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행성인 HIV/AIDS인권팀)
글을 어떻게 시작할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다. 퀴퍼에 참여한 사람이 흔히 쓸 법한 퀴퍼 후기면서 뭘 이렇게 망설이나 싶긴 하지만, 사실 내가 이 글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확신이 잘 없었다. 그래서 첫 문단을 새로 쓰다가 지우는 과정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화려한 비유와 이것저것 주워들은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을 웃기고 글 좀 친다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그냥 내가 경험한 퀴퍼를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 글은 내가 살면서 두 번째로 참가한(처음이 작년이었다) 서울퀴어퍼레이드, 줄여서 '서울퀴퍼'에 대한 일기? 회고? 같은 짧은 글이 될 것 같다.
1. 2024년 5월 말, 행성인 HIV/AIDS인권팀 회의가 끝나고 팀원들끼리 술을 마시며 뒷풀이 중이었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뒷풀이의 주된 주제는 얼마 남지 않은 서울퀴퍼였다. 이번 퀴퍼에 (심지어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역 민간인 학살이 국제적인 규탄을 받고 있는 이 시국에)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영국, 미국, 독일 대사관과 길리어드 및 GSK와 같은 초국적 제약 회사가 버젓이 부스를 내는(심지어 길리어드는 유명한 드랙퀸들을 섭외해서 트럭까지 가져가는) 현실에 모두가 공분을 토하던 참이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 팀원들은 에이즈팀 차원에서, 혹은 다른 단위와 연대해서 퀴퍼에서 어떤 종류의 규탄 행동이라도 하면 안 되느냐는 의견을 강하게 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퀴퍼가 일 주일 남짓 남았을 때였고, 현실적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행동을 조직하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버거운 상황이 맞았다. 하지만 이번 퀴퍼를 그냥 넘어가기에는 이슈의 중요도가 너무 컸고, 다들 서울 퀴퍼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상당했다고 느꼈다. 일단 나는 그랬다.
행성인의 회원으로 처음 참가하는, 그리고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가 보는 퀴퍼이기도 했다.(첫 퀴퍼는 작년에 퀴어 커뮤니티에 나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사귄 지 일주일이 갓 넘은 첫 애인과 참가해서 엄청난 퀴어 뽕을 받았던 기억이 있지만 그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규탄해야 할 이슈에 대해 행성인이, 그리고 행성인 에이즈팀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나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이슈에 대한 나의 분노와 문제의식을 소리낼 수 있는 창구를 행성인과 에이즈팀에서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에이즈팀 텔방에는 피켓과 리플렛 등을 제작해서 길리어드 규탄 행동을 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안내가 올라왔다. 나도 당연히 같이하겠다고 했다. 그날 이미 내가 돕거나 참여하겠다고 한 활동이 몇 개 더 있어서, 엄청나게 바쁜 퀴퍼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2. 퀴퍼 며칠 전에, 집 근처 대학교의 퀴어동아리 회장에게 연락이 왔다. 혹시 퀴퍼 부스 물품 옮기는 것을 도와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해당 학교와 그 기숙사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고 나는 그와 평소에 가까운 친구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알겠다고 했다. 퀴퍼 당일 아침, 7시 정도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얼굴에 내 능력 최대치의 꾸밈 노동을 가했다.(파운데이션을 바르고 가벼운 셰딩까지 했다는 뜻이다) 그 후에 걸어서 친구가 사는 대학교 기숙사까지 갔고, 둘이 함께 택시를 타고 열 시도 되지 않아서 퀴퍼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일을 시작한 각종 부스 담당자들과 퀴퍼 자원활동가들이 벌써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동아리 부스 물품을 옮기고 테이블 세팅까지 도와준 다음, 친구에게 편의점 대용량 커피를 얻어 마시고 그날 나의 드레스코드를 완성시켜 줄 붉은색 카피예(아랍 지역 전통 스카프)를 빌렸다. 그날 나는 블랙/화이트의 셔츠와 초록색 반바지, 그리고 붉은색 카피예로 팔레스타인 국기 컬러에 맞춘 옷을 입었다. 며칠 전부터 계획한 건데,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3. 친구의 동아리 부스 세팅을 도와주고 나서는, 행성인 부스와 그 옆에 있는 '모두의결혼' 부스로 갔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행성인 부스에는 회원 몇 명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 지하철역에서 활동가 분들이 차에 싣고 가져올 부스 물품들을 기다리다가 짐을 옮기고 부스 세팅하는 것을 아주 잠깐 도와주다가, 열시 반이 넘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서울도서관 앞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두 해 연속으로 서울시는 서울광장에서 퀴퍼가 열리는 것을 불허했고, 올해는 서울광장에서 책읽기 행사를 열었다. 서울시의 이런 찌질한 선택, 그리고 전국의 도서관에서 성평등, 성교육 도서들이 검열되어 없어지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 서울광장에서 성평등 책읽기 공동행동 및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원래 서울광장 안, 책읽기 행사가 열리는 곳에서 하기로 했지만, 5월 중순부터 책읽기 행사 시작이 오후 4시로 미뤄지고 그 전까지 서울광장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신 서울광장을 등지고 서울도서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기자회견 전에 짧은 릴레이 발언을 할 참가자들을 모집하길래 나도 발언하겠다고 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었고, 모두 자신이 가져온 책에서 한 구절씩 읽은 다음 발언이 시작되었다. 취재 요청서를 여러 언론에 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작 현장에는 유명한 진보 성향 언론의 기자 한 명만이 와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노트북을 조금 두드리다 금세 자리를 떴다. 발언이 끝난 후에는 다같이 서울광장을 가로질러 행진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의 마찰이 조금 있었지만 금방 해결되었다. 기자회견 시작 전부터 끝까지, 우리 앞에는 소규모의 혐오세력 집회가 열렸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댔다. 혐오세력 집회가 트는 음악과 서울시에서 광장에 틀어놓는 음악이 대화를 주고받듯이 이어져서, 우리는 배경음악까지 틀어준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서울광장 구조물 앞에 놓인, 책읽기 행사를 위한 빈백이 마침 또 핑크색과 하늘색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트랜스젠더 프라이드 플래그 색조합을 떠올렸다. 2년 만에, 서울 퀴퍼 당일에 서울광장이 무지개 프라이드 플래그와 (대충) 트랜스젠더 플래그 색으로 물들었다.
4. 공동행동과 기자회견이 끝난 후 서둘러 점심을 김밥으로 해결하고 다시 퀴퍼 현장으로 향했다. 한시부터 두시까지 길리어드 부스 앞에서 에이즈팀 인원들과 함께 초국적 제약 회사 규탄 행동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퀴퍼 며칠 전에 에이즈넷에서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활동가들이 있다는 공지를 받았고, 현장에 가 보니 꽤 많은 인원들이 함께했다. 많아봤자 서너 명의 에이즈팀원들이 함께하는 행사를 예상했었는데 정말 많은 단위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이래서 역시 애초에 행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더운 날씨에 피켓을 들고 다함께 한 시간 동안 구호를 외치고 발언을 들었다. 길리어드에서 후원을 해 주었던 것인지, 퀴퍼 현장의 간이화장실에는 대문짝만하게 길리어드 로고가 붙어 있었다. 규탄행동 중간에 세 명의 활동가가 화장실 앞에서도 시위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가 싶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평소에 나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노는 게이 친구들이 화려한 착장을 하고 퀴퍼를 즐기다가 지나가며 나와 눈이 마주치고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내가 세상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을 그들이 실제로 보는 것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퀴퍼 현장 곳곳을 길리어드 부스에서 나눠 주는 주황색 풍선들이(마침 올해 서울 퀴퍼의 공식 로고 색상도 주황색이 아니었는가. 이 무슨 우연의 일치람.) 누비고, 땀을 흘리며 규탄 행동을 하는 바로 옆 길리어드 부스 바로 앞에서는 화려한 분장의 유명한 드랙퀸들이 제약 회사들의 후원을 받고 풍선을 든 채로 유튜브 등 온라인 매체에 올라갈 영상을 찍고 있었다. 덥고 지치는 건 우리나 저들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5. 규탄 행동이 끝난 후에는 두 시부터 모두의결혼 부스 활동을 도와주기로 했다. 담배를 급하게 피우고 모두의결혼 부스로 달려갔다. 피크타임이었고, 모든 부스들 앞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카피예와 셔츠를 벗어 행성인 부스에 내팽개쳐두고 모두의결혼 티셔츠를 입은 다음 이삼십 분 정도 부스 앞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 주었다. 이미 부스에 인력은 많았지만 사람 한두 명이 더 도와준다고 해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모두의결혼 부스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퀴어 커뮤니티 밖에서 전부터 대충 알고 지낸 지인을 진짜 뜬금없이 마주쳐서 둘 다 당황했다. 종교 커뮤니티에서 만난 그가 어느 정도 진보적인 성향이며 작년 퀴퍼도 참석했음은 그의 SNS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는 나를 이성애자라고 알고 있고, 여기서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지인이 부스를 해서 들렀다는 그에게 '어.... 나도 부스 하고 있어서....'라고 말하고, (그의 제안으로) 둘이 어색하게 셀카를 찍고 헤어졌다. 의도치 않았지만 태어나서 대충 처음으로 커밍아웃 비슷한 것을 한 날이 서울 퀴퍼 당일이라니. 정말 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의결혼 자원활동 일정이 끝나고 다시 잠깐 담배를 피운 후 모두의결혼 부스 바로 옆에 있는 행성인 부스로 달려갔다. 행전 직전인 네 시까지 행성인 부스 운영을 한 시간 동안 도와주기로 했다. 담배를 피우다가 모두의결혼 활동을 하며 만나서 친해진, 모 대학교 퀴어 동아리의 회장인 친구를 만났다. 세상 만사가 다 귀찮고 지친 표정이었다. 아마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지레짐작했다. 행성인 부스에 가서 던져놓은 셔츠와 카피예를 다시 착용하고(결국 나중 가니까 더워서 다시 벗었다.) 행성인 부스 운영을 도와주었다. 마침 내가 일하도록 되어 있는 시간대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몰리는 시간대였나 보다. 두 명을 응대하고 부스 안내를 하는 동안 뒤로 다섯 명이 몰려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행성인 부스에 진짜 온갖 군데에서 다 만난 나의 친구들이 몰려들어 행성인 뱃지를 사 주고, 전단지를 받아가고,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정당 활동을 하며 만난 친구들, 비건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 게이 커뮤니티와 퀴어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들에게 일일이 반갑게 인사하기에는 내가 너무 덥고 정신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이런 일로 바쁘고 정신없는 게 싫지는 않았다. 부스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거는 것이 생각보다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6. 네 시가 되어 행진 준비를 시작했다. 행성인 회원들과 모두의결혼 활동가들은 첫 번째 트럭인 엠네스티와 모두의결혼 공동 트럭을 따라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몇 명의 에이즈팀 사람들과, 한 시에 있던 길리어드 규탄행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은 길리어드 트럭 바로 뒤, 혹은 바로 앞에서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규탄 행진을 하기로 했다.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린 끝에 어쩌다 보니 우리는 마지막 트럭인 길리어드 트럭 행진의 맨 뒤, 그러니까 퍼레이드의 극후미에 서게 되었다. 현수막을 들고, 퀴퍼 안의 누군가에 대해서도 규탄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충분히 프라이드를 외치고 우리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외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규탄의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에 더더욱 프라이드를 외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길리어드 트럭에서 유명한 드랙퀸과 인플루언서들을 불러 화려한 공연을 펼쳤지만, 우리는 워낙 끄트머리에 있어서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퍼포먼스도 보이지 않았다. 행진 경로 중간중간에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이 '드랙퀸은 환영하지만 길리어드는 환영하지 않는다'는 피켓을 들고 우리를 응원해 주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반가움과 고마움에 크게 환호했다. 여러 명이서 대형 현수막 하나를 나눠 들고 몇 킬로미터를 걷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끝까지 잘 해냈다. 우리의 현수막에 담긴 메시지는 행진을 지켜본 사람들 모두가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얼마나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7. 행진이 모두 끝나고 부스를 정리한 후, 제약회사 규탄 행동 참여 인원과 모두의결혼 활동가들, 그리고 행성인 회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나서, 지치고 땀에 절은 행성인과 모두의결혼 사람들은 다함께 근처 술집에 모여서(다 합치니 인원이 꽤 돼서, 몇십 명이 들어갈 술집을 토요일 저녁에 찾는 것도 꽤나 고역이었다.) 뒷풀이를 했다. 퀴퍼 현장에서 너무 바빴기에 오갈 수 없던 이야기를 술을 마시며 주고받았다. 이번 서울 퀴퍼에 이슈가 많았던 것은 정말 안타까웠지만, 나와 같은 안타까움을 공유하고 함께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육체적으로 지치고 힘든 날이었지만 나중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하고 또 바쁘게 이곳저곳 다니며 머릿수를 채울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8. 며칠 후에 서울 퀴퍼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 자원활동가들이 찍은 공식 사진들이 게시되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여 대사관 규탄행동을 한 사람들, 초국적 제약회사 규탄행동을 한 사람들,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 행진에서 대사관과 초국적 제약회사를 규탄하는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걷던 사람들은 (분명히 우리를 찍는 기록 자원활동가들을 보았지만) 공식 사진에 단 한 순간도 등장하지 않았다. 우리에 대한 기록은 각 단체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그리고 활동가들의 텔레그램 톡방에만 남았다. 언론은 퀴퍼 당일 오전에 행해진 성평등 책읽기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많이 말하지는 않았다. 잠깐 현장에 있다 자리를 뜬 진보 성향 언론의 기사에만 딱 한 줄 언급되었다. 길리어드가 섭외한 드랙퀸들의 SNS 채널에는 퀴퍼 현장에서 찍은 홍보 영상과 미국 및 영국 대사관에 초청받은 기록이 올라왔고, 미국과 영국 대사관 SNS에는 각종 성소수자 인플루언서들을 불러모은 행사에 대한 기록이 올라왔으며 수백, 수천 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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