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우당의 죽음 그리고 천주교 이반모임 10주년 기념 미사의 기억
“한 동성애자 천주교 형제의 죽음에 천주교 형제자매들이 조문하고자합니다”라고 시작하는 애도의 글이 동성애자인권연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가톨릭 청년 8명이 한 청소년 동성애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올린 글이다. 회원들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할 것 같아, 2003년 동성애자인권연대 소식지에 전문을 싣기도 했다.
육우당의 장례식장을 찾은 신부님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비규환 같은 세상이 싫다며 자살로 한 생을 마감한 육우당.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죽음을 택했다고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너무 허망하기만 하다. 죽은 뒤엔 당당하게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거란 유서의 내용과 달리, 지금도 그의 본명을 쉽게 말할 수가 없다. 단지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만이 그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육우당이라고 불린다.) 그는 평소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을 굉장히 존경하고 좋아했다. 그는 유서 마지막에 신부님이 장례식장에 와서 슬픔을 함께 나누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나는 7년 전 비통한 슬픔에 잠긴 장례식장에서 얼굴도 모르는 신부님께 전화를 해 비보를 전한 바 있다. 아침 해가 뜨기 전 그 신부님께서 장례식장에 오셨고, 그와 나누었던 추억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기꺼이 동행해 주셨다.
육우당은 동성애자인권연대에 하느님이 축복을 내려주실 거라며 십자가와 성모상을 선물로 남겨 주었다. 사고가 있었던 2003년 4월 25일 사무실 책상 위 곱게 접은 한복 위에 놓인 십자가와 성모상에 담긴 깊은 슬픔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매년 4월이 되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십자가와 성모상을 꺼내 놓는다. 그가 남겨놓은 하느님의 축복을, 육우당보다 더 어린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있을 때 만난 시간보다 추모한 세월이 더 많아진 만큼 그와 보냈던 추억도 이제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우리는 육우당을 매년 추모하고 있지만 슬픔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없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죽음.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혹자는 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기 위해 추모하는 것이라면, 거창하지 않고 소소하게 추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육우당은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자신이 믿는 신앙 속에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동성애자들의 끔찍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한국 교회는 성소수자들의 고통을 끌어안기는커녕, 단죄하고 저주하고 있다. 육우당 죽음에 큰 영향을 미쳤던 2003년 4월 7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성명은 기독교의 정신을 의심하게끔 했다.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을 운운하며 동성애가 창조질서에 도전하고 있으며 에이즈 등의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책임감을 가지고 동성애자에 대한 선교적 접근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그들의 작태는 결국 한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내가 한기총 관계자들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러 기관에 방문했을 땐, 한 목사님으로부터 “부끄러운 줄 알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7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더 심해지고 조직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있었을 당시, 개신교 일부는 차별금지법을 ‘동성애자 차별금지법’으로 둔갑시켜 여론을 호도하더니, ‘동성애 허용법안 반대 국민연합’을 설립해 집회시위를 주동하고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 말인가?”, “아빠가 여자라니 웬 말인가!”라는 기상천외한 구호를 만들기까지 했다. 심지어 2008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정파괴 동성애 인권에 앞장선 이적단체라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가톨릭 교회는 어떤가? 교회는 지금까지 초지일관 동성애를 ‘죄’로 규정해 왔다. 최근 불거진 아동 성추행 문제에서도 교회 일각에서는 동성애 때문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나왔다. 동성애자 또는 성전환자라는 이유로 고용에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하는 영국의 평등법 입법안을 가톨릭 교회가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동성애자의 특별한 성향이 그 자체로 죄악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내재적인 도덕적 악의 경향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성향은 객관적인 이상증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한국에선 개신교와 달리 노골적인 반대 모습은 덜 하지만, 그렇다고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모습도 찾긴 힘들다.
교회는 누구보다 육우당을 추모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에 귀기울여주어야 하며 때로는 그들을 위로하고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가톨릭이 구현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교회 정문에 "모두를 환영한다"고 적혀있다.
성소수자를 포용할 수 있는 교회가 필요하다.
얼마 전 천주교 이반(동성애자)모임 10주년 행사에 다녀왔다. 50명 남짓의 천주교 신자들이 10주년 기념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쫓아가며 미사에 참여했다. 끝나고 나서 조촐한 축하의 자리가 이어졌다.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초대해줘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약속을 청했다. 신부님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의 온화한 웃음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이후 천주교인권위원회로부터 이 글에 대한 청탁이 들어왔다. 순간 천주교 이반모임 운영자를 인터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후 운영자에게 전화를 해 이 글의 의미와 취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저는 힘들 것 같은데요. 저희 모임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애써 태연한 척 “괜찮아요. 당연히 그렇겠죠. 너무 부담갖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더 가슴 아픈 점은, 그 스스로도 가톨릭이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고 성경에도 동성애는 죄라고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종교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더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이틀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결국 기약 없이 나중으로 미뤘지만, 그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사뭇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그에게 마음을 열어주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성소수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나의 의지는 이 글에 담지 못했지만, 이 글을 준비하며 시도한 천주교 이반모임 운영자와의 전화통화는 오히려 나에게 더 깊이 있는 고민을 던져준 것 같다.
그래도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
올 봄은 유난히 춥다고들 한다. 추위를 잘 타는 성격 때문에 아직까지 겨울옷을 정리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다. 나는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글 기고와 상관없이 천주교 이반모임 운영자를 만나 인터뷰를 할 생각이다. 그냥 수다 떠는 걸로 해도 좋을 것 같다. 그의 신앙심을 두고 왈가왈부하며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천주교 이반모임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다. 척박한 사회를 살아가며 신앙으로부터 위로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 막연히 생각해 보건데, 지금의 나의 위치, 나의 마음과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희는 육우당 형제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가톨릭 인권, 평화 및 제 단체들이 용기를 내어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기구에 대해 용감히 맞설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가톨릭 청년들이 동성애자인권연대에 보낸 애도의 글 마지막 문장이다.
나도 이 글을 쓰며 7년 전 가톨릭 청년들이 우리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처럼 따뜻한 봄이 빨리 오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정욜_ 동성애자인권연대 운영회원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교회와 인권] 2010년 4월 167호 소식지와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에도 함께 기고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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