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
나아가요. 은빛소녀에게로. 나아가요. 너의 시대가 밝아올 때까지
너의 모든 꿈들은 제각기 이뤄지고 있어요.
보세요. 그것들이 얼마나 빛나는가를.
오, 네가 친구가 필요하다면 내가 바로 뒤에서 따라갈게.
험한 세상의 다리와 같이 내가 널 쉬게 해줄게.
험한 세상의 다리와 같이
내가 널 쉬게 해줄게.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中-
“난 비참한 이야기를 좋아해.”
그녀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우리는 좋아하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불이 켜진 오븐레인지에 머리를 집어넣는 방법으로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를 해주려다 그만두었다. 라디오에서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브릿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잔 위로 와인 병의 주둥이를 기울였다. 핏빛 액체가 또르르 잔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동안, 어쩌면 세상은 그녀가 좋아하는 이야기만으로 가득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일본인이다. 미국에서 자란 그녀는 태국과 싱가포르, 세네갈, 뉴욕 등지를 돌아다니며 HIV/AIDS에 감염인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다. 작년 가을, 나는 그런 그녀를 처음 만났다. 우산을 타고 찾아온 메리 포핀스처럼 유쾌한 말투로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는 그녀에게 나는 일단 의문부호를 붙여두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소위 ‘국제 연대’가, 또는 잘사는 나라들의 ‘책임의식’이(그녀가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곧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고, 나는 내 앞의 현실을 살았다. 동성애 혐오단체들의 공격에 분노했고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을 마음속에 새겼으며 성소수자 노동권 팀의 회의에 참여하는가 하면, 졸업 시험을 망치고 매일 과제에 치어 살았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지난 겨울 일본에 방문했을 때였다. 우리는 약속 장소였던 타마치 역에서 제시간에 만나 미국식으로 꼭 끌어안아 인사했다. 그건 아마도 그녀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언어 장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자와 깊게 포옹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나로서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그녀와 포옹하면서, 나는 오래 전에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카페의 사장님이 나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공항에서 근무했던 그는, 어느 날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을 거쳐 캐나다로 입국하려는 한 가족의 앞을 막아서야 했다고 했다. 그들이 내민 서류에 어떤 중대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다갈색 피부와 검은 곱슬머리를 가진 그 가족들 앞에서 그는 왠지 모르게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다.
“느낌이 왔어. 불법 이민이란 게. 애들 아버지 손이 엄청 떨리더라고. 애들이 다섯 명이나 됐어. 그게 말이나 돼? 애들을 다섯씩이나 데리고 캐나다로 놀러간다는 게? 그런데 말야. 그 애들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더라고. 꼭 유리구슬 같았어.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그는 호쾌하게 ‘통과’라고 외치며 손에 들고 있던 500cc 맥주잔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높이 들어 올린 맥주잔이 내겐 마치 승리의 트로피처럼 보였었다.
나는 그녀와 그렇게 포옹하고 난 뒤, 급격하게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녀와 포옹하던 그 순간 무엇인가가 나를 통과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감염인도 아니고, 에이즈로 공격받는 게이도 아닌데 에이즈 운동을 하지?”
나는 그녀가 한국에 찾아왔던 지난 4월, 종로의 어느 게이 바에 앉아서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한번도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게이니까.”
아마도 ‘성소수자니까’라는 말의 미국식, 혹은 일본식 표현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정말 그녀가 그녀 자신을 게이라고 생각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좀 더 심오하게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바이섹슈얼이든 트랜스젠더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더 이상 질문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오케이. 통과.”
그녀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뒤, 나는 내 자신에게 수백 개나 되는 의문부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감염인도 아니면서 내가 정말 그들과 같은 정도로 진지하게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까? 위선이라고 혹은 단순한 측은지심이라고 치부되지는 않을까? 내가 그 정도로 착한 인간이었나? 나는 왜 여기서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지? 게이니까? 내가 레즈비언이었다면? 그냥 일반이었다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물음표 뒤에서 나는 내 자신이 점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나는 이 운동을 하고 있는 게 어디까지가 운명이고 어디까지가 의지라고 생각해요?”
술에 잔뜩 취한 내가 에이즈 운동을 십년동안 해온 활동가에게 물었다. 아침 일곱 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앉은 그녀는 지난 한달 동안 나에게 의약품 특허와 관련한 국제 문제를 세심히 가르쳐 줬었다. 그녀에게 제대로 된 고마움을 표현하지도 못했으면서 그런 질문이나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좀 한심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혼자서 대답해버렸다.
“난 그냥 시키니까 하는 거예요. 내 앞에 어느 날 던져져 있었어요.”
내가 시킨 것인지, 운명이 시킨 것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한참이나 떠들었다.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애꿎은 알코올 탓을 하며 자책할 것을 알았지만, 나는 멈추지도 않고 낯부끄러운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안개에 묻힌 한강 변을 달리는 택시 안에 내가 있었다. 조용히 내다본 서울의 아침은 무척이나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그와 꼭 같은 장면을 방콕에서도, 도쿄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마치 아무런 문제도 간직하고 있지 않다는 듯, 짐짓 침묵하는 도시의 하늘 위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떼가 V자를 그리며 날아갔다. 세상은 일종의 증상이야. 이 증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거야. 나는 몇 년 전부터 함부로 떠들어대던 그 말을 입 속으로 웅얼거렸다. 언젠가 사진 속에서 보았던 아프리카 어린아이의 말라비틀어져 가는 손목과, 방콕의 거리에서 마주쳤던 성을 파는 소년과 소녀들이 마법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문이 굳게 닫혀 있던 샌프란시스코의 감염인 인권 센터와 푸제온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서야만 했던 우리들의 모습 또한, 차례로 스쳐지나갔다.
“왜 비참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브릿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가 끝나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일본말을 멈추고 영어로 대답했다. 나는 술에 취해서 그녀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마지막 문장만큼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세상의 진실을 알게 해주잖아.”
해와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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