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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소식

『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의 출판에 부쳐

by 행성인 2011. 6. 28.

『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의 출판에 부쳐




6월 28일, 우연하게도 스톤월 항쟁이 있었던 바로 그 날에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지승호가 함께 한 인터뷰집『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1년여 전, 아름다운재단 공익출판사업 선정 소식에 기쁜 마음도 잠시, 단순한 자료집 제작이 아니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식 출판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성큼 앞섰다. 부랴부랴 동인련 출판팀을 제정비하고,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기획회의를 하며 돌파구를 찾아갔다.

운 좋게도, 우리가 원했던 출판사인 ‘시대의창’에서 동인련 인터뷰집 출간에 호의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연달아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도 ‘유명하지 않은’ 동인련 회원들에 대한 인터뷰를 흔쾌히 맡아주시면서, 말 그대로 ‘드림팀’이 꾸려질 수 있었다. 이렇게 출판의 가장 큰 난관을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서면서, 우리의 자신감도 함께 부쩍 자라났다. 곧바로 인터뷰 대상자들을 선정한 뒤, 인터뷰 스케줄을 잡았다. 지승호 씨의 프로다운 철저한 사전 준비와 날카로운 질문들, 그리고 아픈 기억까지 서슴없이 꺼내어 놓는 동인련 회원들의 성실한 답변으로,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의 인터뷰는 늘 열정이 넘쳤다.


그렇다. 여기까지는 자만심(?)이 들 정도로 우리의 출판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인터뷰 녹취를 푼 날 자료를 대면하는 순간, 이제부터 정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비문과 오타를 고치는 과정은 차치하더라도,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반복되는 목소리를 지우거나 글의 구성을 바꾸는 작업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여기에 인터뷰이들이 ‘오프 더 레코드’로 했으면 하는 내용들을 삭제하거나 잘못된 내용들을 수정하고, 인터뷰 당시와 달라진 의견을 반영하거나 부연설명이 요구되는 부분들에 일일이 주석을 덧붙이는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인터뷰를 책으로 묶어서 내는 일이 결코 녹녹치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3시간 남짓한 인터뷰의 완성도를 최대치로 높이기 위해서는 그보다 몇 배의 공을 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인터뷰 내용을 다듬어가는 과정은 총책임을 맡은 나를 포함해 인터뷰이들과 출판사편집자가 함께 해나가는 것이라, 나 개인적으로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는 자신들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인터뷰이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독려하는 역할을 본의 아니게 맡게 된 것이 더 부담스러웠다. 자신의 인터뷰가 너무 재미없는 것 같다거나, 너무 어려운 것 같다거나, 혹은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한 것 같아 창피하다거나 등등. 어느 순간, 이렇게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능청스럽게 입에 발린 말을 하며 용기를 복 돋아 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찌됐건, 이미 벌어진 일 아닌가? 독자들이 원하는 건, 있는 그대로의 동성애자들 모습, 나아가 용기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 동성애자들의 모습이니까. 독자들은 분명 그 진심을 알아줄 테니, 재미에 대한 욕심은 버려두자. 부끄러워하지 말자. 우리는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내밀었으니, 이정도로 충분하다. 지금은 겸허한 마음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기다리자. 우리가 던진 치열한 외침에 대한 그들의 진솔한 대답을 기다리자.


김경태_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