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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by 행성인 2025. 4. 19.

 

지오

 

윤석열 파면 이후에 주변 동료들과 안부를 나누는 자리에서 '꽃이 보이더라'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지난 상임활동가의 사정 지면을 통해 개나리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는데요. 지난 4개월, 내란사태로 인해 꽁꽁 얼었던 마음을 잘 보여주는 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윤석열 파면 이후에도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계엄 이전에도 어떤 삶은 계엄이었다는 말과 같이 여전히 계엄 중인 삶들이 있어요. 광장의 외침을 변화로 일구어야할 퀴어들의 삶도 예외는 아니겠으나, 위태롭게 투쟁중인 현장도 여전합니다.  

 

지난 토요일, 4월 26일에는 475일째 고공에서 농성 중인 두 여성 동지를 만나고 왔습니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각자도생의 삶은 끝나지 않을테니까요. 광장에서 열망한 새로운 민주주의를 잘 열어가기 위해서라도 고공농성자들의 투쟁에 더욱 힘을 보태어야 할 것 같습니다. 

 

평등버스가 다녀온 다음 날, 소현숙 동지가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모쪼록 긴 투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잘 챙길 수 있기를 바라며, 또한 동지를 응원한 연대의 마음들이 회복에 함께하기를 바라겠습니다. 더불어 투쟁을 이어갈 박정혜 동지에게도 더욱 큰 응원의 힘을 보냅니다. 고공농성자들과도 ‘꽃’을 나누는 날을 앞당겨 보고 싶네요. 투쟁!

 

 

오소리

 

파면 이후, 광장에 나가느라 그동안 밀려있던/미뤄왔던 일들을 처리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일은 쉴 새 없이 쏟아져 몸은 지치지만, 어찌될지 모르는 파면의 순간만을 바라며 숨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4개월에 비하면, 새로운 활동을 기획하고 상상하는 지금 이 순간은 즐겁게만 느껴집니다. 

 

지난 4개월동안 행성인은 광장을 가득 메웠었는데요. 광장에 함께한 회원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지, 광장의 열기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 중입니다. 회원분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예쁘게 그려내 볼게요. 

 

어느덧 2025년 상반기도 이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네요. 하지만 두 달 동안 큰 이벤트들이 있죠! 광장에 이어 곧 다가올 아이다호, 그리고 프라이드먼스에도 행성인과 함께 세상을 바꿔보아요!

 

 

남웅

 

 

작년즈음부터 연배가 비슷하거나 살짝 높은 활동가들과 마주하는 술자리가 생기면 줄곧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활동할 거예요? 쓰고 보니까 웃긴데, 나름 진지하다.

 

이어서 묻는다. 그때까지 하고싶은 활동이 있어요? 생각보다 구체적인 답이 돌아온다. 대체로 50대 중반에서 60대 즈음 지금 하는 활동의 끝을 (일단) 예정해둔 슨배님들은 저마다 활동가로서 역할과 책임을 생각한다. 역량을 끌어모아 명망을 얻고 굵직한 성과를 남기는 목표에 앞서 지금 하는 일을 연장하거나 본인의 역할과 관심사를 좀 더 이어가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자산으로 운동사회나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싶어하는 것까지도.

 

소소하게 대화가 이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활동을 그만 두면 어떤 걸 하고싶냐고 묻는다. 다른 분야의 활동계획을 말하는 건 그만두는 게 아니니까 무효...지만, 대체로 나이듦을 염두에 두면서 지역과 공동체를 생각하고 활동과 생계를 슬쩍 겹치며 이후의 시간을 그리는 것 같다. 시간을 많이 뺏지 않으면서 오래 할 수 있는 취미와 여가, 관계와 노동을 겸하면서, 그걸 또 활동의 새로운 모델로 만들고 싶어하고. 몇년 전이었더라면 후줄근하게 들렸던 이야기였을 텐데, 에너지의 총량이 변하고 기운이 달라지면서는 발톱을 슬쩍 숨긴 채 힘을 빼는 것이 오래 일상을 이어내는 일이라는 걸 느끼는 중이다.

 

그럼 진짜로 활동을 그만 두면? 특별하게 계획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니, 활동이 일상에 체화 됐을 건데 직업활동가를 그만 둬도 활동을 배제하고 일상을 생각할 리 있겠나. 리더나 명망있는 활동가 말고 참고할 수 있는 활동가 롤모델이 귀하다. 이건 성소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다들 그걸 스스로 만들어간다. 활동 외길들을 걸으면서도 고민은 혼자가 아니다.  

 

 

호림

 

4월 1일부터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무행의 숙원 과제였던 사무국을 구성하고, 대내외적으로 무행의 활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 체계를 정비하며, 저와 희망법의 박한희 활동가가 무행의 대표로 선임된 것입니다. 

 

사실 무행의 계획은 지난 겨울 조직 구조를 개편하고, 사무국 체계로 일 할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는 거였는데요. 내란 사태로 열린 광장과 그 광장의 힘으로 만든 조기대선으로 인해 닥쳐온 일들을 헤쳐나가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고, 사무국이라는 구조로는 처음 함께 일해보는 동료들과 합을 맞춰나가며 새로운 구조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행성인을 떠난 것은 아니에요.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로 활동을 시작한 저와 한희는 소속단체와 무지개행동에 각각 반상근으로 활동합니다. 일주일 중 하루는 소속단체로 출근하고 4일은 무행으로 출근하는 방식이에요. 무행의 중요한 조직적 변화에 행성인과 희망법이 기꺼이 큰 품을 내어준 결과, 저희는 무행의 활동에 좀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맡게 된 지 꼬박 한달. 매주 월요일만 성산동 행성인 사무실에 출근하는 일상이 조금 낯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난 겨울 거의 사무실을 못 나오다시피 한 시간을 보낸 후에 바뀐 일상이라 이 또한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행성인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다르게 이어나갈 지를 모색하는 것이 제게 새로운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주로 연대단위 담당자 역할을 하며, 회원들과의 접촉면이 다른 상임활동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지 않았는데요. 주로 일하는 공간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행성인과의 접촉면을 잘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성소수자 운동이 차곡차곡 쌓아온 힘이 모여 이뤄진 성과라 설레고 자랑스러운 마음도 큽니다. 성소수자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성소수자 차별적인 법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앞으로 열심히 달려나갈 무행의 사무국을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