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여름 밤 인사동의 한 전통 주점에서 욜과 함께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을 열심히 벌이고 있는 배경내 활동가를 만났다. ‘뭐든 하면 10년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권운동에 헌신했고 청소년인권운동과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경험이 풍부한 활동가와 대화하면서 성소수자 청소년 인권과 학교의 변화를 연결시키는 활동에 대한 고민을 넓혀보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소위 ‘인터뷰’는 금방 웃고 떠드는 수다가 되었다.
우리는 경내씨의 학생인권제정운동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교훈, 서울시 학생인권제정운동의 구상, 청소년 성소수자 활동, 교육 전반의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에 걸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배우고 공감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분량 때문에 많은 내용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인터뷰가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의 필요성과 의미, 나아가 다른 교육을 위한 꿈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방에서 인권교육을 마치고 올라와 피곤한 상태에서도 성의껏 인터뷰에 응해준 배경내 활동가에게 감사를 전한다.
인터뷰이 : 배경내
인터뷰어 : 욜, 나라
인터뷰 정리 : 나라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배경내
나라 : 우선 ‘동인련‘과 ‘랑’ 친구들에게 소개 부탁드려요.
배경내 : 제 별명은 개구리에요. 어려서부터 개구리 주변을 떠나지 않는 별명을 가져왔어요. 인권운동은 9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뭘 하든 10년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인권운동 사랑방’에서 10년 우물을 파다가 독립을 했어요. 적극적 지지 하에 쪼개지고 강해지는 운동을 하자는 많은 동료들의 합의가 있었던 거라 인권교육을 좀 더 전문적으로 열심히 해보자는 목표로 인권교육센터 ‘들’을 2008년에 창립해서 이제 3년째 접어들고 있어요.
요즘에 주로 하는 일은 오늘 인터뷰 주제인 ‘학생인권조례를 서울에서 잘 만들자, 아니 만들지 않아도 좋다, 고민하는 사람을 만든다’, 이게 저한테 중심적인 무게를 갖고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인권교육센터 ‘들’이 만들면서 고민했던 거는 인권이라는 영역이 진짜 광범위하잖아요. 이 운동의 범주가 제한돼 있지 않기에 다른 이름을 가진 운동이더라도 만나고, 넓어지고 가서 배우고, 나눌 수 있는 건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었어요. 그래서 ‘들’이 창립하고 2008년에 제일 많이 만났던 분들이 장애인권운동 하시는 분들이었어요. 그 일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그쪽 고민들이 지금은 이제 지적 장애를 가진 분들과 함께하는 인권교육으로 넓혀져서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 존재가 누구인가. 너무나 낯선 이 사람들과 어떻게 만날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나라 :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적 장애인들에 대해서 나도 생각을 안 해봤잖아요. 사회적으로 보통 안 보이는 것 같고.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라는 존재를 만나면서 내가 지적 장애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경내 : 지금도 연수하거나 교육하면서 만나는 분들 중에 “그래요? 저는 동성애자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있단 말이에요?” 이렇게 질문하는 분들 여전히 있어요.
나라 : 그럼요. 많죠.
욜 : 그렇게 장애인들을 만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이죠. 장애가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여기는 왜 이렇게 문턱이 높지 이런 게 보이잖아요. 사람들이 꼭 교육이 아니더라도 그 모습을 보고 직접 대화도 해보면 정말 교육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 : 우리도 그런 얘기하잖아요. 백번 동성애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보다 한번 만나서 인간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런 존재야’ 하고 말해주는 것보다 함께 생활하는 게 제일 많은 걸 알려주는 것 같아요.
경내 : 저희도 어디 갔다 와서 누가 거기 장애인 편의 시설 다 돼있냐고 물어보면 머리가 하얘질 때가 있어요.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고 장애 인권교육을 같이 한다고 하는 내가 내게 절실한 게 아니니까 안 보였던 것들이 있는 거예요. 교육이라는 것을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살면서 섞이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런데 지금은 사실 통합교육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학교를 지배하는 것이 주류의 속도와 주류의 시각과 정상성의 가치가 지배하는 교육의 프레임 안에 소수자들이 있거나 말거나, 아니면 자신이 적응하거나 아니면 덜 떨어진 인간으로 취급되는 게 학교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인권조례 하면 여러 내용 중에 보통 체벌이나 두발 문제를 많이 생각할 것 같아요. 물론 체벌이나 학생 두발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인간으로 올라오기 위해 굉장히 중요한 과정인 거죠. 가장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니까요. 때리지 말고 교육하고 만나자는 얘기가 체벌 논쟁인거고 두발도 내 머리카락 하나 자유롭게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냐는 문제이고, 내 신체를 통제하는 것이 내 정신을 통제하겠다는 것에 대한 저항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인간 선언인 거잖아요.
하지만 또 다른 면은 학생인권조례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숨어 있잖아요. 그 인간들 중에 수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드러내고 각각의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그런 지점에서 낱낱의 학생인권조례 권리 조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권이라는 가치를 매개로 학교를 재구성해 보자는 것이고, 학교가 얼마나 누구한테 불편과 수치심과 모욕을 강요하는 공간이었는지를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것이죠.
정욜 : 사실 그동안에는 드러나지도 않았었죠.
경내 : 그리고 그걸 당당히 드러낼 수 없었고. 그런데 드러낼 수 없었던 사람에게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권리라는 말이 힘을 주는 것 같아요. 그것을 우리가 같이 확인할 때 그 사람들이 당당하게 요구하고, 그것이 바로 현실의 변화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거기에서 싸움은 시작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싸움을 걸 수 있는 차비를 갖추도록 하는 것.
나라 : 정말 1백 프로 공감해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해요. 사실 많은 법들이 그렇듯이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죠.
정욜 : 조례가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문제가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조례 속에 담긴 것,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의미가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싶어요.
경내 : 내가 작년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만드는 과정에서 자문위원회 구성으로 들어갔잖아요. 사실은 별 생각 없이 들어갔어요. 왜냐면 우리가 계속 관심 가져왔던 문제가 학생인권 문제고 경기도에서 처음 꾸렸던 위원 구성을 봤을 때 인권을 전문적으로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 조건들을 감안해서 하반기 계획이 다 짜여있는데 무리하게 그 일을 떠넘기면서 사명감을 갖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당시 저의 고민의 수준이 얼마나 얕았는지를 겪어보면서 느꼈어요.
욜 : 경기도 같은 경우는 준비기간이 어느 정도 됐었어요?
경내 : 조례안 나오기까지? 한 육 개월 정도? 오 개월? 그랬던 것 같아요.
욜 : 그런데 그 과정하고 토론회 자료집 같은 걸 보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거나 간담회를 개최하고 공청회도 많이 하고 여러 의견들을 수렴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경내 : 그게 가능했던 것이 관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 과정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얘기를 했던 사람이 저나 인권 활동가들이었어요. 곽노현 당시 자문위원장 같은 경우에도 그런 식의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던 거죠. 5.18 범국민대책위 같은 걸 해본 사람이니까 법학자이기도 하고 민주적 여론 수렴 절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과정을 무리수를 둬서라도 밟아 나가는 절차를 가졌는데 그게 가능했던 것이 행정적 뒷받침이 되는 거예요. 돈, 자원이 있으니까 연구 용역 따로 해서 실태조사하고 인터뷰하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돈이 있으니까 사람을 꾸릴 수 있고 힘 있게 밀고 나가는 게 가능했어요. 그러면서 교사들도 만나고 학부모도 만나고 학생들도 만나고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느꼈던 한계가 뭐냐면 어떤 의미에선 법률적인 조례안의 형태로 만드는 것은 몇몇 사람의 두뇌에서 다 나올 수 있는 일이에요. 저희는 학생인권에 대한 실태조사도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고,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지침서라고 해서 각 주제별로 인권 침해 유형별, 권리 조항별로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어요. 그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조례안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거는 가능했고 여론 수렴을 통해서 문제의식을 던지고 하는 과정이었죠.
그런데 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공청회를 열고 했잖아요.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술 위에 떠있는 존재 같은 느낌이었어요. 표피만 여론을 수렴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게 되든 안 되든 그런 부분에서 자신이 없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물론 학생참여기획단이라는 애초 구상에 없었던 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만들었어요. 왜냐면 자문위원회를 꾸렸는데 여기 학생 대표가 없잖아요. 그런데 학생 대표 한두 명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 교육 현실에서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거거든요. 누가 대표성을 가지느냐의 문제도 있고. 교육청 눈에 든 이름 날린 명문고 학생회장이 들어올 가능성이 제일 높은 이런 것들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렇다면 학생대표를 자문위원회에 넣는 것을 목표로 하지 말고 이 자문위원회 숫자를 정말 압도하는 숫자의 학생참여기획단을 만들어서 자격을 불문하고 원하는 학생들은 다 들어올 수 있도록 하자는 기획이었어요.
자문위원들이 최고로 많았을 때가 13명이었는데 학생들 참여자 수는 250명이었거든요. 압도적인 학생참여기획단을 만들었어요. 교육청이 부담스러워 하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고, 그게 뒷받침되는 구조였죠. 그러면서 이 학생들의 의견들을 다 하나하나 정리했어요. 왜냐면 다른 자문위원들은 왜 학생참여기획단을 꾸렸고 이 학생들의 의견을 왜 받아야 하는지 몰라요. 그럼에도 학생들 의견을 다 분석해서 어떻게 반영했고 하는 것을 회의 때마다 일일이 보고했어요. 그게 다른 자문위원들한테 감동을 준 게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아까 말씀 드렸듯이, 여전히 표피만 수렴했다는 생각이 한편에는 있고 아래로부터 움트는 운동이 없었다는 부분이 관 주도의 정책이 갖는 기본적인 한계라는 것을 제가 그 안에 있으면서 절감을 했었어요. 그리고 그 한계가 정확하게 어디서 드러났냐면, 막상 괜찮은 교육감이 추진한 괜찮은 정책이 장벽에 부딪히는 거는 의회 공간인 거예요. 거기 가서 정확하게 부딪히더라고요.
그래서 만약에 다른 데서 뭔가를 하게 된다면 적어도 경기도처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게 제대로 되려면 교사들도 나서야 하고 학생들도 자기 문제로 생각하고 여론이 들끓어야 하는데 그게 이게 잘 안된 게 분명이 있었어요.
물론 추진 과정이 학생들에게는 전망과 열망을 심어줬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인권동아리도 생기고 그걸 공약으로 내건 학생회장도 나오고 이런 변화들이 있었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관에서 추진하는 것의 유일한 장점은 ‘이게 대세로 가는 거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거고, 그 열려진 틈을 갖고 학교 공간에서 가장 약자인 학생들이 발언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침묵해도 괜찮은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 구조가 동시에 병행되는 거고, 이 상태로는 사실 정말 학생들의 힘으로 뒤집으면 좋겠지만 안 되는 것이 분명한 거예요. 이런 교훈을 안고 서울이 시작이 된 거예요.
욜 : 기대가 많았겠어요. 교육감 선거 때도 그런 경험을 하면서 아무리 관의 역할이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관이 장벽으로 걸리지 않고 그나마 좀 협조적일 수 있는 열어주는 공간이 있어서, 관이 앞장서는 것보다는 뒷받침이 됐을 때 시너지 효과가 있듯이.
경내 : 우리가 교육감 선거를 중요하게 주목했던 이유가 그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죠. 그러나 거기에만 올인 하지는 않아요.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관은 정확히 이런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리 폭넓게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몇몇 사람들을 싹 뽑아서 위원회 구성하고 위원회 의견을 바탕으로 민주성을 포장해서 정책을 내려 보내는 딱 요 구도에서 그렇게 벗어날 수가 없거든요.
또 한편으론 조례라는 게 사실은 만들어봤자 별로 힘이 없어요. 그래도 ‘이게 기준이다’라는 것을 환기하는 역할인 것인데, 그 기준이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야 하는 게 확실하고 그러려면 ‘바깥의 운동이 같이 가야 한다. 아니 그것으로도 부족하고 밖의 운동이 주도해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서울본부라는 것을 따로 꾸리고 이것이 실패해도 되지만 주민발의 형태로 하다보면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이게 왜 돼야 하는지 설명하는 과정이 생겨난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으로 느껴졌어요.
나라 : 과정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운동이 물론 목표를 이루면 제일 좋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성장하고 다음번의 밑거름이 될 수 있고. 법만 딱 만들어지고 그런 과정이 없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아요. 이번에 서울본부가 하려고 하는 방식이 사람들이 참여하고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되게 좋은 방식인 것 같아요. 근데 정말 힘의 문제인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정말 중요하구나, 교육이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것이 교육감 선거의 중요성에서도 느꼈지만 진짜 진보 교육감이 되고 나니까 벌어지는 상황들이 그걸 입증해 주더라고요. 학생인권이라는 말이 주요 일간지에서 그렇게 많이 쓰인 때가 있었을까 싶어요.
경내 : 그래서 한편으론 감사하기도 하고(웃음)
나라 : 보수 일간지들, 그 사람들은 뭐가 중요한지 아는 것 같아요.
경내 : 그렇죠. 정확하게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뜨끔뜨끔 하다니까요. 정말 그런 고민이 들어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보수 언론이 나서는 것을 보면 이들은 교육에서 뭘 지키고자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체벌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교총이나 실제 이익이 달려있는 집단이고 오히려 보수언론들이 치고 있는 것은 사실 촛불 홍위병 이런 부분들이잖아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죠. 학생들이 생각을 갖는 다는 것, 질문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바로 그 부분에서 반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욜 : 나도 우리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질문이 제일 무서워.
경내, 나라 : 아. 하하하(웃음).
욜 : 우리가 청소년 팀에서 회의를 하면서 인권조례 얘기를 처음으로 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게 아마 교육감 선거 하면서 우리가 여기 왜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였어요. 사실 내가 준비해 갔던 거는 인권조례를 읽어보면 ‘성적 지향’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다른 거에 열광하는 거야. 두발 자유에 열광하고.
경내 : 맞아.
나라 : 맞아. 친구들한테는 성적 지향만이 문제가 아닌 거야.
욜 : 성적 지향은 자신들의 한 부분일 뿐이지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에는 여전히 교문 앞이 무섭고, 급식비, 그리고 급식 먹기 위해서 다시 한 번 교복을 챙겨 입어야 하는 학교 문화가 두려운 것이죠.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과 활동을 하면서 편협하게 우리 문제만 가지고 얘기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들은 성적 지향 문제만을 가지고 관심을 갖겠거니 생각하고 나머지 문제는 많이 보지 않거나 덮어버리다시피 했었는데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오히려 친구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정말 열광이었거든요. 정말 대단하다, 이런 것들이 있냐고, 법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에 있어서 이게 가능하냐고 하는 거야.
나라 : 왜냐면 학교 현실이 너무 다르잖아.
경내 : 맞아. 맞아.
욜 : 너무 의심을 하는 거야. 가능하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가능하다고 얘기를 해야 할지 불가능하지만 해보자고 얘기를 해야 할지. 가능하려면 굉장한 힘이 필요하다고 했지. 그러면 자기들이 뭘 해야 하냐고 하는 거야. (웃음)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이 두렵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거든. 다른 한편에서는 많이 깨지기도 했고. 이 친구들을 그냥 이 문제(동성애)만 가지고 바라봐서는 안 되겠구나 했어요.
나라 : 그런 공감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 성소수자들이랑 이성애자들이 어울려서 살기 위해서 공통점을 갖고 함께 뭔가 하는 것이 좋은데, 학생인권조례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청소년 성소수자가 왜 불편한지 같은 것을 알 수 있고. 그러면 좀 넘어가서 활동하면서 동인련이나 성소수자 운동을 어떻게 알게 됐고 인권 활동을 하면서 성소수자 문제나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를 접했던 경험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어요.
경내 : 제가 동성애 관련해 제일 처음 본 거는 대학교 때 대학 내 성정치, 동성애자 동아리들 만들어지던 그때 처음 이슈를 접했죠. 깊이 있는 고민이나 공감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기사나 들려오는 얘기,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동성애자였다는 것 정도였던 것 같아요. 90년대 후반에는 정말 동성애자 단체들이 왜소한 단체들이었잖아요.
나라 : 열악했지.
욜: 지금도 너무 왜소해서 문제야.
경내 : 진짜 열악하고 기존 단체들에게 명함 한 장 못 내미는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그랬는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공대위를 만들었을 때 동성애자 단체 중에 유일하게 동인련이 들어왔었고 당시 국가인권위원회 법, 민간단체 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가 들어갔었죠. 지금의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모태는 민간단체 안이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폭넓게 논의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공동대책위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법무부 산하의 법인이냐 독립적 국가기구냐 이런 식의 논쟁이었고, 두 번째가 시정명령권과 시정공고권 사이의 논쟁이었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차별금지 사유에 관한 논쟁이 붙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소수자 운동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잖아요.
정욜 : 두드러지게 보였던 건 2007년 차별금지법이었던 것 같아.
경내 : 사실 그때[2007년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운동의 약진이 있었던 거죠. 그 당시에 있을 수 있는 차별의 모든 사안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때 그[성적 지향] 조항은 전혀 논쟁이 되지 않았죠. 그런 시대를 거쳐 왔었던 거고. 그러면서 ‘끼리끼리’ 멤버도 만난 적 있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다가 인권운동 판에 와서 본격적으로 만났다고 볼 수 있죠. 저한테 많이 고민이 된 거는 육우당 사건이었어요. 그 전에 친구사이 몇 주년 토론회 가서도 개념 없이 발제도 하고 그랬는데 부끄럽지만 뭣도 모르고 했었죠. 정말 잘 몰라서 열심히 기억났어요.
정욜 : 아 기억났어. 육우당 추모제 할 때 인권단체 쪽에서 성명서가 나왔는데 경내 씨가 대부분 조직을 해줬던 것 같아. 전화통화 하면서 초안 잡고 했었어.
경내 : 연대 제안도 있었지만 저한테는 그 사건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우리는 학생인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학생이 자살했다고 하면 대부분 성적 비관이나 가정 형편 이 두 가지로 생각하거든요.
나라 : 우리가 농담으로 얘기하잖아. 여자애 둘이 손잡고 자살해도 성적 비관이라고 한다고.
경내 : 그래서 내가 봐왔던, 짐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사연이라는 게 정말 좁은 범위의 세계였구나 하는 확 깨지는 거였어요. 그때 그 사건이 청소년 인권 문제를 고민할 때도 생각을 다르게 갖게 되는 계기가 됐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내가 인권운동을 하니까 인권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많은 문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느낌이었구요. 나중에 그것만으로는 진짜 부족하다는 느낌이 확 들었던 사건이 육우당 사건이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이삼 년 청소년 성소수자들 만나면서 내가 이 문제를 한편으로는 참 비극적으로만 생각했구나 하고 깨닫는 계기였어요.
나라 : 뭔가 세대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좀 받아요. 억압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와 나보다 앞서서 그런 비극들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친구들이 밝을 수 있는 토대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처음 청소년 프로그램 시작했을 때는 정말 다른 세대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욜 : 처음엔 우리가 자신감이 없었어요. 육우당 일 이후에 너무 비극적인 친구들을 또 만날까봐 청소년 사업을 시작할 수가 없었어요. 굉장히 긴 시간 얘기도 많이 하고 세미나부터 시작했는데 보이는 친구들 같이 모여서 말이 세미나지 같이 프로그램하고 얘기 나누고 하는 걸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처음 놀토반을 하고 많이 놀랐던 건 우리는 어떻게 얘기를 붙이고 시작해야 하는지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했는데 너무 많은 친구들이 찾아온 거예요.
나라 : 그런데 자기들끼리 너무 친하고.
욜: 처음 봤는데도 너무너무 친하고.
경내 : 즐겁고!
나라 : 예, 맞아요.
욜 : 아까 전에 나라가 얘기한 건데 공감이 가는 것이 최근 영국 상황에 관한 자료를 봤을 때 영국 사회가 LGBT 문화에 있어서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고 얘기하지만 여전히 커밍아웃 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게 현실이라는 거죠. 우리도 친구들 만나면 너무 즐겁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러면서도 동인련을 찾아오는 친구들, ‘퀴어뱅’을 만나는 친구들은 복 받은 친구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이지 않는 친구들은 어디서 만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런 생각을 친구들이 먼저 한다는 게 때로는 감동을 받아요. 자신들이 알아요. 이 단체를 자신들이 먼저 만났다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아요. 자기 친구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오는 것도 무서워하고. 그런 친구들을 어떻게 만날지 먼저 고민하기도 하고. 옛날에는 참 우울하게 생각했었는데 만나면서는 그런 것들이 나를 깨주는 것 같아요. 여전히 동인련에 있는 성인들 중에 청소년들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떻게 말을 걸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야. 굉장히 힘든 벽인 것 같아.
경내 :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굉장히 특별한 존재처럼 그리잖아요. 너무나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인간적 반응을 사춘기라서 그래 라는 걸로 뭉개는 그런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너무나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왔던 거죠. 그런데 만나면 그런 게 쉽게 깨지는 것 같아요. 적어도 만나는 사람이 꼰대만 아니면 될 것 같아.
욜 :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이슈가 있어요. 하나는 청소년이고 하나는 에이즈거든.
경내 : 왜? 왜 청소년 쪽에 주목해요?
나라 : 청소년, 에이즈에 주목하는 건 단순한 이유예요. 동성애라는 것, 성소수자들을 이 지점에서 공격한다는 거죠. 그게 커요. 동성애가 나쁜 이유가 하나는 에이즈의 주범이라는 것, 하나는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거예요. 이것을 정면 돌파 하지 않고 갈 순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에이즈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렇게 얘기하고 넘어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들은 공격을 할 거예요. 에이즈 자체에 대한 시각을 바꿔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청소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우리가 아무리 점잔 빼고 우아하게 사는 척 해도 그들은 똑같이 얘기할 거예요.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욜 : 성소수자 운동이 교육운동과 청소년 운동에서 우리의 역할을 찾고 하나의 주체로서 참여하는 것이 잘 어우러졌으면 좋겠어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청소년위원회에 참가한다면 어떤 역할을 할지 그 외에 성소수자 단체들이 조례운동 안팎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하고 있어요.
나라 : 얼마 전에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글을 쓰다가 동반국이 학생인권조례에 성적 지향 들어간 것 갖고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공격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경내 : 그렇지(웃음) 내 아들이 게이라니 왠말이냐? (웃음)
나라 : 학생인권조례가 그런 복병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가 궁금한 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고 하는 진영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학부모 단체라던가 교사들의 반응.
욜 : 교육 갔을 때 가끔씩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부모님들하고 부딪힐 때가 많아.
경내 :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회의 테이블부터 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진짜로.
나라 : 성소수자 운동이 교육 쟁점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고 이번 계기로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존재를 의식하고 안하고는 확실히 다르니까요. 이제 막바지로 가고 있어요. 우리가 경내 씨를 만나려고 했던 것은 이런 얘기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학교와 교육이 왜 이럴 수밖에 없는 걸까? 왜 점점 더 나빠지는 걸까? 너무 추상적인 질문이지만 얘기해보고 싶어요. 전에 들 활동가 한 분이 동인련이 주최한 포럼에 와서 아동의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학교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에 대해서 얘기해 준 적이 있었거든요. 이런 교육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지 우리 문제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경내 : 정말 술을 깨게 하는 질문인데. 너무 한다. (웃음)
욜 : 나한테 던져지는 고민이기도 하네요.
경내 : 하.. 참 어렵네. 음.. 나는 진짜 근대 학교의 역할 중에 가장 좋은 면을 체험한 사람인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아까 얘기했잖아요. 스무 살 까지 내 최대 목표는 빨리 집을 탈출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명분 있게 탈출하고 자립하려면 뭔가 타이틀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난 정말 엄청난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이었거든요. (웃음) 장학금 받고 다니고. 내가 칭찬 받았던 것은 공부 잘 한다, 착하다 딱 두 가지였어요. 그게 딱 근대 학교가 사람을 기르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중에 느낀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신분적 표지를 벗어나서 무언가를 개인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기관이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것 아니에요? 그렇죠? 실제로 그러느냐와 상관없이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것. 학교가 그런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선거. 뭔가 민이 뒤집을 수 있다는 그런 것.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가능했던 시기에 태어났고 그 시기를 자라 온 것 같아요. 그런데 스무 살이 된 해에,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한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냐 했을 때, 그때 나는 그냥 상처투성이에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는, 꼴랑 괜찮은 입학 자격, 성적 하나를 든 알량한 인간이었던 거예요. 그게 순식간에 드러나는데, 썰물 빠지듯이 촤악 밀려나가는 느낌이 진짜 확 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나는 내 인생을 꾸려나갈 가치도 없고 나를 긍정하고 사랑하지도 않고,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도 돼 있지 않고. 끊임없이 누군가에 비추어서 열등한 존재로 남아있는 거예요.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이쁨도 받았고 원만한 척 했기 때문에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했고. 그러나 누구하고도 깊이 있는 감정을 교류하지 못한 사람이었던 거예요. 어느 순간 그렇게 볼품없는 나를 마주했을 때 참담함이 있었어요.
나는 그런 것을 개인적인 부족함이나 우리 가족사 문제로 봤는데 긴 세월을 두고 봤을 때는 그게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학교가 하는 역할이 정확하게 그런 것 같아요. 그 환상 속에서 몇몇의 승자를 만들어 낼지는 모르겠지만, 그 승자조차 자기를 긍정할 어떤 언어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교육이 지금의 학교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의 출발은, 사실 예전에 내가 교육학, 교육 정치학을 공부할 때는 학교라는 공간을 노동자계급의 전투적 요구의 결과로 성취해 낸 보편적 교육권을 통해 만들어진 기관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렇다면 학교라는 공간이 노동자계급적 공간이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왜 이럴까 이런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입학할 기회만 성취하는 데 급급했지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궁금해 하지 않았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랜 역사는, 사실 의무 교육에 대한 구상이 근대적으로 시작된 것도 그렇고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정신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의 결과로서 만들어진 공간이 학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나의 환상이 깨졌고 그렇게 가르쳐준 역사가 미웠어요.
나라 : 그런 분석은 굉장히 일면적이었던 것 같아요. 분명히 그것만이 아니라 반대의 힘도 영향을 미쳤고 계속 그런 알력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교육이 이렇게 보편적 권리로 있는 것은 참 좋다고 생각해요. 글을 읽고 쓰고 셈을 하고 이런 것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그걸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분명히 진보인 측면도 있는데 이 체제는 정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편의에 맞게 이용하려고 하고, 지금 벌어지는 사람도 더더욱 그렇게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 간의 싸움인 것 같아요.
경내 : 맞아요. 지금의 학교 교육의 목표는 과거와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모두를 포함시키면서 학교 교육이 사회적으로 공정한 경쟁의 장이라는 것을 각인 시키는 장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가치를 저들도 스스로 내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정말 노골적으로 탈락시킬 명분을 쌓아나가는 과정으로 가고 있는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반인권적 학교 문화를 더욱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생인권조례나 이런 것이 자신들이 탈락시켜야 하는 사람들이 왜 내가 탈락해야 하는 존재냐고 질문하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이 들어요. 정말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학교라는 이 볼품없는 것이 명분을 뒤집어쓰고 오랫동안 유지돼 온 체계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낡은 것이 힘을 갖는 이유는 주류의 언어를 공식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은 교과서가 아니라 수많은 부교재와 사교육의 전성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교과서에서 장악하고 있는 진리가 주류의 진실이라는 것은 틀림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최고의 권위를 장악한 진리라는 거죠. 학교는 그만큼의 명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고.
욜 : 사람들이 보수든 진보든 교과서의 내용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나라 : 학교가 아무리 별 게 없어도 우리가 학교를 버리고 가거나 피해 갈 수 없는 것 같아요.
경내 : 학교를 끊임없이 조롱해야지 학교를 내평개치면 안 되는 거야. 그런 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나라 : 앞으로 동인련, 성소수자 운동이 학생인권조례제정 운동이나 학교 변화를 위한 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경내 : 학생인권조례는 우리가 그동안 일상적으로 얘기해 왔던 것들을 분명한 요구안의 형태로 관철시킬 수 있는, 적어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것이 돼야 하는 거 아냐 하고 분명히 얘기한다는 측면에서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는 운동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동안 교육 운동이 사실 인권 문제에 그렇게 많이 주목하지 않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들의 문제가 억압적 입시 경쟁으로 대표되는 얘기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것과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굉장히 잘 드러낼 수 있는 운동이구요.
궁극적으로는 운동의 이름이 사라지는 운동을 우리가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거든요. 성소수자 운동, 장애 운동 이런 식의 이름이 사라지는, 경계가 없는, 운동도 섞여있는 그런 거 있잖아요. 우리가 만들려는 학교도 그런 거니까. 그런 게 되기 위한 준비운동 같은 느낌이어서 기대가 돼요.
나는 이 운동이 사람들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는 운동이었으면 좋겠어요. 당연한 걸 상식으로 만드는 운동이기도 하면서 새로운 질문도 있어야 하는 거죠. 20년, 200년 케케묵은 의제를 터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걸 또 여는 운동이기도 해야 하는 거죠. 이른바 체벌 문제나 두발 문제는 근대학교 역사로 보면 2-300 년의 의제를 터는 문제고 한국 사회 학교 문제를 보면 1백 년의 역사를 터는 문제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담론은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던 의제가 본격 부상하는 장을 여는 운동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요. 적어도 조례 통과를 목표로 해서 이런 의제들이 고의로 잊혀지거나 묻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자기 다짐과 함께 이 운동이 존재론적으로 육박하는 운동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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