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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재경의편지조작단

여섯 번째 편지

by 행성인 2013. 5. 30.


당신은 비가 오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었죠.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당신은 수업을 하다가 말고 창밖을 쳐다보았죠. 설레는 표정이었어요. 그때 오래도록 당신을 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아마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당신이 바라보던 창가 맨 앞자리에 내가 앉아 있었다는 것도, 당신이 빗소리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듣기 위해 창문에 가까이 오는 순간 얼굴이 발갛게 변했다는 것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는 것도.

한 번도 당신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요. 꿈에서 늘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이름 뒤에 습관처럼 붙어 있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지워보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지워지지 않았어요. 당신의 이름 뒤에 중얼거리던 나의 마음도 지워보려고 했어요. 당신도 지우려고 했는데, 지워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말했던 거예요. 하지만 중얼거리던 그 단어를 말하지 않았던 게 나았을 거라고, 후회하고 있어요. 당신이 비를 바라볼 때와 같은 표정을 지어주길 바란 것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어요. 단순히 알아줬으면 하는, 그 뿐이었어요.

그건 내 욕심이었어요. 내가 당신의 이름 뒤에 붙어 있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지우길 바라는 것보다 더. 그걸 말하느니, 우물에 비친 달을 갖고 싶다고 생떼를 쓰는 게 나았다고 생각해요.

비가 오고 있었잖아요. 내가 당신에게 전화한, 그 밤에 말이에요. 당신의 전화기 너머로, 내 방 창문 너머로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어요. 좋아해요, 선생님, 이라고 내가 말했을 때, 당신은 들리지 않는 척 했어요. 거짓말이라는 거 알아요. 내가 울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었잖아요. 당신은, 내가 울기 시작하자, 은영아, 빗소리 때문에 잘 안들려서 그러는데 내일 학교에서 이야기 하자, 그리고 전화를 끊어버렸죠. 나는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울었어요.

다음날 학교에서 나를 피한 이유는 뭐였나요? 피할 거면 차라리 계속 피하지 그랬어요. 당신은 며칠 후 나를 상담실로 불렀어요. 그리고 상담 선생님과 당신과 함께 셋이서 무얼 했나요? 동성애는 질병이라고, 네가 동성애자가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죠. 그리고 당신은 은영아, 네가 평생 부자연스럽고 짐승과 같은 질병에 걸려서 살기를 바라지 않아. 라고 말했죠. 병신같이 난 아무 말도 못했죠. 정말, 병신같았어요. 당신은 내 손을 꼭 잡으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어요. 난 울기 시작했고요. 우리 은영이가 뉘우치기 시작했구나, 당신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어요.

그건 뉘우침의 눈물이 아니잖아요. 왜 제 마음을 함부로, 멋대로 정리하려고 하나요? 당신의 이름을 들으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당신의 책 읽는 목소리를 들으면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 자기 전에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왜 온몸을 배배 꼬는지, 왜 혼자서 웃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라고 말하고 나오지도 못하고, 당신이 잡아준 손의 온기가 따스해서 통성기도를 하든 기도를 하든, 찬양을 하든 꼭 잡고 있었어요. 나에게 더러운 영혼이 씌였다고 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건 당신이에요. 작은 마음마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당신 말이에요.

내 작은 마음마저도 내팽개쳐 버리는 당신은, 상처만 주는 나쁜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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