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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35. 거짓말, 게임앱, 산타 삼촌들

by 행성인 2025. 3. 25.

 

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기획의 말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딱 걸린 거짓말

 

며칠 전 아이의 거짓말이 딱 걸렸습니다.

 

아이가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틀어 놓고 찢어진 풍선을 갖고 놀고 있더라고요. “다 놀고 쓰레기통에 버리렴하니 “라고 아주 쿨하게 대답을 했어요. 그런데 이 녀석 세면대 하수구에 그냥 버린 겁니다. 하수구가 막히면 대공사인데.

 

딱 걸리자, 마당으로 도망쳤어요. 비가 와서 바닥이 미끄러운데 그만 쿵하고 넘어졌어요 발등과 무릎이 까지고 바지에 온통 흙이 묻어버렸습니다. 아이가 많이 놀래서 대성통곡을 하길래 안아주고 달랬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약을 바르는데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지요. 아이가 연고는 싫다 하고 밴드만 붙여달라고. 약을 바르면 쓰라려서 그런지 거즈만 대고 그 위에 반창고 붙이는 건 OK래요.

 

이렇게 아이가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아주 능청스레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인가, 아이가 낮에 쉬아를 한다고 하길래 화장실에서 하라고 일렀어요. “네" 라고, 대답은 아주 시원하게 하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 놓여 있는 쉬야통을 보니 거기에 일을 보았더라고요. 밤엔 깜깜해서 화장실 가기가 무섭다고 쉬아 박스를 방안에 비치해 놓고 있어요. 아이가 혼자 화장실 불을 켤 수 있도록 나지막한 나무 탁자를 하나 갖다 놓았습니다. 

 

미운 네 살에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다음에 중 2 병이 찾아오는 사춘기에는 또 어떤 거짓말을 마주해야 할지요. 아마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부모가 못하게 하거나 반대할 때 둘러대지 않을까 싶습니다. 밀당의 차원에서, 부모가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속아주는 지혜도 필요할 듯싶습니다(크게 위험하지 않은, 중대하지 않는 일이라면 말이죠). 

 

 

아니 웬 게임앱이?

 

 

아이가 좋아하는 앱은 '유튜브키즈'입니다. 주로 아이패드나 핸드폰으로 보지요. 가장 좋아하는 것은 프로그램은 뽀로로와 친구들입니다. 뽀로로는 여러 명의 친구들과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입니다그야말로 어린이들의 대통령뽀통령이지요. 눈이 내리지 않는 필리핀에서는 눈이 있는 풍경과 눈사람이 무척 신기할 겁니다. 

 

또 하나는 쫑알쫑알 똘똘이 TV’  채널입니다. 똘똘이는 똘봉이 오빠와 똘랑이 동생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지요. 똘똘이는 집과 가게에서 애완동물과 함께 놀고 사고도 치는 이야기인데 인보가 아주 좋아합니다. 이 애니는 주인공 어린이가 부모님과 할머니와 함께 대화를 나누어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익힐 수 있어 좋습니다. 이런 동요도 있더라고요, ‘존댓말은 어렵지 않아' 라면서 '요'를 붙여주는 동요를 보았습니다. 뽀로로나 다른 애니메이션은 주로 친구들과 노는 이야기라 주로 반말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인보가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한테 반말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그때 존댓말로 가르쳐주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학교에서 영어와 필리핀어를 주로 사용할 것을 대비해, 집에서는 아이에게 존댓말로 대화를 합니다. 아이가 어르신을 만났을 때 존대어를 잘 구사할 수 있도록요.

 

그런데 웬 게임앱 이야기냐고요?

 

어느 날 제 핸드폰 배경화면에 어린이 게임 앱이 여러 개가 깔려 있지 뭡니까. 어리둥절해서 보았더니 아빠 핸드폰을 보면서 게임앱을 다운로드한 것이 제 폰과 연동이 된 것 같습니다. 찰스 아빠 왈어느 날 밤에는 게임에 푹 빠져 새벽 1시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하네요.

 

유튜브와 달리 게임의 부작용은 심각합니다. 게임을 하는 중에 밥을 먹자고 부르면 배부르다고, 안 먹겠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지요. 일단 제 핸드폰에 게임앱이 설치되지 않도록 관련앱을 중지시켰습니다. 

 

게임을 가장 좋아하는 나이, 즉 청소년 시기에 게임은 또 얼마나 전쟁을 치러야 할까요? 

 

 

G 삼촌

 

 

아주 오래 동안 소식이 끊겼던 G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아주 반가웠어요. 아이와 저를 위한 선물을 한 보따리 싸가지고 왔습니다.

 

G는 저에게 읽고 싶은 책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어요. 사가지고 오겠다고요. 그래서 저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도저히 구할 수 없었던 3공 펀치와 버물리를 부탁했습니다. 

 

인보를 위한 선물로, G는 아이의 한글 공부에 필요한 책을 이야기했더니 자신이 갖고 있던 파일을 제본해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와 사탕, 말랑말랑한 젤리를 한 아름 선물로 주었습니다. 특히나 요 녀석 사탕을 혓바닥에 문지르고 빨아먹는 눈빛은 ‘황홀해, 황홀해’ 그 자체랍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H 삼촌

 

 

 

H는 8년 만에 필리핀 우리 집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저희가 마닐라에 살 때 그리고 민다나오섬 수리가오 집에도 다녀갔지요. 덕분에 필리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매사에 꼼꼼하게 준비하는 H삼촌은 우리 가족을 위한 선물을 캐리어에 잔뜩 담아 왔습니다. 뽀로로 색연필부터 저와 찰스형을 위해 핸드폰과 옷가지를 사다 주었습니다. 

 

필리핀 한달살이, 우리 집에 머물면서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쇼핑몰에 가서는 아이의 머리관리를 위해 드라이기, 머리빗과 핀, 머리띠를 사주었습니다(부모가 아이 헤어관리를 엉망으로 한다고 야단도 엄청 먹었어요). 

 

H는 손재주가 아주 좋은 맥가이버입니다. 우리 집에 머물면서 화장실에 비데와 샤워기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고장 난 변기 손잡이도 교체했어요. 손재주가 메주인 저와 찰스 형은 푸세식으로 물을 퍼서 내리곤 했지요. 

 

마지막으로 H는 용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형 맛있는 것 사 먹고, 사 입고 싶은 옷 사 입으라고, 형이 필요한데 쓰시라고.” 동생이 준 용돈이 두둑하니 시내에 가면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하렵니다. 동생의 마음과 배려가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두 삼촌들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가 가끔 삼촌들이 보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 인보랑 저랑 기도해요. 

 

“삼촌들 선물 주셔서 고맙습니다. H 삼촌은 올해 (만학도가 되어 주경야독으로) 대학교 졸업반 공부를 잘 미치고 내년에 졸업할 수 있기를. 그리고 G 삼촌은 새로 전근가시는 학교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학생들과 즐겁고 행복하시기를.”

 

 

 

 

아우님들 또 오시게나

 

그대들을 만나서 즐거웠다오. 너희들 덕분에 맛난 요리도 해서 함께 먹고, 이곳저곳 함께 놀러도 다녔네. 한국말도 아주 많이 하고 말이야.

 

우리 가족을 위한 선물 너무 고마워. 다음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집에 놀러 오렴. 

 

늘 보고 싶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