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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조나단의 끼Look(룩)퀴錄(록)

<타인의 고통> 서평: 당신의 맹점엔 무엇이 갇혀 있나요?

by 행성인 2012. 8. 2.


조나단(동인련 웹진기획팀)

 

수상하다. 입시 전쟁, 살과의 전쟁, 메달 쟁탈전, 전쟁 같은 사랑,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는 온라인 게임 광고까지… 그물을 던지면 오늘 지나온 거리에서 전쟁어(語) 두세 마리는 어렵지 않게 건질 수 있다. 비약과 은유의 미학을 얕잡아보는 것은 아니다. 나도 삶이 전쟁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전쟁에 비유할 것이 너무나 많을 만큼 우리는 고단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수상하다. 나는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경험한 적이 없는 전쟁을 능숙하게 묘사할 수는 있다. 포탄이 떨어지고, 벽 뒤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상황. 소녀는 강간당했으며 마을 사람 모두는 이미 닷새째 굶주렸고 시체는 묻지도 못한 상황 같은 것. 모두 내가 소비했던 사진과 영화 이미지다. 그 이미지들은 정말 끔찍했고 가슴 아팠는데, 어느새 내가 오늘 힘들었던 일과 비슷한 질량으로 비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 같은 삶. 그러나 누군가 "정말로?" 하고 되묻는다면, 머쓱하게 긁적이며 "아니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지"하며 물러설 것이다. 그래. 내가 본 이미지에서 상상할 수 있는 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이 얼마 만큼인지 나는 모른다. 모르지만 너무나 익숙하다.

 

그 익숙함을 당신도 수상하게 여기는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렇게 답한다. 이미지의 대상화 때문이라고. 이미지는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당신은 전쟁의 참상이 담긴 사진을 보며 '아 이것은 인도주의적 동정을 유도하기 위해 현실을 정해진 사진 구도 안에 넣어 찍은 것으로 수용자인 내게 순정주의 혹은 타자화를 느끼게 하는구나'하며 냉소를 보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은 잔혹한 이미지로 뒤덮인 사회를 살아오면서 타인의 고통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무감각해진 사람일 수도 있고, 또는 같은 사진을 보며 눈물 흘리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사진 속 찍힌 이의 고통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에서 자신이 겪은 것 이상의 고통을 상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은 이미지로만 만나볼 뿐인 타인을 마주하는 우리에 대해 다루었다. 이 책을 읽고 잠시나마 자신의 가벼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 당신이라면, 우리 그 인식의 지평을 더 확장시켜보자고 권하고 싶다. 실재하는 것을 대상화, 타자화시켜 재단하거나 냉소하고, 뜨거운 연민을 보냈다 잊는 것이 얼마나 빈번한지를 생각해 보자. "게이/팬픽이반/운동권은 싫어/불쌍해" 라며 이성애자들이 성소수자를, 비청소년 성소수자 들이 청소년 성소수자를, 성소수자 들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타자화시키는 것을 떠올려 보자. 이것 또한 전쟁의 참극 이미지를 두고 작동했던 비슷한 인식의 기제가 작동한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실재하는 사람을 맹점에 가둔 채 타자화시키는 것 말이다.

 


물론 맹점에 누구를 가두고 있는지를 알아채고 그/녀를 탈출시켜 익명의 이미지 속 인물에서 벗어나게 하기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가 타인을 접했던 이미지는 어떠했던가? 게이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보기 힘든 것. 오도된 뉴스, 선정적인 집회 이미지를 더 쉽게 접하게 되는 것은 정상/비정상을 갈라 선택적으로 굴종시키는 사회 권력 시스템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책임을 묻는다면, 앞서 말했듯 직접 겪은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원래 어렵다는 이유 속에 숨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택의 말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자신을 잊을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하여 손택의 결론을 당신과 나와 우리에게 다시 적용해 본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특권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타인의 위치에 자신을 옮겨보고 그/녀와의 실천적 관계에서 타인을 헤아리는 것, 연대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