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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재경의편지조작단

아홉 번째 편지

by 행성인 2013. 10. 22.


넌 늘 전 연인이 어떤 사람이었냐고, 정확히말하면, 전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었지. 난 늘 두루뭉술하게 대답했어. 그냥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주말이면 정오가 되도록, 낮게 코를 골며 자는 그 사람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고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말하지 못했어.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녀와 나는 오 년을 만났어. 우리는 같은 대학교, 같은 과를 나왔지. 내 대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 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도, 무척 친했던 사이 같은데 왜 한번도 본적이 없느냐고 물었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할 수가 없잖아. 너에게 전 연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어. 그냥 이제는 싸워서 더 이상 보지 않는다고 말했지. 우리는 딱 이맘때쯤, 함께 단풍구경을 가자고,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헤어졌으니까. 그녀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지. 맞선을 봐야한다고 했지.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너에게 왜 하는지 궁금하겠지. 너에게 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도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 할 거야. 그녀는 나와 함께 있는게 버겁다고 했어. 버겁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단어를, 그녀가 떠난 다음부터 지금까지 하루에도 몇번이고 생각했어. 버거웠어. 네가 다른 여자들을 힐끔거리며 쳐다볼 때, 나도 함께 힐끔거리고 있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도, 너를 만나는 것도. 

 

넌 언제나 좋은 사람이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너는 내 가방을 들어줬잖아. 내 가방에는 노트북이며 물통이며, 이런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는데 말이야. 가볍게 한손에 가방을 들고, 차가 온다며, 인도 안쪽으로 나를 밀어내는 걸 보고, 한참동안 놀란 채로 서 있었어. 한번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데이트하는 상대의 가방을 들어주는 건 늘 나였으니까. 넌 멋쩍게 씩 웃었지. 참 귀여운 남자라고 생각했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넌 변하지 않았어. 다정했고, 너보다 나를 더 신경써주었지. 참 고마웠어.


고맙다는 것, 그뿐이었어. 넌 나처럼 쓸데없는 것에 질투하지 않고, 털털한 여자가 이상형이었다고 말했어. 난 늘 네가 나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서 나를 버려줬으면 했어. 내가 널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지만 넌 바보같게, 한결같이, 3년이나 내 옆에 있었지. 나를 데리고 친구들 모임에 데려가기도 했고, 어디를 갈까, 혼자 신나서 여행계획을 짜기도 했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실은, 너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은 하나도 없었어.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네가 청혼했을 때, 나는 울었어. 눈물이 나더라. 청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어떻게 거절해야할까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어. 그래서 네가 끼워준 이 반지를 지금 너에게 돌려주려고 해. 


여기에서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나의 삶은 평탄하겠지. 성실한 너는 직장에서 승진을 할거고,나는 너를 닮은,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늙을때까지 아무 일없이 잘 지낼수 있을거야. 그게 네가 원하는, 내가 원하는 삶이겠지. 


좋은 사람, 누구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남자를 만나면 그녀처럼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보통 사람들처럼 그냥저냥 애를 하나씩 둘씩 낳고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너를 만나면 만날 수록, 네가 나에게 더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그녀가, 그녀를 닮은 여자들이 보고 싶었어. 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녀와 함께 껴안고 잠이 들고 싶었어.  


그래서 너를 사랑하지 않는, 아니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와 네가 평생을 보낼 약속을, 거절하는거야. 넌 충분히 다른 여자에게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나와 다른 여자라면, 지나가는 여자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지 않는 여자라면, 너를 질투하고, 사랑하고 속상하게 하는 여자라면, 넌 충분히 아름답게 빛날 테니까. 그런 여자를 만나서 너와 그녀를 닮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지내. 그게 3년동안 네 곁에서 머문 마지막 마음이라고 생각해줘.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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