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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퀴어퍼레이드

[회원 에세이] 거리에 서는 일 - 2024년 서울퀴어퍼레이드에 부쳐

by 행성인 2024. 5. 26.

남웅(행성인 미디어TF)
 
 

무지개 빠진 현장을 올리고 싶었다. 사진은 터울님.

 
 
미리 알리지만 이 글은 올해 서울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이하 서퀴) 행성인 부스를 총괄하며 미리 쓰는 후기...를 쓰려다 변질된 개인의 이야기다.
 
 

애석하지만 나에게 퀴퍼는 일이다. 소위 ‘퀴퍼뽕’이라는 건 남들이 그렇다니까 아는 거지 내가 향유해온 감정은 아니다. 경험이 일천할 때도 퀴퍼는 신기해서 나갔다가 사람구경 실컷 하고 돌아온 자리다. 그것이 활동을 시작하고부터는 한 해 활동의 칠부 능선을 오른 표지처럼 되었다. 말하자면 매년 달력사업의 정점이 서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2분기를 시작할 즈음부터 디데이만 보고 질주하는 이들이 있다. 이날만은 기필코 연차에 휴가까지 내면서 차량과 코스튬 회의에 전야제 파티까지 한다. 내가 아는 서울친구 몇몇은 하루 전날 근처 호텔을 잡고 여행이라도 온 양 기분을 냈다. 징그러운 열정이다.(칭찬입니다 동지여) 뒷계든 페티시커뮤든 이날은 너나 없이 잠깐 구경이라도 하자고 나서고 그걸 또 트윗에 중계한다. 사람 많은 게 싫고 퀴퍼에 애정이 떨어진들 온동네가 떠드는 탓에 그저 휘말릴 수밖에 없다. 십만 명이 참여하는 행사 아닌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부스랑 차량에 어떤 단체와 모임들이 나오냐고 묻는다. 참여하는 기업과 대사관은 뭐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그런게 궁금해? 당신들을 섣불리 넘겨 짚은 걸 반성한다. 그러니까 초미의 관심을 두며 문제 제기하는 이들은 운동단체만 있는 게 아니다. 축제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활동가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행성인의 경우 참여하는 이들 역시 생업을 하면서 크든 작든 한해의 영혼을 끌어모아 바치는 행사가 퍼레이드다. 뭘 할지 사방에서 쏟아지는 아이디어를 주워모으느라 쉬엄쉬엄 보내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자긍심은 개인의 실존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소속감을 느끼는 단체와 행사에도 갖는 게 인지상정. 나는 그들의 하이퍼 텐션을 가라앉히며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기가 다 빨리지만 어쩌겠나. 대낮에 얼굴 까고 춤추러 나간다는데 누군가 나의 언어와 감수성을 도구처럼 사용하고 뺏는 것 같으면 항의하고 싸워야지. 필요하면 논쟁도 불사하며 설득하고 합의점을 찾고, 그러지 못하면 나와서 뭐라도 보여야 한다. 이건 퀴퍼 때만 생기는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고, 평상시에 활동하면서 배운 거다. 프라이드가 별건가. 
 
누군가는 의견을 낼 때 예의와 상냥한 태도를 요청하지만, 실상 대화와 협상은 그렇게만 이뤄지지 않는다. 나역시 활동하면서도 제시한 채널 바깥으로, 예상치 못한 톤과 매너로 의견을 받거나 논의를 제안받는 일이 부지기수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보면 타인이 내 노고를 인정하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허나 이 또한 어쩌겠나. 어째서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예상을 부수며 문제제기 하는가를 살펴야지. 몸소 링에 올라야 할 사안인지 주시하면서 설명할 언어를 준비하고 당신과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파수를 맞춘다. 난 회피형 인간이지만 누구라도 각 잡고 들이대면 가드는 제대로 올리자는 편이다. 위협이 크지 않은 이상 날리는 훅은 지금처럼 직구보다는 변칙구가 대부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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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퀴퍼에 행성인은 차량을 신청하지 않았다. 행진단도 따로 꾸리지 않았다. 매년 행진 차량을 점하는 것에 강박을 버리자고 설득해온 여론이 어느 정도 먹혔다. 덕분에 일이 훨씬 줄었다. 그런데 부스를 총괄 담당하게 되었다. 선뜻 수용한 과거의 나를 탓하기엔 이미 늦었다.
 
올해는 담당 스탭과의 소통이 다른 때보다 잦았다. 이번에 조직위는 부스 외 활동까지 신청 받았다. 그러려니 하고 세 시간 정도 리플렛 나눠주겠습니다~ 기획안을 냈지만 반려당했다. 안전상 문제가 이유였다. 오케이, 그럼 세 시간 풀타임 접고 한 시간에 삼십 분 세번씩만 활동 할게요~ 형평성에 맞지 않으니 한 시간에 이십 분씩만 해달라는 요청이 돌아왔다. 이십 분 띄엄띄엄 말씀인 거죠? 더 얘기 해봐야 돌아오는 답은 비슷할 것 같아 그러겠노라 답했다.
 
곧이어 서약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약속한 시간을 지키고 행사를 진행하는 이들을 존중해달라는 것이다. 서약까지 하라고요? 동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 올해는 깐깐하게 챙기는구나.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메일을 받았다. 부스 바깥 활동시간을 적어둔 명찰을 걸고서만 활동하라는 지침이다. 잠깐, 부스 참여자들은 존중받는 거 맞나? 그냥 관리대상으로 통제당하는 느낌은 기분탓인가. 그게 다양한 목소리가 축제 안에서 어울리게 하는 방법인가? 당신의 존중을 위해 타인이 수치심을 감당하는 것은 정당한가? 
 
근래 규모가 커지면서 안전과 원활한 진행을 위해 퀴퍼 조직위가 관료적 운영을 강화하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참여단위를 빠듯하게 관리해도 누군가는 그냥 와서 시위를 하고 항의행동을 한다. 꼭 혐오세력처럼 보이는 이들을 세심하게 골라 입구컷하지 않더라도, 내부의 파열음은 언제든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게 광장의 덕목인 것을. 항목이 많아진 만큼 빈틈도 많아지고 예기치 못한 얼굴이 출현한다. 그것 또한 광장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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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대도 완전한 소통은 어렵다. 눈앞에 문제들이 산재하고 테이블을 만들어 이야기나눠도 해결보다는 입장과 이해 차이만 확인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당신의 노고를 백번 알아도 그거랑 방향이 달라서 날을 세우는 일은 별개다. 상대도 나에 대해 비슷한 불만을 갖기가 쉽고, 합의는 갈수록 어렵다. 그렇다고 이 행사를 보이콧 할것이냐...아니 왜? 내가 여기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고가 얼만데.
 
나의 경우, 남의 단체와 활동가들이 제국의 지원을 받든 초국적 기업의 후원을 받던 운동이 도움을 받으면서도 주도력을 가질 수 있다면, 더불어 제국과 초국적 기업의 돈이 주력하는 공동의 활동을 좌우하거나 우리의 노고가 고스란히 그들에게 넘어갈 것이 아니라면 크게 말을 얹지 않는 편이다.(나의 회피성향은 융통성(ゆとり)의 장점또한 갖고 있다) 하지만 내가 동료들과 영혼을 갈아넣어 참여한 활동에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자긍심을 가져다 자기네들 이미지세탁하는 데 쓰는 거면 참지 않는다. (여기도 받고 저기도 받는데 왜 퀴퍼만 가지고 비판하냐고? 제발 퀴퍼가 개별단체와 다른 것이 뭐냐고 호소하지 맙시다. 그것이야말로 사유화의 지름길…나는 누가 자기 돈 써가면서 다른 단체 행사에 땀흘려 몇만보를 걷고 온체력을 다해서 꾸미고 나오는걸 본적이 없습니다.) 지금 성소수자 지지가 갈급한 한국에서 기업이든 대사관이든 와서 지지를 표명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냐고? 세를 보이는 일이 아무리 갈급해도 성소수자가 팔레스타인 학살과 건강보다 이윤 챙기기에 급급한 이들의 문제에 방패막이처럼 쓰이는 건 원치 않는다. 그건 핑크워싱이 맞고, 참여하는 입장에서 가오 상하는 일이다. 더구나 내 몸을 내가 결정한다는 문구를 일개 지방흡입전문병원이 가져가는 건 (좀 웃긴데) 도둑맞은 느낌...다양성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예전처럼 영혼까지 갈아넣을 일은 없을 예정이지만(바람이다), 언제라도 문제가 생기면 문제제기하고 항의한다. 이것 또한 참여주체로서 행진의 가치를 실천하는 정당한 의견 표명이다. 이렇게 유난을 떨어도 운동이 그동안 퀴퍼에서 안전을 해치는 일이 있었나? 유난떤다고 끌려나온 기억은 있다만, 그때 안전을 위협받는 쪽은 사실 이쪽이다. 단언컨대 우리는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며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추구합니다. 민주적인 의사소통에 절차상의 형식을 존중하지만, 형식만 따지는 일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자긍심은 상대의 배려와 존중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행진이라고 춤만 추는 자리가 아니다. 며칠 전 행성인 회원이 말했다(그 또한 급여없이 활동하는 동료다), 이제는 좀 불편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조금 바꿔서, 이제는 불편을 감당할 수 있어야지 않을까. 정말 미련이 사라지고 답도 없어 보일 때 발을 끊는 것이 방법일 수 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당장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불편함을 인지하며 협상하고 소통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와 당신이 원하는 타이밍과 문법과 요구를 일일이 맞출 수는 없다. 변칙과 우연, 온갖 뒤틀림과 불화의 난잡함을 안고 소통하자면 각을 잡으면서도 협상가능성을 찾기 위한 노고를 감당할 나의 자존감이 어디서 지지받고 뿌리내리는지, 어떤 만남과 관계를 그리며 드러내거나 드러내기를 거부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갈등의 진폭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커질 수 있고, 언젠가 너도 나도 등을 돌릴 날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내 자존감의 뿌리엔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광장을 일궈온 당신의 노고도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위기에 놓일 때, 활동을 방해하고 훼방하는 일이 생길 때, 우리는 언제라도 당신 곁에서 함께 싸웠고 싸운다. 그게 광장에 나온 성원권을 행사하는 일이며 같이 만드는 행진의 의미라고 믿는다. 
 
아무튼, 5월 웹진은 힘내서 좀 일찍 냈다. 6월 1일이 퀴퍼니까. 얘기하고 보니까 일이라고 해도 소싯적부터 퀴퍼는 여러가지로 각별했지 싶다. 올해 지역 퀴어퍼레이드 행사일정은 이미 달력에 적어뒀다. 
 
 
덧: 그래서말인데, 2024년 서퀴를 2014년 혐오세력이 광장에 나와 훼방놓은 10년으로 의미부여하지 않으면 좋겠다. 왜 우리가 그들을 기념 씩이나 해야 하나. 물심양면의 고생이 역사적 의미와 비례하는 건 아니다. (공식석상에서 들은 발언이 있어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