차는 6년의 기간동안 소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통로들이 많아진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웹진팀 해소 이후 2021년 7월 방문자가 4,658명이었음을 생각하면 정기적인 기획과 발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상반기동안 행성인 웹진에 한 문장이라도 기록을 남긴 이들은 30명을 상회한다. 그 중에서도 두 편 이상의 글을 기고한 회원들은 10명이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행성인 활동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거나 다른 지역과 현장에서 각자의 궤적을 그려가는 이들이다. 본래 웹진기획팀에서 기획하는 팀원들 간 네트워크가 중요했다면, 여기서는 편집자와 필자들이 원고를 보며 피드백을 나누고 활동에 대한 고민을 논의하는 경험이 강조된다.
단체의 미디어 활동과 웹진 발행은 다른 범주로 나뉘는 듯하다. 지금 행성인은 페이스북과 트위터(X),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활동 소식을 공유하는 데 공을 들인다면, 회원들 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뉴스레터를 보내고, 텔레그램과 카톡 단체방을 통해 일상 활동을 홍보하고 소식을 나눈다. 활동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게 의식되면서 이전보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더 공을 들이게 되었다. 웹진은 활동스케치 뿐 아니라 활동에 참여한 이들의 고민을 좀 더 발전시키고 그들의 일상과 취미를 연결시키는 점에 좀 더 내밀한 성격을 보인다.
미디어 모니터링 또한 행성인의 각 활동 단위들마다 일상적으로 소식을 공유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성명과 논평을 자체적으로 내기도 한다. 웹진은 실시간 발행을 통한 즉각적인 대응보다는 정기발행을 통해 어느정도 시차를 두고 사안에 대한 회원들의 입장과 생각을 정리하고 화두를 남기는 식으로 글쓰기를 제안한다. 성명과 논평의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언어를 다듬는 작업을 이어가는 셈이다.
현재 웹진은 고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집필을 통해 사람들에게 고민을 나누고 토론거리를 던지는 일련의 과정을 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하자는 취지다. 집필노동을 인권활동과 나란히 생업으로 가져가는 입장에서는 소정의 고료를 제공하지 않는 데 대해 여전히 이견이 있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사회운동에서의 글쓰기가 갖는 다른 효과와 역할을 생각하기도 한다. 전문성과 거리가 있는 사사롭고 서툰 글일지라도 생생한 언어를 만들고 연습하는 장으로서 웹진의 의미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더러 웹진의 글들은 다른 연구와 언론에 인용되고,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토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기능하기도 한다.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글쓰기 활동으로서 웹진의 저널리즘은, 고료로 매기지 않는 집필의 성과를 어떻게 부여할 수 있을지 탐색하는 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전처럼 팀을 운영하여 활동을 확대해나가는 건 어떨까? 바람이 없지 않다. 그간 웹진 팀장들이 자신의 일상을 갈아넣으며 활동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상임활동가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경험상 웹진 기획과 발행은 그저 매체 하나를 다루는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팀원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필자들과 소통하며 커뮤니티와 인권운동의 현황과 지형을 그릴 수 있는 훈련 또한 바탕해야 한다. 웹진과 미디어활동을 전담하여 집중할 수 있는 활동가가 있다면, 말마따나 웹진팀을 재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여러분의 후원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깔대기로 마무리될 것이므로(하지만 너무도 맞는 얘기라 안 할 수가 없지) 활동팀에 대한 바람은 이쯤으로 마무리하자.
웹진을 발행하는 미디어TF는 향후 사무국 산하의 웹진부서 정도로 운영할 예정이다. 앞으로 기획과 글쓰기에 대한 워크샵이나 회원들의 전문취미(?)를 나누는 '아무PT대잔치' 등의 프로그램은 수시로 열어볼 생각이다. 항시 사석에서 이야기하지만, 회원들을 가볍게 만나는 자리는 격무 속에서도 리프레시로 기능한다.(운동판에는 오랜 격언이 있다...활동을 활동으로 풀어라!) 더불어 주제를 망라하며 회원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가벼운 설문과 간담회들도 기획해보면 좋겠다. 바람은 많은데, 일단은 열린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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