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오늘은 8월 29일 목요일 밤입니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당신은 어땠나요? 5월에 웹진에 글을 쓰고 벌써 3개월이 지나버렸네요. 빠지지 않고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는데, 혹시라도 제 글을 기다리셨던 분이 있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리면서 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을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당신은 소중한 누군가를 먼저 하늘 나라로 떠나 보낸 경험이 있나요? 혹은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매일 밤마다 악몽을 꿨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키가 작아서 맞고, 힘이 약해서 밀리고, 변성기가 남들보다 늦게 찾아와 목소리가 여자 같다는 이유로 놀림 받고 조롱 당하고, 오른쪽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기에 사시라는 놀림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당신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당신이 가진 개성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그것을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나요? 그랬다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했었나요? 누구에게 고민을 나누려고 시도했나요?
오늘 저는 당신에게 남겨진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당신이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이라면 얼마 전부터 홈페이지에서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는 공지사항을 보셨을 겁니다.
2009년 당시 고1이던 학생은 학교에서의 괴롭힘 때문에 자살을 했고, 그 학생의 부모님께서는 학교를 운영하는 부산시에 소송을 청구하였습니다. 1심과 2심에서는 법원은 학교의 잘못을 인정하였으나 최근 대법원의 판결에서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악질, 중대한 집단괴롭힘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학교 책임을 부정하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남학교에서 여성스런 행동을 하고 동성애 성향을 보인다는 이유로 같은 학급 학생들로부터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뚱녀”, “걸레년”이라는 욕설을 듣고,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등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한 학생에 대해서 말입니다.
대법원의 판결문을 읽으면서 지난 기억을 떠올렸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여전히 너무나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고요. 지금도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경험하고 있을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죠. 타인의 아픔은 외면한 채, 예전보다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고 말이에요.
몇 년 전 자살한 청소년의 유서에 쓰여져 있던 내용이나 최근의 자살한 청소년들이 남기고 간 유서의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사람인데, 조롱 당하고, 놀림 받고, 비웃음 당하고, 괴롭힘 당하고, 그리고 외면 당합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침묵함으로써, 지금도 누군가의 숨통을 조으고 있습니다. 외면으로 인해 누군가는 내일 아침을 맞이하지 않고 싶어 합니다
나 자체로, 삶에 자리해야 하는데 누군가는 그 자리를 잃어갑니다. 그리고 그 남겨진 자리를 우리는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스스로 불행한 삶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자살 청소년을 보고 이기적이라고 하거나 나약한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합니다. 청소년의 자살은 죽음을 선택 했다기보다, 사회가 그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사회가 삶을 포기하게 만들어 놓고, 미디어는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보도 합니다. 오늘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런 장면을 봤습니다. 출연자에게 성형수술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남자 같은 외모의 여성을 보고 비극적이고 희망이 없는 사람처럼 이야기 하더군요. 정신 검사를 해 보니, 다행히 성정체성의 혼란은 없는 정상적인 여성이었다고요. 그래서 또 화가 났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 프로그램이 저를 가해한 것으로만 보아야 할까요?
얼마 전 오로라 공주라는 드라마에는 나타샤라는 캐릭터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비수술 MTF 트랜스젠더였는데 정말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또 시간이 지나서는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만약 제가 트랜스젠더였다면 굉장히 모욕적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쉽게 트랜스젠더를 보고 남자가 여자로 변했다, 혹은 여자가 남자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그저 나였을 뿐인데 미디어는 게이라고, 레즈비언이라고, 트랜스젠더라고, 변태라고 구분 지으며 조롱합니다. 그럼 이럴 때도 그 미디어가 저를 가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미디어가 없어지면 되겠다고 결론 내면 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고 쉽게 떠드는 것은 그것이 정말 남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외면하고, 침묵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삶의 자리를 박탈 당하여 살 곳 잃은 자, 희망 없는 자, 불행한 자라는 낙인을 받고, 세상을 떠나갑니다. 그럴 때 남겨진 삶의 자리에 있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위에서 말한 청소년 재판의 다음 변론 기일이 9월 11일입니다. 9월 11일은 미국의 911 테러 12주기이기도 합니다.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비행기를 이용하여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WTC와 미국 국방부에 충돌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보내고 삶의 자리에 남겨졌습니다.
만약 9월 11일에 진행되는 판결에서도 대법원과 같이 학교에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많은 이들의 삶이 테러를 당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의한 괴롭힘은 이제 해도 되는 괴롭힘이라고 법원이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여도 괴롭힘 당하지 않는, 차별 당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주어진 자리가 어디쯤인지 고민해봅니다. 당신은 당신 그대로도 충분히 근사해요. 그걸 잊지 말아요.
* 9월 11일 있을 재판에 탄원서 보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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