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과 봄은 유난히 추웠다. 조금 따뜻해지나 싶으면 다시 추워지고, 다시 조금 따뜻해진다 싶으면 그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는 날씨. 겪어왔던 수많은 겨울과 봄보다도 이번 겨울이 더 우울하고, 4월이 와도 즐겁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날씨도, 봄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도 단지 자신의 문제일 테니.
작년에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많은 일을 겪었다. 처음엔 고민도 많았고, 나의 행동에 후회도 많았다. 혼자 괴로워하기도 했고, 방황도 많이 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방황중이다. 그러나 항상 드는 생각은, 이 모든 것이 나를 구성하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두렵고 불안하지만, 언제나 스스로를 변화시켜주는 원동력들. 이번 캠페인을 대하는 마음도 그 때와 닮아있었다.
지난 4월 10일, 동인련 회원들과 소풍을 갔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분들이라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4월 25일에 이 캠페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더 먼저 알고 있었지만 이 날 같이 하지 않겠냐는 강한 권유를 받았다. 처음의 준비 단계부터 참여하지는 않았던 내가 같이 해도 될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같이 하기로 했다.
1주 전인 4월 18일에는 다 같이 모여 캠페인 준비를 하였다. 그 날 전시할 판넬도 제작하고, 예쁜 말풍선들과 꽃잎, 그리고 꽃잎을 붙일 나무도 만드는 등 즐거운 시간이었다. 처음 만나는 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미 알던 분들이라 좀 더 편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4월25일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봄꽃을 피우다 캠페인
그리고 캠페인 당일. 이 날은 이제껏 오지 않은 봄을 보상이라도 하듯 따뜻하고 화창했다. 간만의 좋은 날씨에 마로니에 공원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가득했고.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 봄꽃을 피우다'가 적힌 커다란 현수막부터 시작하여 준비한 것들을 이리저리 설치하고 사람들을 맞이했다. 모두들 정성들여 준비한 것들이라 그런지 호응이 상당히 좋았다.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글을 읽어주는 시민들, 팜플렛을 받아가는 시민들, 그리고 탄원서에 서명을 하는 시민들.
준비된 몇 명의 발언과 자유발언들, 편견을 적은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 등 캠페인을 모두 끝내고 마지막으로 고 육우당과 오세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분들이지만 무지개 깃발 위에 놓인 그들의 유품과 그 주변에 놓아둔 우리의 말풍선들은 잠시나마 침묵할 시간을 주었다. 우리들의 말풍선은 이들이 하지 못했던, 그러나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지 않을지.
4월25일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봄꽃을 피우다 캠페인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이런 캠페인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과연 사람들은 이런 행사에 관심을 가질까? 쓸데없는 걱정이더라.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은 준비한 판넬도 열심히 읽고, 나눠주는 팜플렛도 잘 받아갔다. 물론 나눠주는 팜플렛을 받지 않는 사람, 아예 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이 캠페인을 바라본다는 것이 참 반가웠다.
아직도 활동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다. 나라는 작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대로도 좋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팜플렛을 나눠주고 그걸 누군가가 받아가서 읽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언제나 크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활동이지만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 인상이 조금은 바뀐 것 같다. 이제서야 따뜻한 봄이 오려나 보다.
서리 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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