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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동인련 신입회원 프로그램 디딤돌을 다녀와서 적어본 나의 이야기

by 행성인 2010. 7. 4.
 

요 며칠 사이 습한 기운 때문인지 후덥지근한 한여름의 날씨가 조금은 누그러진 토요일이다. 비가 온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다행히 외출하기엔 나쁘지 않은 날이다. 그래도 여름이라고 이렇게 와 있는데, 주말임에도, 왠지 셔츠가 입고 싶어서, 드라이 클리닝한 후 옷장에 걸려있는 하얀 셔츠를 꺼내 입었다. 약도를 보니, 신축빌딩 3층이란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축빌딩은 없는데 도대체 어디 빌딩이란 말인가.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약도를 들고 두리번거리니 어디를 찾아 오셨냐며, 신입회원 모임에 왔느냐며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는 분과 함께 모임장소로 올라갔다.


오래간만의 이런 모임의 참석인지라 어색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고, 대학 신입생 때, 학기 초에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어느 동아리를 가입할까 하며 기웃거리다 들어가는 동아리 방처럼, 낯설지만 왠지 모르는 기대감에 약간의 설렘이 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고 그 연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좋은 일인 듯하다. 눅눅한 여름날에 냉방이 잘된 건물 로비에 들어가는 상쾌한 느낌이다.


쭈뼛쭈뼛 조금은 뻘쭘한 듯,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 어리버리한 상황에서, 크지 않은 사무실을 혼자 왔다갔다 하며 마주치는 낯선, 그러나 왠지 낯설지 않은 감정선과 삶의 일부분을 공유하는 그 사람들에게 그냥 간단하게 미소로 인사를 한다. 이미 프로그램 시작 예정시간이 훌쩍 넘어 버렸지만, 곧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고, 복도 한 켠에 둘러서서 나누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신입회원을 위한 디딤돌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신입회원 프로그램 중 동인련 활동 소개



기존 회원들과 신입 회원들이 섞여서 둘러 앉아 있는 터라, 서로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지만, 후다닥 지나간 소개로 인하여 아마도 각각 이름이나 닉네임과 얼굴을 함께 익히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개에 이어서, 짧지만 먼 길 달려온 시간들, 그리고 벅차고 힘들지만 잠깐씩 쉬며 뒤돌아보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단체의 활동들에 대한 슬라이드가, 바로 내 코앞에서 돌아가는 프로젝터의 뜨거운 팬소리와 함께 진행이 되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덜어내어, 한 가지를 위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함께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어떤 단체나 어떤 모임이나 이러한 모습은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가슴 뭉클해지는 무엇인가가 있다. 단체가 만들어 졌던 그 해,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잘나가는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그리고 사회인으로 출발하는 풋풋한 사회 초년 게이의 삶을 시작할 그 때쯤이며, 또한 대학이반모임에서 후배들 챙겨준다고 설레발 치고 다닐 그 때였을 터이다. 그 이후로, 동인련 및 다른 단체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활동하는 친구들이나 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바라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듯하다. 아니 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1991년 종로를 가득 메웠던 그 인파와 학생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1991년 봄은 나에게는 정말 혼란스럽고 스스로에 대하여 아주 큰 실망을 한 해였던 걸로 기억한다. 19살까지 내가 한 것이라고는 공부와 친구들이나 좋은 것만 보며 웃으며 살려고 한 날들, 그리고 짝사랑 그런 것들이 전부 다였다. 그런데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를 수 있고, 마냥 예쁘고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그 해 봄에 알게 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분신을 했던 그 해. 나도 이 몸 하나 분신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기도 했었다. 그 때, 아마 욱하는 성격에 뒤 안 돌아 보고 일을 저질렀다면, 아마 지금 나는 여기에 없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넓고도 길디 긴 종로대로변을 빼곡하게 투쟁을 외치며 모여든 군중들의 머리 위로, 최루탄과 사과탄이 하늘을 하얗게 뒤덮은 날, 나는 그냥 살고 싶다는 생각에 전철에 몸을 싣고 안암동 하숙집으로 돌아와서는 한참을 넋을 놓고 울기도 했었다. 내가 싫어서. 내가 미워서. 나의용기 없음에.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냥 눈감고 귀 닫고 입 막고, 내 가족, 내 친구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만 생각하며 살자고. 나 하나 예쁘게 좋은 것만 보며 살자고.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러한 나의 삶도 그렇게 투쟁하고 분신하고 꽃다운 나이에 온몸을 바쳐 우리를 위해 목숨을 다한 이들의 산고의 결과물임을. 내가 게이로 한 번도 부끄럽지 않고, 항상 나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서 살 수 있었던 것들도, 어쩌면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 시대일 지도 모를 어르신들이 극장 뒷골목에서 사람을 찾아다니며 기웃거렸을 그 시대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끊임없는 연마질과 눈물의 결과이며, 그것을 이어 받은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활동가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어렸을 때에도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으나, 굳이 게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한정 짓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학생 때에,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면서 내가 게이임을 인정하고 나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한정 짓기 시작하였다. 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그렇게 명확하게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다면, 살아가면서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아닌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영국에서 게이문화와의 접촉은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시내 가판대에서 판매되는, 매주의 시내 행사, 공연, 이벤트들을 소개하는 City Magazine에는 Gay & Lesbian 관련 행사나 이벤트들이 나란히 소개되어 있었고, 나에게는 충격에 가까운 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은 당당했고. LGBT들이 주로 모이는 지역에는, 시내에서 가장 멋지고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었고, 대로변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의 표현도 자유스러웠고, 그리고 빨간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녀도 굳이 누가 시비를 걸지도, 굳이 별나게 생각지도 않는 것을 보고, 게이로 산다는 것이 굳이 숨겨야 할 일도, 이상한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유준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것이 부끄러운 것도, 죄를 짓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우리가 말하는 그 PRIDE가 생긴 게 아닐까 한다. 세상에는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그냥 얻어지는 것도 극히 적다. 그 곳에서 살았던 게이들의 노력과 피눈물의 과거의 결과인 현재의 좀더 나은 호사를 나도 누렸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 어디에 가던 안티들과 포비아들은 다 있는 법이니, 그것까지 다 신경 쓰며 두려워하기엔 나도 너무 어렸고 머리가 아팠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호사를 누리는 것은 오래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이제는, 우리가 살고 있고 그리고 살아갈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호사를 누리고자 말이다. 물론 남들이 만들어 놓은 호사도 우리에겐 아주 큰 힘이 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갈 길이 없고 혹은 멀어도, 한 사람 한 사람 지나가다 보면, 풀만 무성하던 곳에 길이 만들어 지고, 결국에는 관습적인 통행로이든, 정책적인 통행로이든 그러한 길들이 아스팔트 포장이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 내가 느꼈던 그러한 자긍심처럼, 내 이후의 동생들이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고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행복하고 빛나는 삶을 위해서만 고민을 하며,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만만한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학로의 호프집에 이어서, 종로의 술집으로 자리가 이어졌다. 자리를 옮기면서 조금은 더 술기운이 올라오고 기분도 좋아지면서, 낯선 사람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는 이들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이 사람 없으면 어찌 살 것이며, 사람이 사랑 없이 어찌 살 것인가. 누구는 사랑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면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혹은 달음박질치는 우리들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1999년 KBS에서 방영된 노희경 작가의 <슬픈 유혹>이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난다. 지금의 <인생은 아름다워> 만큼이나 아주 큰 화제가 되었던, 동성애자를 주인공 그리고 주제를 다른 짧은 단편 드라마인데, 나오는 대사 하나하나가 나에겐 명언으로 남아 있다.


당신은 당신 혼자 모든 걸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러다 견뎌지지 않으면, 내 형처럼 죽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해!
비겁해! 사랑할 자격도, 위로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야!
사랑이 뭔 줄 알아?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거야!
그래서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 주는 게 사랑이야!
당신처럼, 내 형처럼, 혼자서만 끙끙 앓으면서 말하지 않고, 모든 것과 단절하는 게 사랑이 아니야!
난 당신을 만지고 싶었던 게 아니야! 잠자릴 하자고 한 게 아니야! 사랑하자고 한 거야! 외로우니까,
위로하자고 했던 것뿐이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다름이 차별이 되는 세상에서 작게 살기에는 우리들이 너무 크고 잘났다. 나 자신이 스스로 인권운동가로, 혹은 왕성한 활동가로 살아 보겠다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명의 마음이 더해진다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느 누구든지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몫이 있고, 그것을 다 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언제나처럼, 사람을 만나서 알아가고 대화를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 인 듯하다. 또한 나도 이 속에서 지금처럼 항상 유쾌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 또한 가져 본다. 그리고 서로 보듬고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ContigoYParaTi  하유준 @ Jun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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