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왜 이곳에 왔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닥 만을 보았어요. 바닥에는 보풀이 일어난 빨간 카페트가 깔려 있었죠. 선생님이 내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연습실 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어요. 내가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만 가득했죠.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숙였죠. 무슨 단어를 쓴다고 해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이곳에 온 내 마음을 설명할 수는 없었을 거니깐요. 아니, 그 반대였어요. 입을 열기 시작하면 수많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어요. 이곳까지 달려오는 지하철 안, 마을버스 안에서 나의 마음은 그랬어요. 버석거림, 삭막함, 외로움. 누군지 대상도 명확하지 않은 그리움이 가득차서, 비쩍 마른 쭉정이처럼 흔들거렸어요.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도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하는 고목처럼, 누구도 마음에 품지도, 누구의 눈도 바라보지 못하는 막막함들이 가득했죠.
아니, 이건 엄살이에요.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차라리 하늘에서 바위 만한 우박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질 확률이, 내 삶에 흥미로운 일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생길 확률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깐요. 난요, 듣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 같은 아침 알람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맥주를 사서, 저녁과 함께 티브이를 보다가 깔깔 대면서 잠이 들었어요. 그시절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중얼거린 말은 춥다, 였어요. 더운 여름이었어요. 추울 리가 없죠. 하지만, 마음은 늘 추웠어요.
티브이를 보다가 잠이 든 날이었어요. 눈을 떠보니 티브이는 켜져 있었고, 형광등도 켜져 있었죠. 하지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죠.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외로움이 나를 휘감았어요. 그때 난 결심을 했어요. 나를 위해서 맛있는 저녁이 아니라, 한잔의 맥주가 아니라, 좀더 근사한 것을 한번 찾아보자. 그것은 굳이 노래가 아니어도 괜찮았어요. 뜨개질이어도 괜찮았고, 쿠키나 요리를 만드는 것이어도 괜찮았어요. 하지만 나는 선생님을 찾아갔죠.
다행이었을까요, 선생님은 더 이상 묻지 않으셨죠. “수줍음이 많으시네요.” 한 마디만 하셨을 뿐이었죠. 그때 고개를 살짝 들어서 바라보았죠. 웃고 계셨어요. 나의 정수리를 쳐다보면서 말이에요. 훔쳐보았어요, 웃는 모습을. 어쩌면, 그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내가 단순히 취미를 찾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게 지난 육개월간 선생님께 레슨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이었어요. 실은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한 적이 없어요. 함께래봤자, 영화를 보거나, 설거지를 같이 한다거나, 하는 정도였을 뿐이었죠. 하지만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 누군가의 반주에 나의 리듬을 맞춘다는 것은 온전히 내가 아니라 상대방의 호흡과 리듬까지도 공유하는 거더군요.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어요. 그래서 늘 추웠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치 이런 것과 같았어요. 따뜻한 방에서 머물다가 밖으로 나가면, 온기가 지속되잖아요. 그처럼, 일주일에 한번 있는, 고작 한 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레슨을 받으면, 일주일 내내, 춥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돌아가는 따뜻한 집처럼,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랬어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원하는 것만큼, 내 실력이 늘지는 않았지만, 지난주에 배운 것도 잊어버리고 쩔쩔매는 나이지만, 늘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웃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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