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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게이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 이혁상 감독과 주인공 병권과의 수다

by 행성인 2011. 1. 10.
- 영상으로 담지 못했던 그동안의 과정과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짚어보다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은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공동 제작한 작품이며 영화감독 준문, 종로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한 요리사이며 친구사이 G-Voice 멤버인 영수, 동성애자인권연대 욜, 병권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혁상 감독이 다큐를 통해 커밍아웃하며 4명의 이야기를 끌어가며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하죠. 이혁상 감독은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 활동가이며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이기도 합니다. <종로의 기적>은 2008년 늦은 봄 촬영을 시작해서 2010년 가을 완성이 되었고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분에 초청되어 피프메세냐상을 받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2010년 올해의 독립영화로 선정되었습니다. <종로의 기적> 출연자이기도 한 병권이 2010년 12월 22일 연분홍치마 사무실이며 이혁상 감독이 살고 있는 집에서 치맥을 앞에 두고 <종로의 기적>과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다큐 종로의 기적 이혁상 감독, 2010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받은 피프메세나상 상장을 들고 환하게! 웃고있다.




병권 - 부산에서 상도 받고 올해의 독립영화로도 뽑혔는데 해외 영화제 소식은 없어? 베를린 영화제 테디 베어상 받고 싶다면서.


혁상 - 베를린 영화제 소식은 아직 없고, 일본 동경에서 하는 아시안 퀴어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 받았어. 샌프란시스코 LGBT 영화제에 내려고 준비 중이야.


병권 - 부산국제영화제, 인천인권영화제, 강릉인권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그리고 그렇게 염원하던 낙원상가 서울아트시네마 쇼케이스까지 지역을 돌고 그야말로 종로의 기적이 종로에 진출한 거네. 극장 개봉 전에 상영은 다 한 거 같은데... 소감이 남다를거 같아.


혁상 - 그야말로 종로에 입성했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하고 종로 낙원동에서 쇼케이스[각주:1]까지 왔는데, 종로라는 곳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들과 그 속에 다양한 게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이기 때문에 올해 마지막 상영인 쇼케이스 할 때는 일단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었어. 마치 연어가 다시 고향을 찾아오는 느낌? 특히 부산에서부터 서울로 오면서 이 영화를 아는 사람들 그리고 출연했던 사람들, 인권단체 활동가들, 종로를 드나드는 게이들도 쇼케이스를 찾아오고 해서 최고의 분위기에서 마친 것 같아. 이번 상영 때 상영이 잘 되는지 보려고 들어가 봤는데 첫 에피소드부터 빵빵 터지더라구. 상영 분위기가 좋았던 건 아마 이 영화를 사람들이 지지할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어. 종로에서 종로의 기적을 트는 것 자체가 고향에 돌아온다는 느낌과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았어. 사실 긴장이 되기는 했지만.


병권 - 빵빵 터졌다는게 어떤 걸 말하는거야?


혁상 - 게이들도 여러 성소수자들도 많이 찾아와줘서 그런지 첫 번째 에피소드인 준문의 이야기부터 ‘사람들에게 잘 흡수되고 있구나.’라고 느꼈어. 스포일러일수도 있지만 준문이 ‘어머 (체위가) 됐던건데 왜 안된다고 하는거지?’하는 부분에서 이성애자 관객들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이번에는 반응이 즉각적이었거든 준문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에서도 그랬구.


병권 - 그래? 그럼 제 장면에서는 안 그러던가요?


혁상 - 네 장면에서는 항상 터지는 부분이 있지. 쌍용자동차 부분에서 기갈을 부리는 장면이나 씻는 장면 그리구 이쁜척하면서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부분도 그렇고. 병권 니가 자꾸 나가니까 잘 모르는거야!


병권 - 사실 좀 무안하거든.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때 제대로 봤지만 내 목소리, 내 행동을 보는게 나는 아직 적응이 안되네.


혁상 - 나도 내 간드러지며 땍땍한 목소리가 적응이 되지는 않아.


병권 - 내 모습을 보는 게 적응이 잘 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다큐를 본 다음에 대단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해. 왜냐면 집회에 나가서 유인물을 나눠주고 쌍용자동차 앞에서 삼성전자 앞에서 항의하는 행동들이 보여지면서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중요하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저런 건 필요해.’를 느끼는 것도 좋지만 같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게끔 만드는 게 부족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 켠에 들어서.


혁상 - 관객 중에는 너처럼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고 사실 너처럼 사는 것이 평범하지는 않잖아? 주인공들이 다 그렇고 사실 게이라는 존재가 평범하지는 않잖아. 누구나의 삶이 그 삶을 들여다보면 평범하지는 않겠지만 영화를 통해서 그런 문제제기하는 부분이 더 부각이 되니 너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고맙게 생각해야지.


병권 - 그래야죠. 그래서인지 이번 낙원동 쇼케이스는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아. 보니까 형 친구들도 이번 쇼케이스때 오셨던데... 지난 서울독립영화제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때는 왜 울었수? 준문하고는 서로 얼굴보며 키득거리면서 ‘왜 울어?’ 그랬는데... 친구들이 오니까 감정이 복잡했었어?


혁상 - 너도 생각해봐. 친구가 왔어. 친구가 눈치를 챌 수도 있는데 영화에 대한 정보도 없이. 그냥 ‘네 친구가 나오는데 와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거든.


병권 - 미리 알려줬어야지.


혁상 - 알려는 줬지. ‘이 영화가 네가 생각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게이 관련된 내용이 나올 것이다.’까지 알려줬어. 내가 이성애자로 게이 다큐를 찍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 근데 첫 장면부터 내 이야기를 하면서 대놓고 커밍아웃을 했으니...


병권 - 친구들도 복잡했겠네. 어때?


혁상 - 그랬을거야. 영화를 본 친구가 나중에 문자로 ‘너무 할 말이 많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 상영은 참 좋았다.’고 왔어. 사실 친구들을 이번 쇼케이스 때 부르려고 했거든. 그즈음에 자세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근데 갑자기 서울독립영화제때 친구 한명이 온거야. 나도 당황했어. 이때 오면 안되는데... 상영시간이 임박해서 그냥 들여보내면서 ‘놀래지 말라.’고 했어. 상영을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 때 친구 얼굴을 봤지. 오묘한 표정이었어. 오만가지 감정이 느껴졌는데 그 표정이 호의적인건지 적대적인건지 알 수가 없더라고. 그때 친구가 ‘혁상 파이팅!’을 외치는 거야. 나도 다큐의 영수 에피소드처럼 커밍아웃하지 않은 친구가 나를 보러 온 거지. 그때 영수 생각도 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면서 훅 감정이 오르면서...


병권 - 친구가 힘내라고 했던 모습은 보기 좋고 부럽더라구.


혁상 -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 친군데..’라고 하더라고. 지난 부산영화제 때도 친구 한명을 만났어. 그 친구는 이미 정보를 알고 있더라고 나한테 ‘다큐 끝나고 파티(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 후 커밍아웃 파티)도 있다면서?’라고 말하는데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파티 다음날 만났어. 술을 진탕 마시고... 친구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친구가 나한테 ‘혁상아 괜찮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고 이미 인생은 아름다워를 봐서 훈련이 됐다.’라고. 내가 커밍아웃에는 인복이 많은가봐.


병권 - 이번 쇼케이스 때 나는 청한(병권이 직장으로 있는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 회원선생님을 초대했었어. 그날 청한 일정이 있어서 내 부분까지만 보고 간다고 했거든. 근데 다큐가 좋아서 끝까지 다 봤다고 하더라구. 다큐를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좋은 다큐라고 하니까 고맙더라. 다큐가 의미를 잘 전달하는 것 같아. 아마 감독도 게이고 2년이 넘게 걸려서 완성된 영화라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 해. 사실 무슨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시리즈로 나왔어도 2, 3편은 나왔을 시간인데 예상을 했어?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야? 첫 촬영 시작해서 1년이 지나자 사람들이 ‘언제 나오는거야?’ 라고 물을 때 마다 나도 난감하긴 했거든.


혁상 - 내 게으름도 있었겠지만, 좀 버거웠어. 종로의 기적 같은 경우는 다른 연분홍치마 작품과 다르게 나 혼자 찍었잖아. 연분홍치마에 다른 프로젝트도 있어서 그랬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의 참여의 여지를 안줬던 것 같아. 내가 완벽하게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거지. 그게 틀어지면서 버거워졌어. 나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수많은 영화를 봤고 전공하기도 했어. 그런 과정에서 나는 내가 좀 잘 할 줄 알았어. 처음이지만 내 나름대로 착착착! 잘 해나갈 줄 알았거든. 근데 어느 순간 탁!하고 막히더라고.


처음에는 되게 신나게 찍었어. 내 첫 작품이고 우리 이야기, 게이 이야기를 하니까 편한 것도 있었고 주인공들 4명 모두 협조도 잘 됐고, 촬영도 좋았고, 근데 촬영을 하고 돌아와서 집에서 보니까 ‘이걸 어떻게 엮어야 하나’, 거기서 길이 안보이는 거야. 왜냐하면 내가 처음에 잡았던 컨셉이 어느 순간 되게 순진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준문은 영화감독, 영수는 시골게이, 너는(병권)은 활동가, 욜은 직장인. 이게 확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들을 구성하는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거야. 컨셉에 따라 구성하고 편집을 하려니 뭔가 붙지가 않는 거지. 그러니까 다음 촬영 때 더 많이 찍어야지 하는데 촬영한 테잎은 늘어나는데... 그 늘어나는 릴 속에 길을 잃어버린거지.


그리고 내가 힘들었던게... 내가 카메라를 다루는 스킬이 부족하더라고. 찍어놓고 보니 사운드가 안 들어간 적도 있고 렌즈에 뭔가 묻어있던가... 일종의 방송사고지. 완벽하길 바라는 내 모습에서 그런 일을 겪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어. 그런 문제가 있을 때 누군가에게 ‘도와줘!’라고 말해야하는데 내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어. 연분홍치마 다큐의 고유한 미학적인 스타일에서 내가 한 역할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실수나 그런 감정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나봐. 그런 감정이 쌓이면서 ‘나는 그냥 테크니션인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걸 예쁘게 표장만 잘하나...’ 생각도 들고. 떨어지는 자존심, 자존감이 악순환 되면서 굉장히 심각한 상황까지 갔던거 같아... ‘내가 치료를 받아야하나.’하는 생각까지. 근데 왠지 그것도 용납이 안되는거야. 이거 때문에 힘들어서 우울증에 빠져서 병원을 가야하나...


병권 - 힘들어하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으니 잘 몰랐고 영수형이 먼저 간 이후에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형이 우는 모습 보면서 놀라기도 했고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도 몰랐어. 사무실 한 켠에 쌓여있는 테잎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고.


혁상 - 사실 4명을 찍는다는 것이 힘들더라고. 핸들링하는 것이나...


병권 - 그랬을 것 같아. 연분홍치마 전작 <3XFtM>은 3명이었고 이번은 4명이니 잘 할 수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 했거든. 2년 동안 찍었고 2시간 남짓이니 시간을 쪼갠다 하더라도 한 사람당 25분 정도 인데 그 안에 이야기를 구성하는게 쉽지는 않았겠지. 아쉬운 부분도 있을거 같아. 꼭 넣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


혁상 - 왜 없겠어. 당연히 있지. 준문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었어. 준문은 아버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런 감정이 준문의 새 단편인 <터질거야>가 나온 배경이기도 해. 준문은 군대에서 아웃팅을 당해서 정신병원에 갔었고 그 과정을 부모님이 함께 겪었거든. 그런 준문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 준문 집에 아버지가 오셨던 장면을 넣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준문의 모습을 영화 쪽 제작 현장에서의 게이 모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빠지게 된거지.


병권은 가장 난해했었어. 범민련 부분인데, 우아한 호모포비아, 진보진영의 호모포비아들을 범민련 사태(참고 기사 링크 1.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1129  2.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3476 )
)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어. 사실 그거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했어. 이야기 구성이 몇 번 바뀐 것도 그것 때문인데 고민한 부분을 영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게 쉽지 않더라고 그리고 종로에서 HIV/AIDS 캠페인을 할 때 누군가 와서 방해하고 그게 싸움이 되었던 사건 있지? 그 부분도 넣고 싶었지. 종로 거리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 게이들이 돈을 내는 소비자로는 좋지만 자신들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때 우리가 온전하게 이전처럼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모습을... ‘종로가 마냥 기적이 일어나는 공간은 아니다.’라고 보여주고 싶었지.


영수는 영주에 있는 고향 친구들과의 관계를 넣고 싶었어. 왜냐면 그 친구들이 동성애자인 영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흔히 시골이어서 지역이어서 더 보수적이고 꽉 막혀 있을 거라는 선입관이나 편견을 확실히 뒤집어주거든.


욜은 정말 회사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지 몰래카메라를 통해서라도 보여주고 싶었어. 대기업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잠입취재라도 하고 싶었어. 욜은 활동가로서 열심이지만 회사라는 공간에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니까 특수한 상황이 있을 것이고 거의 하루의 절반을 가족보다 더 많이 보는 공간인데 그 공간 안에서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었어.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너무 무리여서 하지 못했지.


가장 중요한 건 제한된 런닝타임 안에서 결국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쳐낼 수밖에 없었어. 똑같은 두 시간짜리 4편을 만들 수 있는 내용인데... 그래서 좀 아쉬워.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지 ‘외전으로 만들어봐.’ 하고...





병권 - 만들어봐.


혁상 - 아냐 됐어! 지쳤어. 저 테잎을 다시보기는 싫어! 나중에 늙어서 볼까?


병권 - 그런 험난한 과정에서 다큐가 완성이 되고 상영이 되면서 느낀게 있어. 형이 변했다는 느낌? 형을 처음 본 게 2003년인가? 그리고 간간히 종로에서 봤을 때랑 2년 간 촬영을 당하면서 알게 된 지금의 형은 변한게 있거든. 왜냐면 관객과의 대화 때 누구보다 활동가처럼 말하는 게 인상적이였어. 첫 감독 데뷔이니 이전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다큐에서 맡았던 역할에서 느끼는 감정과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종로의 기적 다큐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혁상 - 연분홍치마는 문화운동단체지만 아마 가장 운동가, 활동가스럽지 않은 건 나였어. 연분홍치마가 다큐 이외에 여러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종로의 기적을 찍었고 그러면서 이 다큐가 단순한 의미보다 연대 투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단체간 연대 활동이기도 하고 우리의 인권을 증진시킨다는 의미도 있었고.


우리가 처음 영화를 찍을 때 배우들이 동의한 것이 커밍아웃인거잖아. 이것이 운동이지. 그러면서 나에게 더 활동적인 활동가의 모습을 스스로 요구한거 같아. 4명 주인공의 모습을 내가 충분히 끌어안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왜냐면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내가 정신을 차렸어야 하는 거지. 특히나 영화에서 내가 드러나면서 내가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 물론 영화만 봐도 감독 이혁상이라는 사람이 게이인가보다 판단할 수 있겠지만 내가 전면에 나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걸 결심하는 순간 뭔지 모를 엄청난 책임감이 느껴지는 거야.


그냥 단순히 게이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로만 보여지는 건 너무 아깝잖아. 의도적으로라도 이 다큐가 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런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 다큐가 만들어지고 공개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커밍아웃하는 것이라고 하면 활동가라고 불리는 게 낯설긴 하지만 “시대가 나를 원하는 것 같애!”


병권 - 어머 됐구요!! 쇼케이스 한 후에 농담이었겠지만 동인련 회원들 몇몇은 내 부분이나 욜 이야기가 뭔가 운동권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서 걱정하기도 했어.


혁상 - 운동권이 운동권다워야지! 그래도 운동권이 연애도 하잖아! 지금!!


병권 - 그래 이정도로 답변하는게 우문현답이다.


혁상 - 제일 안 팔리는 족속이 운동권 게이인데. 더구나 연애도 하는데. ‘동인련에 오면 연애도 한다! 운동하면서도 연애할 수 있다!’를 잘 보여주잖니? 영수나 준문이 연애를 하니? 연애하는 건 동인련 두 사람이야! 세상을 바꾸려면 무언가 바꾸려면 적극적인 액션이 필요하지. 그걸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병권 - 네, 잘 알겠습니다! 이제 상영을 마치고 내년(2011년) 3월에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고 들었어. 개봉하기 전에 얼굴을 드러내며 출연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질 거라고 들었고. 사실 부담스러운 부분이지만 개봉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하는 건 중요한 거니까. 욜이나 내 부분에서 얼굴을 드러내며 출연한 동인련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혁상 - 한편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것은 대중과 만나는 거잖아. 불특정 다수의 관객과 만나는... 그건 상업 영화, 제도권 영화계에서는 판매, 유통의 시작이겠지만 종로의 기적이 개봉하는 건 활동이고 운동이라고 생각해. 광장에 나가서 전단을 뿌리며 시민들을 만나는 것과 같은거야.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말했지만 개봉은 더 큰 세상을 향한 커밍아웃이고 캠페인, 운동의 시작이라고 생각해.


제도권내로 진입일지도 모르지만 성소수자들이 만들고 성소수자들이 나오는 다큐가 출발 비디오 여행에도 나오고 씨네 21에도 나오고 인터넷에 기사가 나오고 나쁘던 좋던 별점이 뜨고 다큐를 홍보하는 전단이 여러 영화관에 뿌려지는 여러 활동들이 이어진다면 접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 있네, 나도 그렇지 않을까?,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 거 같아.’하는 고민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겠지. 단순히 표를 팔고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획들이 만나면 다큐의 내용을 공감하는 사람들을 향해 운동을 할 수도 있을거고. 동인련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누가 그랬더라. 종로의 기적을 보고 거리로 뛰쳐나가고 싶었데. 최고의 찬사를 들은 거지. 물론 다큐 한편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도 변화시킬 것이고 주변 환경도 변화되겠지. 그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큐를 하고 싶었던 의미였고 연분홍치마의 목표였던 것이고 공동 제작한 친구사이의 목표이지 않을까? 욜이나 너도 그래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생각하고. 감수성이 좋은 관객들이 많아지면 더욱 좋겠지.


병권 - 맥주도 치킨도 다 먹어 가는데 마지막 질문! 관객과의 대화 때 간간히 말했는데 성소수자 역사 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동인련하고 하면 어때? 종로의 기적 그리고 다른 연분홍치마 다큐멘터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이지만 지나온 과거에 대해 기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어. 분명 그런 이야기는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고 나도 간간히 형한테 이야기했지만 욕심이 나는 작업이거든. 어때? 동인련하고 해보면? 그리고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줘.


혁상 - 지금은 종로의 기적 개봉도 앞두고 있고 연분홍치마 다른 프로젝트도 있고 종로의 기적에 집중했더니 체력도 떨어지고 자신감은 없지만 한 4년 후에 같이 해볼까? 그리고 (예의를 갖추듯 두 손을 모으고) “다큐에 많은 힘을 주신 동인련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이후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강성으로 그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시길 바래요. 하하하! 누군가에게는 쎄보일 수 있는 활동이겠지만 꼭 필요한 활동이니까 우리는 자랑스러운거에요!”



인터뷰, 정리 - 병권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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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주최하며 월 1~2편의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