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Posted at 2012.09.25 17:44// Posted in 회원 이야기/재경의편지조작단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내게 캔맥주를 꺼내면서 말씀하셨죠. 어른이 되었구나, 우리 딸, 축하해. 엄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여자의 집에서는 올해 안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집안에 있는 남자들이 모두 죽는다는 점괘를 받았다고 해요. 그 마을에서 가장 용한 점쟁이에게 말이죠. 여자의 집은 난리가 났더랬죠. 사대 독자가 죽고 나면 누가 집안을 이끌어 가겠어요. 그래서 집에서는 동네에서 결혼하지 않은 단 한 명의 남자와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고 했어요. 여자는 남자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혼을 해야 했죠. 남편에게는 늘 숨겨둔 애인이 있었고, 여자는 울면서 집을 지켰다고 했죠. 옷장에 여행 가방을 싸둔 채, 도망갈 기회를 엿보다가, 결국 도망가지 못하고 그 집에서, 남편은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는 채로 숨을 거두었다고 했죠.

그러면서 말을 이으셨죠. 너에게 그런 일을 만들지 않을거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누구든지 집으로 데려오렴. 그 말을 듣고 난 울었어요.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술이 약하구나, 라며 캔맥주를 치우셨지만, 난 취해서 운 게 아니었어요. 맥주라면 고등학교 때도 많이 마셨는걸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몰래, 아빠 몰래,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홀짝였어요.

학교에서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고, 가끔 학교에서 반장을 하는 딸이 자랑스러웠겠죠? 지금처럼 산다면 아무 문제없이 서울에 있는 웬만한 대학에 갈 것이고, 그리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서 멋진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을 딸이 너무 대견했겠죠? 그래서 엄마는 대학 입학식을 앞둔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줬겠죠. 내가 잘못된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삶에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자신했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엄마. 내가 이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을 보고 싶다고 하겠죠. 내 딸이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냐고. 하지만 데려갈 수가 없어요. 제일 먼저 이렇게 물어보실 거니깐요. “어떤 남자니?” 엄마, 어떤 남자가 아니에요. 여자에요. 라는 말을 할 수 없다면, 그 뒤에 생략된 많은 말들을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난 그 말 자체를 꺼내지 못할 거에요.

그래서 울었어요. 엄마, 나는 여자가 좋아요. 그 문장 하나를 두고 십 년을 고민했어요. 그래서 늘 맥주를 마셨어요. 우리 집은요, 늘 편안했어요. 평온했구요, 누구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어요. 냉장고엔 늘 내가 좋아하는 감자조림이나 진미채 볶음, 호박 나물 같은 것들이 있었구요,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는 맥주도 있었죠. 늘 깨끗했고, 먹을 것들은 가득했어요. 집에 가면 엄마는 현관문을 열어주면서 어깨를 토닥여줬어요. 거실 바닥은 늘 닦아서 맨들맨들 했고, 책상 위에는 내가 보던 책과 공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죠.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이 깨질 것만 같았어요. 옷장에 여행 가방을 넣어두었던 여자처럼, 난 늘 이곳에서 도망가야 할 것만 같았어요.

얼마 전에 꿈을 꿨어요. 이상하게도 집들이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 집은 이십 년째 이사를 가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모와 고모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두 함께 웃고 떠들고 있었어요. 어린 시절 할머니 생일잔치 때처럼 나는 자다가 깨서 아빠를 찾았죠. 아빠는 웃으며 나에게 커피를 내밀었어요. 한참 동안 이모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엄마가 와서 나에게 말했어요. 방금 전까지 있던, 내가 엄마에게 정말 보여주고 싶은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어요.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며, 이모들에게 소개시켜줘야 하니 빨리 데려오라고 했죠. 엄마는 이름을 부르며 웃고 있었어요. 아주 환하게. 한 번도 엄마 앞에서 부르지 않았던 이름을 말이죠. 꿈에서도 나는 놀랐어요. 꿈에서조차 엄마가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일어나서 한참동안 멍하니 있었어요.

그때, 캔맥주를 치우면서 엄마는 그 여자, 옷장에 여행 가방을 숨기고 살았다던 여자가 외할머니라고 말했었죠. 내가 열아홉 살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말이에요. 나와 똑같은 이마를 가진 그분 말이에요. 엄마, 외할머니처럼 옷장에 무언가를 숨겨놓고 살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부엌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울고 싶지 않아요, 엄마. 엄마와 아빠의 행복을 깰까 봐, 그 아이의 이름을 숨기고 싶지 않아요.

엄마, 꿈에서 말고 현실에서도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세상의 끝까지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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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ong
    2012.09.26 15:45 신고 [Edit/Del] [Reply]
    이거 꽤 멋진데요. 회원만 신청 가능한가요?
  2. 2012.09.30 16:44 신고 [Edit/Del] [Reply]
    이번 편지는 정말 레알 하나의 소설을 읽는 듣한 기분이 들었다능...
    역시 능력자!
  3. 나단
    2012.10.01 16:30 신고 [Edit/Del] [Reply]
    뭐랄까 뜨거운 재경!
  4. 하나
    2012.10.05 23:28 신고 [Edit/Del] [Reply]
    다음번 편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 앞의 편지들도 찾아 읽었다^^v
  5. 이미정
    2012.10.06 15:20 신고 [Edit/Del] [Reply]
    ㅋㅋㅋㅋㅋ 재미나게 읽었다
    다음 편지를 기대하고 있겠음.
  6. 2012.10.12 15:26 신고 [Edit/Del] [Reply]
    멋지다ㅡ마음을 움직였어...
    문자 그대로 심동이구나ㅜ
  7. 2012.10.12 15:27 신고 [Edit/Del] [Reply]
    멋지다ㅡ마음을 움직였어...
    문자 그대로 심동이구나ㅜ
  8. 유리
    2012.10.27 20:00 신고 [Edit/Del] [Reply]
    메일확인 해주세요 ㅠㅠ부탁드립니다. 사연 보냈습니다. ㅠㅠㅠㅠㅠㅠ
    과장을 하셔도 좋고 제발... 제마음만이라도 전달할수있게...부탁드립니다.
  9. 계영
    2013.03.16 23:22 신고 [Edit/Del] [Reply]
    정말 뜨거워서. 에효. 이번 편지는 다 읽고 나니 넋 놓고 부러워지고 말았다는... (뭐래...;;)
    오래전에 성별은 다르지만 다른 이유로 집에 얘기하고싶어도 비밀연애를 하다가 결국 이런 고민끝에 (축복받고싶어서) 집에 조금씩흘리다 결국 얘길 했다가 아수라장이 된 기억이;-.-; 이젠 다 지나간 추억이 되었지만-.ㅠ;;;;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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