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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회원인터뷰] 게이 페미니스트로서 사는 삶

by 행성인 2010. 10. 19.

-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서리와의 인터뷰




<서리와의 인터뷰는 힘들게 탄생하였다. 처음 했던 인터뷰는 요즘보다 좀 더 따뜻했던 날 종로전집에 마주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진행되었었다. 최신(?) 스마트폰의 녹음기 기능을 감탄하며 당당히 인터뷰를 했었는데 이게 웬걸. 그 다음날 휴대폰을 잃어버렸었다. 망할. 나의 미친 기억력을 믿고 나름 정리했는데 결국 9월 24일 다시 만나 두 번째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소중한 시간을 내 준 서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2010년 4월10월 따뜻한 봄날의 기운을 만끽하고자 회원들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다. 창작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고, 함께 싸온 도시락도 나눠 먹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이대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산책도 했다. 회원모임에 처음 나온 서리는 조금 어색한 모습으로 조용히 있었지만 몇 마디 나누다 보니 그가 몇 개월 동안 동성애자인권연대에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명으로 후원을 하고 있어서 잘 몰랐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리는 여성주의 관점을 가지고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하는 게이다. 개인사로 들어가면 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서리만의 묘한 매력을 남겨두기 위해 여기서는 담지 않겠다. ^^

 

정욜 : 서리 두 번에 걸쳐 인터뷰를 하니 기분이 어때요? 다시 인터뷰 하는데 준비 안 해오셨나요?

 

서리 : 준비요? 특별히 없는데... (웃음)

 

정욜 : 우선 가볍게 ‘서리’ 라는 닉네임 의미가 뭐에요?

 

서리 : 그냥 어감이 좋아서? 뜻은 없어요. 오랫동안 써왔으니까 관성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정욜 : 근데 왜 이 닉네임을 쓰게 되었어요?

 

서리 : 사실은 얼떨결에 쓰게 되었어요. 친구사이 모임에 처음으로 갔는데 누가 닉네임이 뭐냐고 물어 보더라구요. 그냥 서리라고 대답했고 그 이후부터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정욜 : 우리가 처음에 인터뷰를 했을 때 궁금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어요. 친구사이와 동성애자인권연대, 망할 세상을 횡단하는 ‘LGBTAIQ 완전변태(이하 완변)’에 가입하고 활동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잖아요. 그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뭐가 있어요? 생각의 변화라던가.

 

서리 : 어... 일단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조금 더 활동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성격보다 표현이 변하는 것 같아요. 원래는 그렇게 조용한 성격은 아닐 수도 있는데.

 

정욜 : 서리 보면 굉장히 조용할 것 같은데. 주변에서 많이 그렇게 보지 않아요?

 

서리 : 맞아요. 그런데 은근히 친한 사람들이랑은 이야기 많이 해요

 

정욜 : 서리를 보면 완전변태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더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서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어요?

 

서리 : 완전변태는 나에게 확장 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 같아요.

 

정욜 : 예를 들어서?

 

서리 : 여성주의를 접하는 것은 완전변태를 통해서였어요. 그리고 일방향의 활동성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정해지고 통일된 방향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어요.

 

정욜 : 그러면 서리는 완전변태에서 뭘 담당하고 있어요? 미모를 담당하고 있어요? (웃음)

 

서리 : 완전변태에서 어... 활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을 담당하고 있어요. (웃음)

 

정욜 :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을 챙겨준다는 이야기에요? 아니면 본인이 가장 늦게 들어왔다는 이야기에요?

 

서리 : 가장 늦게 들어왔다는 의미에요.

 

정욜 : 그동안 완변에서 서리가 활동해왔던 것들을 소개해주세요..

 

서리 : 제가 했던 것은 2010년 2월에 자기방어 훈련을 했어요. 여성을 대상으로 자주 하는 프로그램이라던데, 완변 내부에서 남성, 여성 상관없이 모두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정욜 : 재밌었어요? 어떤 거예요?

 

서리 : 겉으로 보면. 내 몸이 일정 이상의 힘을 낼 수 있고. 자기 몸의 힘을 알고. 어떤 외부의 폭력이 가해질 때 좀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것. 뭐 이런 게 자기방어 훈련이었어요. 남성들 사이에서도 남자끼린데 뭐 어때 하면서 장난식의 태도를 거절할 때가 생기는데, 결국 자기 힘을 키우는 면에서 좋았던 거 같아요. 이 모임을 통해서 완변을 본격적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 이전에 다과회 프로그램을 했는데 그 때 처음 갔었어요. 청소년들이 많이 와서 좀 당황스러웠고 힘들었어요. (웃음)

 

정욜 : 왜? 청소년들을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서리 : 청소년들이 싫은 게 아니라 완변 멤버들 자체가 사람 많은 걸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웃음)

 

정욜 : 완변을 통해 여성주의를 배우고 발전해나가고 있는 서리를 보면 보기 좋아 보여요. 본인도 좋죠?

서리 : 네 좋아요. (웃음)

 

게이 페미니스트?


정욜 : 여성주의라는 게 사실 개인의 가치이고 관점이기도 한데. 서리는 게이로서 어떤 면에서 본인에게 잘 맞았는지 궁금해요

 

서리 : 저는 처음부터 (여성주의가) 너무 편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제일 처음 접한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것이었어요. 장애인이나 여성 비하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 전에는 불편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불편하게 다가오고. 주변에서 대화를 할 때 불편한 게 들려요.

 

정욜 : 그동안 가장 불편한 용어들은 뭐가 있어요?

 

서리 : 병신이요. 이런 표현 싫어요. 너무 명확하게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것 같아요.

 

정욜 : 상대에게 불편한 표현들을 쓰지 말자고 했을 때 반응들은 어땠나요? 그냥 알았어. 쓰지 말자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서리 : 아직은 쓰지 말자고 제안은 하는데, 설득은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냥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늘 일상적으로 해왔지만, 누군가에게 지적받지 않으면 인식하기 힘들잖아요.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면 만날수록 필요한 것 같아요. 가끔은 설득하기 쉬운 것도 있지만 설득하기 어려운 단어들도 있잖아요. 그런 용어를 단순히 뭐라고 해야 하지. 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쓰지 말자고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것이 구조적으로 잘 못되었다고 함께 문제 제기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정욜 : 게이들이 ‘년’ 많이 쓰잖아요. 나도 가끔 쓰고 동인련 회원들이나 게이 커뮤니티의 일상적인 대화이기도 한 것 같은데.

 

서리 : ‘년’은 잘 모르겠어요. 여성들끼리도 ‘년’ 이런 표현을 즐겁게 쓰기도 하는데. 게이들이 그 표현을 여성 비하적으로 쓰고 있다고 보는 건 좀 힘들 것 같기도 해요. 근데 년 앞에 뭐가 붙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쓰지 말자는 사람도 있는데, 토론 여지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엔 여성을 깔보듯이 쓰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단지 그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 문제를 삼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생활의 표현방식이나 문화, 모든 것을 함께 봐야 하니까,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 것은 분명한 듯 보여요.

 

정욜 : 작지만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 있다면?

 

서리 :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정욜 : 여성주의 관점이 동성애자 운동에 가까운 것 같아요?

 

서리 : 충분히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억압에 대한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성,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파생된 것인데,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적인 태도라던가, 남성적인 태도들을 결점으로 보기도 하고. 커뮤니티도 절대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단체 회원문화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서로를 대하는 태도 모두 여성주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욜 : 나는 동인련을 보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 또한 다양한 가치관과 다른 삶을 살아오고 있다 보니까.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까 불편한 용어도 사용할 수 있고. 알 수 없는 긴장도 존재하는 것 같고. 이게 여성주의적인 관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예민함과 긴장은 필요한 것 같아요. 근데 공격적인 방식은 별로인 것 같아. 상처만 주니까. 올바른 문제제기는 상대의 변화를 일으키고 단체 안에서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어야 하는데. 참 힘든 과제인 것 같아요.

 

정욜 : 그러면 다른 화제로 넘어가서 최근에 HIV/AIDS 인권팀에 참여하기 시작했잖아요. 나름의 기대도 있을 것 같고. 관심을 갖게 되었던 계기 등을 설명해주세요. 더 배우고 싶은 것도.

 

서리 : 어... HIV/AIDS는 사실 병이잖아요. 제가 관심있는 것이 병과 관련된 문제였는데, 특히 정신질환 같은 거요. 예를 들어 동성애를 병이라고 했던 시기가 있었을 때 병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을 보면 동성애에 대한 편견도 있었겠지만 병에 대한 편견도 있었던 거잖아요.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불완전한 인간으로 보고 있는 거죠. HIV/AIDS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한 부분이었어요. 단순히 게이들이 생각하듯이 콘돔 안 쓰면 걸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정도였어요. 게이 감염인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했어요.

 

정욜 : 주변에 감염인 친구들 있어요?

 

서리 : 없어요. 아니. 있을 수도 있지요. 없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네요. (웃음) 이성애 중심성. 비감염인 중심성. 어떤 말을 해도 비감염인을 전제로 말을 하잖아요. 예방을 이야기 할 때도 그렇고.

 

정욜 : HIV/AIDS인권팀 활동을 통해 서리가 관심 있는 병에 대한 논의가 있을 지 잘 모르겠지만, 서리의 관심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욜 : 정말 마지막 질문. (웃음) 대학도 거의 졸업할 때가 되었는데.\, 서리 개인적으로 꿈꾸는 거 있어요?

 

서리 : 아직은 불명확한데. (웃음) 그래도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서울 와서 이렇게 사람들을 많이 만날 줄 몰랐어요. 즐거워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이런 게 모두 즐거워요. 앞으로도 이랬으면 좋겠어요. 즐겁게.

 

 

인터뷰 정리 : 정욜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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