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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성소수자

2010 청소년 활동가 대회 '쳇[Chat]' 에 다녀오다. - 로그인부터 로그아웃까지...

by 행성인 2010. 9. 7.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늘 긴장되면서도 설렌다. 특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대상을 만날 때는 더욱 그렇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 회원들을 제외하고 가깝게 만나는 청소년들이 없다보니 청소년 활동가 대회에 참석하는 청소년들은 누구이고 어떤 단체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는 궁금했다. 2박3일이라는 휴가를 희생하면서까지 청소년 활동가 대회에 참여했던 것은 순전히 이런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청소년 활동가들의 생각, 고민, 현재의 이슈, 논쟁을 함께 느끼고 싶었다. 배울 점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 활동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이 잠시라도 주어진다면 말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발 하루 전 참석자 명단을 봤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90년대 생이었다. (심지어 내 나이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참석자 가운데 내 또래인 20~30대 참여자들을 찾아보았다. 앗싸! 4명. 인권교육을 하며 청소년들을 만나 본 경험이 있는 인권활동가들이어서 그들 옆에만 붙어있으면 세대 차이로 인한 대화불가능 상태는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70명에 가까운 청소년들 가운데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참여한 청소년 회원은 1명이고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라틴에서 2명이 왔다. 또 소개를 하다 보니 다른 청소년 활동가 단체에서 온 성소수자들도 몇 명 있었다. 더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청소년 대부분이 외박이 쉽지 않은 조건이기 때문에 함께 가자고 권유할 수가 없어 아쉬웠다.

로그인. 청소년 활동가들의 발칙한 수다의 시작

처음 어색함을 털어내고자 시작한 프로그램은 자기소개였다. 자기 이름 앞에 형용사, 명사를 붙여 소개를 한 뒤 빙고게임을 통해 서로의 이름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지역이나 단체에서 함께 온 친구들을 제외하곤 서로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름을 알리는 일은 필사적이었다. 나는 ‘핑크’ 정욜이었다. 손발을 오글거리게 만드는 이름이었지만 2박3일 동안 쪽팔림을 무릅쓰고 ‘내가 바로 청소년이다’라는 생각으로 찾아 왔으니, 사실 이 정도쯤은 별 거 아니었다. 다행히 기억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빙고 맞추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언급되었다.

이어서 규칙정하는 시간을 조별로 갖게 되었다. 우리 조의 주제는 땡땡이와 성폭력이었다. 특히 성폭력 예방 규칙에 있어서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있어요? 라는 물음보다 애인 있어요?”라고 질문하기, ‘동성이든, 이성이든 신체적 접촉 조심하기’ 등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배려하거나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규칙들이 거론되었다. 다른 조에서는 호칭문제나 좀 더 재밌게 어울릴 수 있는 규칙들을 정했다. 마지막으로는 각 조에서 합의된 규칙들을 정리해 바닥에 깔아놓고 다른 조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동의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에 들면 파란색 스티커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빨간색 스티커를 부착했다. 그리고 다시 조별로 스티커가 붙여진 종이를 가져와 토론을 통해 내용을 수정했다. 최종안이 만들어진 뒤 다시 전체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물었다. 1명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그 의견의 적정성을 판단해 수정하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굉장히 긴 시간에 걸쳐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지만 작은 규칙 하나까지 민주적인 합의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저녁시간 뒤 서로의 활동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라디오 진행 형식이었는데 인터뷰 리포터가 돌아다니며 각 단체에서의 활동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각 단체에서 준비해 온 리플릿을 나눠주기도 하고 서로의 활동에 대해 궁금했던 질의시간을 갖기도 했다. 청소년 활동가 대회에 참여한 이들은 정말 다양했다. 요즘 조선일보에도 자주 오르내리는 청소년 인권활동 단체 아수나로를 비롯해 학교 인권동아리들, YMCA와 흥사단, 여성주의 청소년 활동모임, 탈학교 / 대안학교 청소년들. 10대 노동을 고민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라틴이나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 자긍심팀과 같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자긍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들 등. 약 3분 정도 활동을 소개할 수 있었지만 참여한 단체가 워낙 많다보니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못다 한 질문은 메모지에 적어 한쪽 벽면에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빨래줄에 걸린 질문 및 의견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인련, 라틴 커밍아웃이나 아웃팅이 두렵지 않습니까?”

“여성주의, 성소수자 단체들을 만나서 즐거웠어요”

“사람들이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자세히 알고 싶고 활동을 통해 개선된 점은?”


비록 질문지에 대답은 할 수 없었어도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라틴 청소년들을 보며 자신이 속해 있는 학교와 동아리, 또래모임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났을 때 자신 있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이성애자 청소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하기. 재미난 모듬 토론과 청소년 활동에 대한 끝장토론

둘째 날 오전 물놀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낮부터 밤까지 청소년 활동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이어졌다. 다섯 가지 주제의 모듬 토론은 청소년 활동가들이 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내 인생의 환승센터>, 활동을 하며 앗싸! 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는지<내 인생의 앗싸>, 밑줄을 쫙 그을 수 있는 순간이 있었는지<내 인생의 밑줄 쫙>, 설렘과 망설인 순간이 있었는지<설렘과 망설임>, 내 인생에서 헤어지고 싶은 순간이 있었는지<내 인생의 빠염>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활동 왜 해?’라는 물음이 던져진 조에 참여했다. 현재 나한테도 던질 수 있는 질문이기에 청소년들의 대답이 궁금했다. 재미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부모님(전교조 교사)의 영향으로, 공부가 싫어서. 짧게 요약하며 이렇지만 이들은 활동을 자신의 미래와 대비시키며 굉장히 혼란스러워 했다. 우리 사회의 통념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청소년기 공부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단순히 재미가 있어서,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 활동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듯 했다. 세상에 타협하지 않은 재미, 시험보다 자유롭게 놀 자유를 위해 싸우는 모습은 한 청소년의 이야기처럼 일상에서 청소년 인권활동으로 환승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삶에 활동이 더해진 것이라고 했다.

 


대회의 막바지, 마지막 프로그램으로는 청소년 활동에 대한 끝장토론이 진행되었다. ‘정글 속에서 청소년 활동 살아남기 대작전’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토론이었고 토론의 재미를 더 하기 위해 학생부장 20년차 ‘한많은’ 교사, 한국청소년보호연맹 ‘정겨운’ 학부모, 자유청소년연합 ‘나중립’ 학생, 대한민국청소년특별회의 의장 ‘최현실’ 학생 이렇게 4명의 논객이 등장했다. 규칙과 법을 앞세우고 자신의 학생부장 경력만을 앞세운 교사,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청소년들이 좋은 어른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부모, 청소년 고유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청소년, 개개인의 희생으로 이어지는 활동보다는 스펙으로 인정되어야 많은 청소년들이 활동에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주장하는 청소년. 이 네 명에 맞서 청소년 활동가 논객들은 농담을 섞어가며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하고 심지어 화를 내는 이들도 있었다. 일부 청소년은 우리 자신이 미성숙하다고 인정하는 발언을 하며 끝장 토론의 불을 지피기도 했다. 정말 정글이 따로 없었다. 사실 이것이 청소년들이 놓인 현실이다. 하지만 사면초가 상황에서도 청소년 활동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미성숙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싸우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자유를 위한 그들의 투쟁은 너무나 정당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뒤풀이 준비로 마지막까지 토론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청소년 활동의 필요성과 발전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로그아웃. 다시 청소년 인권활동의 현장 속으로.

마지막 날 오전, 전 날의 뒤풀이 기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아침을 라면으로 든든히 채운 채 강당으로 향했다. 각자의 위치로 다시 되돌아가기 1시간 전. 2박3일간의 일정을 평가하고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시간을 가졌다. 아쉬움. 즐거움이 공존하는 평가. 이후 플랭카드를 바닥에 깔아놓고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낙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활동가 대회를 통해 만난 인연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청소년 활동가 연대체 만들어요”

“학생인권조례 운동 함께해요”

“말도 안되는 세상을 향해 쳇”

“너무 재밌었어요”

 

 

활동을 공유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들고 싶어 했던 청소년 활동가들의 2박3일의 쳇. 나 역시 나이의 벽을 넘어 나름 잘 적응하고 어울리며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만난 사람과는 낯가림이 심해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과 이야기 하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크다. 다음 청소년 활동가 대회가 또 준비되어 진다면 청소년 성소수자들도 청소년 인권 활동가들과 격이 없는 교류와 연대를 확대하여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발돋움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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