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자 (웹진기획팀)


Scene1. 프롤로그


7월 17일 화요일 동인련 노동권팀 회의가 끝난 늦은 시간 형태, 학기자는 사무실에 남아 앉아있다.


(허둥지둥) 인터뷰가 처음이라서 많이 어색하네요.

진지하게 하세요.

…… ^^;;

 

Scene2. 스물아홉 살, 터닝 포인트


연대의 시작,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계기는 정말 별거 아니었어요. 트위터를 하다 보니 연대하는 친구들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연대를 해야겠다 해서 한 건 아니고 친구들이 연대 농성장에 있으니까 그 친구들을 보러 간 거죠. 농성장을 가보면 알지만 거기에 있는 플랜카드, 탄압… 많이 놀랐죠.


어디 어디 연대 했어요?

처음 연대를 했던 곳은 카페 마리라는 철거 농성장이었어요. 그 다음이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그 다음이 북아현동 철거농성장이었죠. 그 사이에 희망버스가 있었고 재능투쟁에도 갔죠.


웃고 있는 형태 모습


순서대로 물어 볼게요. 카페 마리는 어떤 곳이었어요?

카페 마리는 명동에 있는 철거 농성장이었어요. 용역들이 몰려와서 행패를 부렸죠. 연대 동지들을 폭행하고, 드릴로 벽을 뚫고, 소화기를 뿌려대고… 그런데 경찰들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어요. 카페 마리에 있으면서 공권력에 부당함에 대해서 많이 느꼈어요.


다음 연대한 곳은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노동자였나요?

카페 마리가 그 해 9월쯤 타결됐는데 그 다음에 그곳으로 옮겨갔어요. 여성 노동자가 성희롱 당하고 그걸 동료에게 말했다고 해고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여성가족부 앞에서 해고 노동자 복직과 산재처리 요구했는데 현대차와 여성가족부는 묵묵부답했었죠. 남성 권력 사회와 자본 때문에 일어난 부당한 일인데… 화가 많이 났어요.


북아현동은 철거 농성장은 어떤 곳이에요?

북아현동은 뉴타운으로 재개발하려고 철거가 이뤄지면서 농성을 시작했어요. 작년 11월부터 북아현동에 연대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주기적인 연대 인원이 없었어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막했죠. 지금도 북아현동 철거 농성장에 연대하고 있어요. 동인련에서도 성소수자 연대한바퀴로 가기도 했고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면 열심히 연대를 하는 것 같아요.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 1년 2개월…….


생각보다 연대 한 지는 얼마 안됐네요. 전에는 어땠는지 물어봐도 되요?

이전에는 남들과 다르지 않았어요. 주말에 종로에 나가서 술 한 잔 하면서 친구들 만나고 별반 다르지 않은 그냥 게이였죠.


그럼 무슨 마음으로 연대를 시작한 거예요?

작년 5월부터 6월까지 한 달간 일을 쉬었어요. 작년이 스물아홉 살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가 삶을 돌아보는 터닝 포인트였어요. 쉬면서 이것저것 많이 생각해 봤죠. 그러면서 동인련도 가입하게 되고 연대도 하게 됐죠. 연대를 하면서 부당함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어요. 나 자신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다른 사람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죠. 이게 너무 관성화가 되어있는데, 작년에는 그 걸 깼어요.

 

Scene3. 관계 맺음, (성소수자로) 관계 맺음


연대를 생각하면 중요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지속적으로 하긴 힘든 것 같아요. 왜 연대를 지속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 카페 마리에 연대를 할 때는 세입자분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곳의 연대 인원 하는 사람들하고 교감하고 소통하면서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 싶었죠.


교감과 소통이라… 좋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때에 느꼈어요?

구체적으론 카페 마리에 연대할 때 성소수자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청소년 성소수자의 성적지향 선택할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요. 카페 마리는 연대 단위가 컸었고 그 안에서도 성소수자가 있었어요. 나는 커밍아웃을 했지만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분도 있어서 우리끼리 따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카페 마리에서 좋았던 건 내가 굳이 커밍아웃 하지 않아도 혹은 커밍아웃을 하더라도 아 저 사람은 성소수자, 게이구나 그러고 차별하는 사람들이 적었어요.


연대했던 곳에서 모두 형태의 정체성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랬던 적도 것도 있고 아닌 적도 있죠.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굳이 농성장 안에서 커밍아웃을 해야 하나 라는 고민이요. 왜냐하면 투쟁하는 당사자는 투쟁 그 자체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나의 존재를 인정할 거야 말 거야 논쟁하기 너무 힘든 부분이 있어요. 받아들여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아요. 신뢰를 쌓아야 하죠.


연대를 하면서 성소수자로서 고민이 많았을 거 같아요.

카페 마리 투쟁이 끝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세입자 분들하고 나하고는 별로 관계 맺음이 없었는데 이 사람이 호모포비아면 어떡하지? 이런 의구심이 든 거죠. 어디에서나 호모포비아는 있잖아요. 그런 생각이 한번 드니까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건가? 라는 것까지 생각이 이어졌어요.


고민이 많이 됐겠어요. 지금은 어때요?

성소수자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투쟁의 당사자는 자신이 많이 힘들기 때문에 남의 아픔을 들여다 보기가 굉장히 어렵죠. 처음부터 투쟁하는 당사자에게 난 성소수자인데 인정해 줄 거요 말 거요 얘기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조금씩 천천히 풀어야 하는 견고한 문제니까요. 가족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하기 힘든데. 연대를 하더라도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연대를 한다는 유대감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죠.


내가 연대하니까 너는 나를 인정해야 한다, 이런 것이 올바른 연대는 아니라는 거죠?

그렇죠. 연대하는 것이 옳은 일이니까 연대하는 거죠. 연대하는 당사자가 호모포비아라도 이 사람에게 연대를 해야 한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대하면서 성소수자로서 느낀 차별은 없었어요?

그런 적은 별로 없었어요. 농성장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으니까요. 농성장에서 나를 드러낼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 그건 조금 답답하죠.


그런 답답함은 어떻게 해결해요?

날 이해해줄 동지를 찾아가는 거죠. 북아현동 같은 경우는 수요일마다 기도회를 해요. 거기에 연대를 하는 분들이 작년부터 카페 마리 때부터 잘 알고 지냈던 분들이에요. 그래서 보수적인 기독교계에 대해서 서로 분노하고 이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하죠. 그리고 세입자 분들하고도 차별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해요. 성소수자나 철거민이나 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니까요. 또 철거민들은 철거금지법이 통과되기를 원하고 성소수자들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기를 원하죠. 이런 것은 얘기하면서 접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연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Scene4. 부채감, 웃으면서 끝까지


연대를 하기 싫은 적은 없었어요?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올 초에 딜레마가 있었어요. 어떤 활동가분이 말했어요. 부채감만으로 연대하지 마라 그럼 계속 연대를 못한다고요, 그럼 난 왜 연대를 하지 이런 질문 앞에서 답이 없었어요. 여기 연대하지 말고 네 삶이나 잘해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었어요. 연대를 여기저기 다니면서 내 삶을 잘 못 챙기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었죠. 지금 내가 잘 살고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니까 조금 무서웠어요.


부채감이라…….

2009년 용산에서 일을 했었어요. 퇴근길에 남일당을 보면서 의구심은 들었죠.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 분들께서 왜 여기서 분향소를 차리셨을까?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는 생각 할 수 없었어요. 출퇴근길에 분향소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 걸 볼 때마다 이 사람들이 여기서 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직접 물어보지 못했었죠.


지금은 딜레마는 해결 됐어요?

지금은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해요. 그래서 퇴근 하고 하거나, 주말에 연대하죠. 이런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지칠 때는 내려놔도 된다.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요. 계속 갈 거니까요.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라는 슬로건이 참 좋아요.


하지만 형태는 연대의 가장 큰 적인 연애를 하고 있잖아요. (웃음) 연대하고 연애하고 충돌하는 지점은 없어요?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난 연애로 인해서 내 삶이 너무 많이 달라지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어서 만나려면 하루 전체를 다 빼야 해요. 저번 주말에는 평택에 쌍차 연대를 하러 가느라 애인을 못 볼 뻔 했어요. 볼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애인이 평택으로 깜짝 나타났죠.


7월21일 쌍차 2차 범국민행동의 날, 발언 중인 형태 모습


평택으로 찾아왔다니 좋았겠어요. 그런데 원래는 평택에 연대하러 간다고 만나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애인이 서운해 하지 않아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서운해 할 것 같은데… 가래요. (웃음) 원래 트위터에서 알던 사이여서 내가 활동하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좋게 이해해 주는 것 같아요.


음… 갈등이 없다고 하니까 왠지 아쉽지만 요즘 형태가 좋아 보여서 좋네요. (웃음) 인터뷰도 거의 막바지네요. 형태 삶에서 연대는 어떤 의미에요?

난 연대를 하면서 삶이 많이 재미있어졌어요. 내가 몰랐던 세상이기도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죠. 마치 매트릭스의 알약 같아요. 빨간 알약, 파란 알약 두 개가 있는데 계속 파란 알약 먹고 살다가 빨간 알약 먹고 시야가 딱 트인 것 같은… 이 비유가 딱 맞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형태 생각하는 연대는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처음으로 카페 마리에 연대를 하려고 갔는데 이런 말을 들었어요. 동정으로 연대를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계속 그런 마음으로 연대할거면 하지 마라 동정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여기에서 투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었죠. 투쟁이라는 것은 옳지 못한 것에 대해서 옳지 못하다고 소리 내어 말하고 변화시키려는 것 이에요. 그런데 투쟁을 하는 당사자가 불쌍하다고 연민의 마음으로만 연대한다면 부당한 현실에 분노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죠. 연대함에 있어서 내가 투쟁의 당사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함께 할 수는 있죠. 연대는 시혜가 아닌 같이 분노하고 싸우는 것 그리고 방법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Scene5. 에필로그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녹음기를 끄고 정리를 하고 있다. 무심코 물어봤다.


연대는 언제까지 계속 할 것 같아요?

음… 이 세상에 부당한 일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 하지 않을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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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08 19:07 신고 [Edit/Del] [Reply]
    이 빨간알약 비유 완전 좋아하는데!
    동정심으로 연대하지 말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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