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기를 보내거나 지나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추모의 편지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바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팀)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입니다. 제가 동성애자임을 깨달은 건 14살 때였어요. 그때 저는 제가 게이라는 것도 몰랐지만 제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지 정체성을 부정하기도 하였죠. 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상처도 받고 사랑도 하고 그랬죠. 지금 생각해보면 3년이라는 시간은 의외로 길었어요. 지금도 가끔씩 후회가 돼요. 조금만 더 자주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접했으면 빨리 정체화를 하고 자신을 혐오하는 마음이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 제가 커뮤니티에 나온 지는 어느덧 4년이 지나가는데 2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어요. 그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웃으면서 만나지만 마음 속으로는 ‘다음에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밤새 잠을 못 이룬 적도 많았어요. 어느 순간 제 입에서는 “꼭 다시 보자” 라는 말을 꺼내고 있는 제 자신을 저주했죠. 아직 청소년 성소수자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은 힘든 것 같아요. 청소년 성소수자는 많은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요. 학업,연애,가족,고민,진로 그 외의 걱정과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가는데 매 순간마다 자신을 혐오하는 걸 알아채고 우울감에 빠지죠. 언제쯤이면 아무 걱정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닐 수 있을까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전 오늘도 살아가요,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당신 그늘 아래서
사이토신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팀 <이반드림>)
그대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당신이 그렇게 저물고 12년이 지났습니다. 어느덧 나는 당신과 같은 나이에 머물러 흘러간 짧은 날들을 기억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 내 모습들을 수없이 비춰보았음을 모르시겠지요. 너무 빨리 저문 꽃, 당신의 그늘은 꽃비로 쏟아져 어느 새벽녘을 서늘하게 적시고 맙니다. 당신을 알게 된 건 2013년, 제가 퀴어로서의 첫 발을 내밀던 그 무더운 초여름의 일입니다. 흐린 새벽비가 내리고 선명한 무지개가 뜬 날, 그 홍대의 북적이는 거리의 어느 부스에서, 당신을 처음 보았습니다. <내 혼은 꽃비 되어> 라는 황색의 거친 표지의 손바닥만 한 책. 당신의 유고시집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맛본 자유의 날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었으나 금방 설움으로 가득 찬 삶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집이 나와 함께했지요. 삶에 스미던 우울을 뭉쳐 하나의 얼굴을 만들었을 때, 당신은 어딘가 저 멀리 있는 사람. 당신의 그늘 밑에 살면서도 잊고 있었습니다. 내 당신을 다시 떠올린 것은 다른 이들에게서 또다시 그대의 모습을 비춰보았을 때. 십 이년의 시간이 지났고 학교를 갓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또 당신이 떠오르고 다시 바뀌기 시작한다면 다시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아직도 옅어지지 않는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다시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다시는 그대 이름이 불려지지 않기를 바라며.
To. 故 육우당 씨와 힘들어하는 청소년 성소수자 친구들에게
깽빈 (<투게이 투데이> 메인 MC)
음... 안녕하세요? 인사를 먼저 드리는 게 낫겠죠? 저는 2015년도에 살고 있는 현재 21살 게이이자 기독교 신자인 깽빈이라고 합니다. 저와 같은 게이이시고 기독교 신자이신 분들이 많이 있을 거라 알고 있어요. 일단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말 많이 힘드셨을 거 같아요...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게이로 살면서 기독교 신자라니… 이런 말 드리긴 뭐 하지만 현재 상황도 그렇게 나아진 점은 없어요.여전히 힘들고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도 많이 들려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커밍아웃한 친구들은 전부 기독교를 믿고 있는 친구들이라는 게 아주 작은 희망이랄까요. 어느 정도 지나면 교회에서도 인정해 줄 거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어요. 물론 누구한테 인정받고 그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렇게 된다면 숨쉬기는 편해지겠죠. 올해가 육우당 씨를 추모하는 12주기라고 들었어요. 저희같이 힘든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신 아름다운 영혼이 저 밤하늘에 별이 되어 빛나고 있으시겠지요. 힘드실 거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말이죠. 저 또한 힘들었고 힘듭니다. 정말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요. 제 삶도 그렇게 순탄치는 않았지만 이렇게 이겨내고 사랑하면서 살고 있고 방송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물론 앞으로 더 힘든 일이 있을 거에요. 나중에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겨낼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어떤 핍박이 들어와도 생각하세요, 하나님이 만드신 건 다 뜻이 있으시다고 하잖아요? 그럼 저희가 성소수자로 태어난 것도 다 뜻이 있고 저희를 사용하실 목적으로 만드신 겁니다. 어딘가에 그분 뜻대로 사용하시기 위해 만드셨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어요. 지금 너무 힘이 들고 포기하고 싶고 다 내려놓고 싶더라도 조금만 더 정말 조금만 더 버텨봐요, 같이. 그리고 즐겁게 사랑하면서 살아봐요. 그리고 인권을 위해 노력하다가 돌아가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언젠가 누구보다도 더 떳떳하게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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