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련 상근활동가 덕현(왼쪽)과 병권(오른쪽)
인터뷰 한 사람: 동인련 웹진팀 모리, 오소리, 조나단
인터뷰 받은 사람: 동인련 상근활동가 병권, 덕현
모리: 만나서 반갑습니다. 활동을 하지 않는 회원들이 유일하게, 또 가장 먼저 접촉하는 게 상근자인데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인지 많이 궁금해 하실 것 같고, 활동과 노동의 경계가 만약 있다면 이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보셨을 것 같아 그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 드릴게요.
덕현: 저는 덕현이고요. 상근은 올해 1월 달부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행복하게 잘 활동 중입니다. (웃음)
병권: 가식적이야. (웃음)
덕현: 진짜야! 이것보다 더 행복을 원한다면 그건 판타지라고 생각해. (웃음) 어쨌든 행복하게 잘 활동하고 있어요.
병권: 저는 장병권이고요. 상근 활동은 2011년 10월 정도부터 시작했어요. 그 전엔 상근자가 없었어요. 상근자가 생긴 건 종로의 기적 개봉하고부터예요. 개봉한 그 해에 생겼어요.
덕현: 그 전에도 일일 상근은 있었어요. 돌아가면서 회원들이 같이 상근 했던 적은 있었지만 안정적으로 쭉 상근 할 수 있게 된 구조는 그때부터였어요.
병권: 상근자에게 활동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던 건 동인련 성북동 사무실 시절, 2007년, 2008년부터예요. 그때부터 일일 상근자에게 10만 원 정도씩 지급했었지만, 전임 상근 제도가 생긴 건 2011년이 처음인 거죠.
모리: 이게 끝인가요? 더 자기소개 할 것은 없나요?
덕현: 뭘 원하나요? 다 이야기해주겠어. (웃음) 게이이고, 애인 없고, 181/61/30,
병권: 포지션?
덕현: 아직 섹스 경험이 많지 않아 모름. 식성은 안 말하겠어. 추위를 많이 타고 커피보단 핫초코를 좋아해요.
병권: 저는 싱글은 아니고요. 만난 지 5년 된 파트너가 있어요. 같이 산지 3년 정도 되었고요, 고양이 3마리와 같이 살고 있어요. 잡식성. 음식은 가리는데 남자는 안 가려. (웃음)
모리: 상근자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세요?
병권: 저는 2004년부터 재정을 맡고 있어요. CMS, 회원들 회비나 후원금 관리하고. 또 연대활동을 주로 담당하고 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인권단체 연석회의, 여러 연대 분야에서 기획하는 것이 필요할 때에요. 이번 달에는 11월 2일과 3일에 서울에서 해외 한국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고, 11월 1일 육우당 문학의 밤도 기획하고 있어요. 동인련 인권상담팀도 하고요.
덕현: 전 회원들이 가입하면 전화해서 인사하고, CMS 등록하고, 매주 회원 메일링을 보내요. 동인련 회원 프로그램도 같이 준비해서 하고. 이게 상근 활동을 물어보는 거죠? 사실 나는 구분이 별로 크게 없어요. 사무실에서 팀 활동에서 하는 일도 많이 하고 연대 활동으로 기자 회견 같은 곳에 갈 때가 많이 있거든요.
모리: 병권님은 ‘장화백’으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병권: (웃음) 그렇죠.
모리: 요새 붓은 덕현님이 드나요?
덕현: 요즘 붓은 아무도 안 들어 이제.
병권: 요즘은 기계 문명이 발달하면서 프린터가 해주시고 계세요.
병권: 그렇죠. 학교 다닐 때 학생회 하면서 선전부에서 배웠어요. 동인련에서 피켓이나 플랑에 글을 쓰거나 웹 홍보물을 만들거나 하다 보니 별명처럼 붙여졌죠. 저기 벽에 붙어 있는 예전 활동 사진들 보이죠? 저기 웬만한 선전물은 내가 다 만든 거야.
모리: 동인련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요?
덕현: 저는 2006년도가 막 게이로서 정체화하던 시기였는데, 그때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동인련을 찾아서 오게 됐는데요, 그때 동인련을 봤을 때는 홈페이지가 너무 허술해서 ‘친구사이’에 갔었어요. 근데 친구사이는 그때만 해도 연령대가 높아서 활동을 뜸하게 하다가 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사람들과 만나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그러다 동인련에서 뭔가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HIV/에이즈 관련한 인권 세미나였어요. 그 이후로 연을 맺고 가입하고 드문드문 활동하다가, 본격적으로 많이 하게 된 건 졸업하고 군대 제대하고 나서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 시작했어요.
병권: 저는 욜이 대동인(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 동인련의 전신) 알리는 벽보를 학교 도서관이나 화장실에 붙이러 왔을 때 동인련을 알게 됐어요. 그때 학교에 완전 난리 났어요. ‘우리 학교에도 동성애자가 있다’면서. 막 대자보 찢기고. 그렇게 동인련을 알게 된 게 98년 겨울이에요. 그때는 동인련 활동은 안 하고 간간히 얼굴만 비추다가, 육우당이 그렇게 된 후에 2003년 여름캠프를 같이 준비하면서 동인련 회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10년 됐네요.
모리: 상근자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덕현: 얼마 전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에서 제 하루 일과 그린 게 있어요. 짧게 설명을 하자면, 이 날은 뭐하고 다른 날은 뭐하고 하루하루 하는 일이 다르긴 한데, 대충 평균을 내보면 열 시 반에 출근해서 열한 시 반까지 이메일을 확인해요. 그러고 나서 점심을 먹어요. 열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중 두 시간 정도는 사무실에서 팀 활동, 웹자보를 만들거나 글을 쓴다거나, 한 시간 정도는 낮잠, 한 시간 정도는 웹서핑이나 페북을 해요. 나머지 두 시간 정도는 기자회견에 간다거나, 연대 단체 회의를 가거나 하는 외부 활동을 해요. 7시부터 열 시까지는 회의가 많은 편이에요. 열한 시까지는 뒤풀이. 이런 저녁 일정은 명확하게 말해서 일이라고 하기 힘든데, 여기 이렇게 일이라고 그려 놓은 걸 보니 제가 이것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에서 그린 덕현의 하루. 동그라미가 24시간이 아니라는 것에 주의 할 것.
모리: 훌륭하네요. 병권님은?
병권: 상근 일을 시작하면서 낮 시간에 가장 많이 할애하는 건 회의에요. 무지개행동 집행위원회나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회의 같은 거. 회의가 두 시 세시에 있을 때도 있어요. 동인련에 상근자가 없었던 시절에는 대부분 연대 회의는 저녁에 했는데 요새는 낮에 많이 해요. 회의를 하면 그전에 회의준비를 해야 하고 그 후에 회의 정리를 해야 하니까 일이 조금 더 있고. 덕현과 마찬가지로 저도 이메일 확인, 재정 업무, CMS 관리, 회원 관리, 동인련 SNS 운영 같은 일을 해요. 상담전화가 오면 상담도 받아요. 상담의 비중이 높진 않지만 한번 전화가 오면 30분에서 1시간 동안 통화 하거든요. 언론사나 대학생들에게서 인터뷰 요청이 오면 처리도 하고요.
모리: 덕현님은 낮잠은 어디서 자나요?
덕현: 라꾸라꾸 침대에서. 난 낮잠을 꼭 자야 해.
모리: 상근 활동가가 되고 나서 바뀐 점이 있다면?
덕현: 상근 활동가를 하기 전엔 장애인 활동 보조를 하면서 동인련 활동을 했었는데 그땐 너무 힘들었어요. 돈을 조금 벌면서 나머지 시간에 활동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은 거에요. 6시면 땡 끝나서 뒤도 안 돌아봐도 되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요. 그래서 상근 활동을 처음 했을 때 너무 좋았어요. 행복했어요. 돈이 해결됨과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계속 활동해왔던 곳이기에 불편함도 없고, 병권과 위계질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은 행복이 좀 떨어지기 했지만, (웃음) 돈 벌면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이것보다 더 질이 나은 건 없다고 확신해요. 그렇다고 지금 막 행복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굳이 수치로 따지자면 행복한 건 맞는데, 막 가슴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건 아니라는 거죠.
병권: 전 2003년부터 회원으로 활동했는데, 그 해 11월에 군대를 갔어요. 군대를 방위로 가서 출퇴근하면서 동인련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그때 제대 후에 동인련 살림이 나아지면 동인련에서 돈을 받고 활동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그때 동인련 월수입이 50만원 정도밖에 안됐을 거에요. 2006년 즈음에 한 시민단체에 들어가서 5년 일하다 나왔는데, 그 5년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일 그만두고 동인련 상근을 시작하면서부터 너무 좋았어요. 동인련이 전임상근자를 둘 수 있는 정도가 된 것도 너무 좋았고, 그 혜택을 내가 받는다는 것도 너무 좋아서 정말 청소도 막 열심히 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게을러지고 나태해진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동인련에 전임활동가가 있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많이 생각하게 된 시기인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흡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활동에 기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는 데에 만족감이 있어요. 물론 책임감도 따르지만.
모리: 그럼 이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노동자라고 생각하는지?
병권: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덕현: 나는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부분들이 있긴 한 것 같아요. 내가 돈을 받고 일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값을 해야 한다고 느끼거나, 하기 싫어도 돈을 받으니 해야 된다고 느끼는 것이 있어요. 출퇴근 시간을 지킨다거나 하는. 물론 여기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죠. ‘좋아서 하는 것만은 아니구나’하고 생각해요. 그래서 노동자라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너 노동자야?”라고 물어보면 왠지 정체성을 묻는 느낌이 들어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런 요소는 있긴 한 것 같아요.
병권: 노동자라고 이야기 하는 게, 뭔가를 생산하거나 제공하는 것, 또는 노동자가 불이익 당했을 때 정당하게 해결하기 위한 권리가 있는가 없는가를 중요하게 보는 것 같은데요, 제가 일하는 공간에서는 그런걸 비춰봤을 때 노동자라는 생각은 안 드는 것 같아요. 그냥 활동가라고 봐요. 근데 활동가라고 해도 사람들을 만나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같이 무형의 무언가를 만든다거나 하면 넓은 의미에서 노동이라고 생각하긴 해요. ‘내가 노동자인가 아닌가’, ‘활동가인가 아닌가’하는 그 정체성을 내 스스로 찾아야 할 때가 언제인가 생각하면, 모호하고 어려운 문제이긴 하죠. 그래서 어렵다고 말한 거고요.
모리: 동인련의 활동 환경은 어떤 것 같아요? 좋은 직장인 것 같아요?
덕현: 저한테 가장 중요한 건 권위적인 걸 못 견디는 것, 그게 강한 것 같아요. 일방적으로 내 의견을 말할 수 없고 권위적인 상황에서 일해야 하면 정말 힘들어요. 권위적인 것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좋아요. 전 상근자이기도 하지만 운영위원기도 해서, 동인련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전에 있던 직장의 환경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런지 사무실 환경도 좋다고 생각해요. (웃음) 급여가 좀 적다는 건 안 좋고 주말이나 저녁 시간 활동이 많다는 게 안 좋긴 해요. 아마 이걸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못 했을 거에요. 활동이고 하고 싶은 일이기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값싸고 맛있는 밥집을 찾고 싶어요. 이경 사무실 보면 참 부러워요(이경이 일하는 여성노조는 밥이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 웹진팀 주).
병권: 덕현이 있기 전에는 텅 빈 사무실에 하루 종일 혼자 있었어요. 사무실이 이사해서 지금은 더 커졌지만 좁은 공간에서 혼자 휑하니 있으면 우울했어요. 회의가 있거나 하면 괜찮은데 혼자 있으면 힘들죠. 작년에 모금 활동이 잘 돼서 사무실도 이전하고 상근자도 두 명 되고, 상근자 책상도 넓어졌어요. 집에서도 가깝고, 화장실도 따로 있고, 추울 때 더울 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사람들이 와도 불편하지 않고, 내가 업무 하는데 크게 방해가 없는 좋은 근무환경이긴 해요. 가장 좋은 건 위계질서가 없어서 좋고. 그런 게 참 좋아요. 하지만 다른 회사들처럼 시간이 정해져서 출퇴근 시간 이외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저녁이나 주말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그래야 하는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써야 하는 건 있는 거 같아요.
모리: 상근 활동가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병권: 난 이거 밖에 할게 없어. 배워 먹은 게 이것 뿐이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웃음)
덕현: 대학교 때 정체화하면서 과학자에서 인권활동가로 꿈이 바뀌었어요. 내가 제일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동인련이었고. 하지만 원래는 활동하면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어요. 나한테 활동이 일로 느껴질 때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학생회 하면서 정말 많이 느꼈거든요. 근데 일하면서 활동하니까 그게 더 힘들어서, 상근 활동가가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일이었어요.
모리: 대학생 때 학생회 활동을 했군요?
덕현: 학교 성소수자 모임에서 알던 친구가 총여학생회를 같이 하자고 했거든요. 공약 중에 ‘레즈비언 문화제’도 있고 그래서 같이 했죠. 그 친구랑 학생회 활동을 같이 하면서 인권 활동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원래는 그냥 대학원에 갈 생각이었는데, 친구가 인권 활동가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학생회를 하던 시절에 굉장히 사회 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이 고양되었어요. 노동운동 집회에 처음 가서는 막 ‘경찰이 왜 저러지?’하면서 충격 받기도 하고, ‘사회주의, 흠.. 맞는 말이네..’하고 생각도 하게 되고.
병권: 대학에 가면 나와 같은 정체성인 사람을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PC통신을 통해서 사람들을 알게 됐고, 동인련도 알게 됐죠. 그 때부터 인권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대학 다닐 때 학생회 활동을 했는데, 그 시절에 학생회 선배들이랑 엄청 싸웠어요. 나는 동인련에서 활동 하고 있는데 선배들은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학교에서 선배들과 논쟁하다가 결국 나와서 동인련에 있게 된 거죠. 어릴 때 꿈은 선생님이었어요. 사범대에 가고 싶었죠.
모리: 회원들이 미울 때가 있다면, 혹은 바라는 점?
덕현: 미리 보내준 질문지를 보고 딱 한 순간이 떠오르긴 했어요. 팀 별로 사무실을 청소하기로 하고 얼마 안됐을 때였는데, 어떤 팀이 청소하는 날에 나는 그 팀이 아니었기에 바깥에 있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서 잠깐 사무실에 들어왔어요. 근데 회원들이 “검사하러 왔냐”, “회원들한테 청소도 시키고 말이야”하면서 농담처럼 이야기 하는데, 그 때 많이 기분이 나빴어요. 농담이라 티도 안내고 그냥 나갔는데, 내가 마치 청소 검사하는 선생님이 된 기분이라서.
병권: 밉다거나 그런 건 없는데, 아쉬운 건 딱 하나. 청소와 정리. 적어도 자기가 앉았거나 사용했거나 하면 원래 있던 대로 해놓으면 좋죠. 분리수거도 좀 더 잘해줬으면 좋겠고. 그런걸 안 했다고 해서 화나거나 그런 건 아니고 내가 하면 그만이긴 한데, 이 공간이 많은 사람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소중한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소중하게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좁고 정리도 안되고 춥고 더운 사무실에 있다가 이렇게 번듯한 곳으로 온 게 좋아서 더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
모리: 상근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병권: 나는 몇 개가 있는데, 비상근 활동가 할 때도 좋았지만 상근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만 생각하자면, 서울학생인권조례 대응할 때. 2011년도에 전임상근이다 보니 뭔가 맡아서 계속 할 수 있었어요. 농성장에 가거나, 뭔가 맡아서 하거나, 회의를 가거나. 만약에 전임상근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었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에요. 농성하던 사람들이 동인련 사무실 와서 자기도 하고, 회의도 늦게까지 하고. 또 기억에 남는 건 작년. 작년에 무지개 텃밭(동인련 사무실) 이사하고, 후원의 밤 하고 그럴 때. 오리도 상근활동가 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좋았어요. 나머지도 좋았지만 상근으로서 이 두 가지 정도.
덕현: 전 상근 활동을 올해부터 했는데, 상담 전화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전화하는 와중에 부모들이 상담 전화 올 때. 말할 곳이 정말 아무데도 없어서 내가 그런 얘기 들어주는 걸 되게 고마워할 때. 난 어떤 도움을 줬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군형법 캠페인 할 때 동인련으로 편지를 받았는데 정말 다양하고 많은 지역에서 편지를 보내고, 전국 곳곳에 사는 성소수자들이 조금이라도 자기가 도움이 되기 위해서 편지를 보내는 게 감동이었던 것 같아요.
병권: 그러네. 이번에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으로 자살한 청소년의 어머니를 만나러 부산 내려간 것도. 전임상근 아니었으면 못 갔을 거에요. 만나고 나니까 너무 마음이 아프고.
모리: 상담 전화 받을 때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병권: 일단 나이대는 너무 다양한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다양하게 전화가 오고, 내용은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대한 물음/어려움, 요즘엔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고, 학교 내 폭력이나 괴롭힘도 많고, 애인 사이나 친구 사이에서 관계가 틀어지거나 금전 거래 때문에 아웃팅 협박을 하거나, 부모의 상담. 기혼이반 상담. 정말 다양해요.
모리: 상담 전화를 받을 때 본인은 어때요?
병권: 상담 전화 후에.. 대부분 무기력해져요. (웃음) 정말 해줄 수 있는 게 말 밖에 없어.
덕현: 맞어.
병권: 변호사를 소개 시켜줘야 할 경우에 소개는 시켜주는데, 경찰과 직접 연결해줘서 해결해 줄 수 있는 통로라던가 그런 게 너무 없어요. 우리가 아무리 비정상이 아니고, 약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해줘도, 동성애자 단체니까 당연히 우호적으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렵죠.
모리: 전화 한번만으로는 다 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
병권: 그런데도 결국은 한번 밖에 안 걸죠. 두세 번 더하면 좋을 것 같은 경우도 많아서 아쉬울 때도 많아요.
덕현: 저는 상담 전화 받으면서 느끼는 게, ‘아, 정말 나는 모르는 세상이 너무 많다.’ (웃음)
병권: 맞아.
덕현: 그러니까, 성소수자 단체에 있지만,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다른 성소수자의 세계가 있다는 것. 그래서 처음에 전화 받으면서 많이 놀랐어요. ‘같은 세상에 다른 세계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우린 정말 좁은데 있구나’하는 느낌. 그래서 좀 막막했어요.
병권: 인터뷰 요청이나 언론에서 연락이 오면 오히려 열 받아요. 조사도 안하고 기본적인 용어도 모르고, 자기가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전화해서 다 해 달라는 식으로 대학생이나 언론사에서 연락이 오면 그것만큼 열 받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마음 같지 않나 봐.
덕현: 언론 대응하는 게 제일 스트레스야.
병권: 이번에도 기사 싣지 말라고 했는데 분명히 얘기 했는데, “조사 더 하셔야 한다고, 이 기사를 왜 쓰시는지도 모르겠고, 동인련이 BL물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가질 이유가 없는데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조사 더하고 다시 전화 달라”고 했는데, 마음대로 인용된 기사가 나와서 항의 전화 했더니 부분적으로 인용해도 된다고 얘기한 줄 알았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전화 다시 달라고 했는데 전화도 다시 안주고. 화나. 대부분 그래요. “동성애자에 대해서 우호적이고, 잘 다루고 싶은데요, 동성애자에겐 어떤 차별이 있나요?” 이렇게 물어봐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줘야 하는 건지. 그런 때가 제일 스트레스 받아요. 그럼 “저희 홈페이지보고 전화 주시는 거죠? 저희 홈페이지에 웹진이 링크되어 있는데 읽어보셨나요?”하고 묻는데, 대부분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읽어보고 다시 전화 달라고 하면 전화 안 와요. 자기 얻을 거 다 얻은 거지.
모리: 예의 없는 언론의 리스트를 만들면 좋겠다.
덕현: 예의 있는 언론 리스트 만드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웃음)
모리: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병권: 저는 지금 팀 활동은 상담팀만 하고 있어요. 나머지는 연대활동이고. 웹진팀 초기에 잠깐 있다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 같아서 빠지게 됐고, 노동권팀도 잘되고 있어서 조금 하다가 빠지고 해서 조금 아쉽긴 해요. 그러니까 동인련에 과제가 생기면 잠깐 활동에 참여하는 건데, 지금은 그게 상담팀이니까 하고 있어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모리: 상담팀은 잘 되고 있어요?
병권: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웃음) 상담이라는 게 어렵기도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김조광수 감독 커플이랑 ‘신나는 센터’를 같이 기획하고 있어요. 근데 이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웃음)
덕현: 최근 들어 내가 실제로 할 게 아니라면 하고 싶다는 말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했으면 재미있겠다’ 싶은 거야 많죠. 예를 들어 오래된 활동가들 외에 새로운 활동가들과 같이 동인련의 의사결정을 하거나 활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체계적인 구조를 만들거나, 연대활동을 회원들과 좀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짊어질 생각을 못하니까. 새로운 활동가와 함께 하는 구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동인련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 이 정도? 생각은 다 할 수 있는 거야.
병권: 난 기획 활동이나 이런 게 재미있던데. 육우당 문화제는 기획은 해 놓고 실제로는 아파서 못 봐서 너무 아쉬웠어요. 전 꿈이 하나 있는데요, 시청 광장에서 성소수자 인권 문화제를 하는 거에요. 저마다 부스도 만들고, 행사도 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모리: 10년 뒤에 동인련의 모습은 어떨 것 같은지?
덕현: 와우. 십 년 뒤의 동인련 모습이라니. 난 사~십! 예상은 하기 힘든데 ‘이랬으면 좋겠다’하는 건 있어요. 저는 각 팀들이 하나의 단체가 다 됐으면 좋겠어요. 동인련은 그때도 새로운 팀들이 있고, 새로운 성소수자 의제를 계속 발굴해서 팀으로 만들어가고, 그런 구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단체가 되어도 같이 활동했던 기억이 있고, 공유하는 정치적인 기반이 있으니까. 같이 할 수 있는 건 같이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활동들을 만들어가는 거죠. 동인련이 막 커지는 것 보다는 독립적인 단체로.
병권: 지금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영역 별로 나눠지진 않고 있는데, 예를 들어 청소년, 에이즈, 노동권, 교육, 상담 이런 게 더 잘 개발돼서 보편적으로 자리 매김 된다면, 그것 말고도 다른 것들도 할 수 있게 되겠죠. 동인련이 그걸 잡아서 잘 키우고 새로운 주력 운동으로 만들고. 동인련이 문턱이 높아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단체가 아니거든요.
모리: 한 번 들어와보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죠. (웃음)
병권: 사람들도 너무 좋고, 위계도 없고,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해 호응해주고 도와주고. 이런 게 동인련이 무겁기도 하면서 가볍기도 하다는 증거인데, 이런 상태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어렵지 않게.
덕현: 그런 것도 있어요. 오래된 활동가들과 새로운 활동가들이 같이 활동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렇다고 오래된 활동가들이 싹 없어지는 게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근데 또 오래된 활동가들이 너무 많으면 새로운 활동가들이 잘 못 들어와요. 왜냐하면 경험이 적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고, 아이디어를 하나 내려고 해도 워낙 다 해본 사람들이 많아서 말하기가 힘든 거죠. 그 균형이 잘 맞아야 하는데, 단체가 오래될 수록 그 균형이 잘 맞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10년 뒤에 동인련이 그런 균형이 잘 맞는 단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요.
병권: 그러려면, 동인련에서 활동했던 기억이, 개인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단체의 기억이기도 한데, 그걸 잘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남으니까. 회의록이나 그런 걸로도 잘 남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예전에도 나왔던 이야기가 다시 나올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예전의 기억이 지금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된다면 좋겠어요. ‘고민들을 어떻게 잘 모아서 어떻게 잘 전달해야 할까’하는 고민이 들어요. 그래서 동인련 20주년이 되면 동인련의 중요했던 순간순간 활동했던 사람들의 기록들을 모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예전에 활동했던 사람들을 모아서 그때는 이랬다 저랬다 얘기를 들려주는 거죠. 당사자들이 그때의 기억을 잘 남겨뒀으면. 회의 기록 말고 사람의 기록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웹진에서 그런 거 하면 좋지 않을까?
웃는 게 예쁜 덕현. 싱글입니다. 데려가세요.
모리: 마지막으로 동인련 회원들에게 한마디.
덕현: 언제든지 두려워 말고 관심 있으면 연락 주세요.
병권: 너에 대해서?
덕현: 아니~ 활동에 대해서. 사실 처음에 가입하면 먼저 연락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는 언제나 환영한다는 거! 물론 이렇게 막 챙겨주진 않지만. (웃음) 뭐 일정 알려드리고 소개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부담 없이. 친절하진 않지만 성실하게 답해드리겠습니다. (웃음) 친절한 건 병권이 잘해. 막 이모티콘도 쓰고. 전화할 때도 안부 먼저 물어보고 본론 얘기하고. (웃음) 나는 그런 거 없어. 무조건 본론. 얘기할 때 너무 정보 위주로 얘기하니까 이게 쉽지 않더라고.
모리: 병권님은?
병권: 동인련은 여러분의 것이에요!
모리: 딴 거.
병권: 보면 동인련만큼 독특한 단체도 없는 것 같아요. 좀 신기하기도 하면서. 그런 말 있잖아요, “동인련 사람”. 그만큼 다 특성이 있다는 건데, ‘새로 온 분들이 그 특성을 맛보면 좋겠다’하는 생각 해요. 가입은 했는데 좀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그냥 편하게 오셔서 이야기 나누다 보면 동인련의 맛을 알 수 있으니까, 편하게 오시거나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모리: 번 외 질문으로 홍대에서 밥은 주로 어디서 드시나요?
병권: ‘두리반’ 잘 가요. ‘이춘복참치’집도 가고. 거기 회 덮밥 짱이야. 밥보다 회가 더 많아. 싸고 괜찮아요. 두리반은 밥먹고 나서 배가 안 아파요. 조미료를 별로 안 쓰나 봐.
덕현: 내가 요즘 제일 애용하는 곳은, 그냥 밥집인데 가정식으로 나오는 곳이에요. 인권재단 사람 가는 길에 ‘밥이떼’라는 곳이에요.
모리: 그럼 점심시간에 이 곳들 중 한 곳에 가면 상근자를 만날 수 있나요?
덕현: 아니. 그냥 사무실로 오라 그래~ 왜 그렇게 바보같이 만나려고 그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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