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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정휘아의 퀴어뮤직쌀롱#1] 뿅뿅싸운드의 재발견, PET SHOP BOYS(펫샵 보이즈)

by 행성인 2013. 12. 25.


정휘아 (동성애자인권연대)



누구나 TV채널을 돌리다가 들었을 수도, 클럽에 가서 들었을 수도 있는 음악. 요즘 음악들치고 뿅뿅싸운드가 안 들어간 음악이 없을 정도이지만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일랙트로닉 장르의 선구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음악들이 가능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PET SHOP BOYS'(펫샵 보이즈)에 대해 다룬다.

 


(진짜 옴팡지게 어디선가 들어봤던 이 곡은 PET SHOP BOYS의 ‘Go West'(고 웨스트). 

1993년 ’VERY'(베리) 라는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영상을 틀고 글을 감상하면 어느 정도의 재미를 보장할지도?)

 

이들의 소개는 하고 넘어가야겠다.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영국 남성들이며 둘은 1981년 런던의 한 전자상품 가게에서 처음 만나서 팀을 결성했다. 당시엔 PET SHOP BOYS라는 이름이 아닌 ‘West End’였다.



오른쪽은 보컬을 맡고 있는 Neil Tennant(닐 테넌트), 왼쪽은 연주를 하는 Chris Lowe(크리스 로우)


 

장르를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일랙트로닉/신스 팝이다. 그냥 댄스음악으로 치부하진 말자.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음악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는데 초반이라 그런지 옛날에 나온 일랙트로니카 장르의 음악들을 들으면 여러분들 귀에는 다소 촌스럽고 심심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PET SHOP BOYS는 아주 정교한 사운드를 구사했고 실제로 신시사이저의 재구성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90년대 본격적인 일랙트로니카 부흥기를 만들어내는 데 한 몫을 했다. 물론 그 영향력은 고스란히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고, 일랙트로니카 장르의 뮤지션들은 대게 싱글 위주로 발매를 하고 앨범은 약간 질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반해 PET SHOP BOYS는 싱글과 앨범이 둘 다 좋다. 역시 섬세한 손길과 들으면 들을수록 빨려 들어가는 목소리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 몽환적인 목소리에 다소 세련된 음악 뒤에 숨겨져 있는 가사는 굉장히 냉소적인데, 그 중 한 예로 'Rent'에서는 "난 너를 사랑해 왜냐하면 네가 내 집세 내주니깐"과 'Opportunities (Let's Make Lots of Money)'에서는 "난 머리가 있고 넌 외모가 있으니 떼돈이나 벌자"라는 가사를 아무렇지 않게 썼다. 이런 가사 역시 높은 평가를 받는데 일조했으며 이들 최고의 싱글이라고 할 수 있는 'Being Boring'의 가사는 꼭 한 번 그 뜻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부분 출처: 엔하 위키 미러 PET SHOP BOYS 항목)

 

여러분들이 방금 틀었던 동영상에서 나온 음악을 들으면 익숙할 것이다. ‘Go West'는 사실 이들의 음악이 아니다. PET SHOP BOYS는 리메이크 곡에도 강한데 이 곡은 원래 Village People의 곡이다. 왜 처음부터 ’Go West'에 관해 언급을 했냐면 이 곡은 언뜻 들으면 그냥 응원가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게이들의 이상향으로 가자는 곡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노래의 제목은 19세기의 미국 서부 개척 붐 속에서 호레이스 그릴리가 말했던 '서쪽으로 가라, 젊은 그대여 Go West, young man'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과 비슷하게, 'Go West'는 1970년대 게이 해방 운동의 본거지이던 샌프란시스코의 의미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여기에 하나 더 첨부를 하자면 이 곡이 나온 1993년은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뿐만이 아니라 당시 동유럽 국가들은 냉전이 끝난 상태였고, 썰렁한 분위기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온 곡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곡은 골수 공산주의자나 동유럽 국가들의 사람들은 유쾌하게 듣지 못한다. 먼저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겠지만 노골적으로 공산주의의 상징인 붉은 별이 나오고, 자유의 여신상이 붉은 색으로 된 옷을 입었으며 흑인으로 표현된 걸 볼 수 있다. 남성들의 합창소리처럼 들리는 “Go West~"하는 코러스 부분은 언뜻 들으면 소련의 군가 같이 들리기도 하는데, 이도 그쪽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만든 것이다. “듣고 자극 좀 받으란 말이야!” 이런 걸지도.

 

이 이야기를 풀면 여러분들은 다시 스크롤을 위로 올릴 것이다. 보컬인 Neil Tennant는 커밍아웃을 한 게이로도 굉장히 유명한 편인데, 1981년도에 이들이 데뷔할 때부터 끊임없이 게이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긴 했지만 미온적으로 그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듯 했으나 “이거 듣고 자극 좀 받으란 말이야!” 라고 GO West에서 히트를 치고 앨범이 나온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1994년 게이 잡지인 <Attitude>지에서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하며 커밍아웃을 했다. 그래서 이 앨범은 Coming Out Album으로도 불린다. 그 뒤로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질문들도 꽤나 많이 받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구렁이 담넘어 가듯이 대답하곤 한다. 궁금해서 Neil Tennant의 사생활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지만 이 분께서는 사생활에 대한 언급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알려진 사실로는 부모를 포함한 가족들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듯 하고 부모가 워낙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섹슈얼리티에 관련한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영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동성애자 인권운동에도 앞장섰던 Derek Jarman(데릭 저먼) 과도 꽤나 친밀했다. Neil Tennant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엔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앞장서는 정도는 아니지만 AIDS 단체들에 아낌없는 지원을 한다. 역시, 돈은 이렇게 써야 멋지다.

 

연주를 맡고 있는 Chris Lowe는 인터뷰 할 때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무대에서 연주를 할 때도 언제나 무표정하게 있고 이런 무뚝뚝한 면모 뒤로는 클럽에서 밤새 노는 에너지가 숨겨져 있다. 뒷방 늙은이가 아니란 말씀! 언제나 게이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실제로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지만 “인간에게는 그저 -SEXUAL만 있을 뿐이다.” 라고 대답을 할 뿐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취향 같은 걸 언급하지 않는다. 게이 의혹설을 받고 있어도 공식적으로 “NO!"를 외치진 않았으니 상상은 여러분께 맡기겠다.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들의 앨범명은 너무나 친절하기만 한데 데뷔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앨범명은 한 단어로만 되어있다. 그리고 이들은 한때 라이브를 하지 않기도 했는데 근본적으로 Rock을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그 속에 담겨있는 마초적인 것들을 싫어해서 그랬다. 요즘엔 라이브 빵빵하게 잘 하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필자는 올해 8월에 열린 슈퍼소닉 락페스티벌에서 아주 잘 보고 왔다. 안 본 사람들은 후회할 거다. 크하하!

 

이들의 음악은 1980년대 한국에는 제대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군복이 권력을 잡을 때 반사회적인 댄스음악이라는 이유로 1986년에 나온 첫 데뷔 앨범인 ‘Please’에는 West End Girls를 포함하여 Oppoturnities, Suburbia 등등이 삭제된 채로 유통됐다. 이게 왜 반사회적이고 위화감을 준다는 명목 하에 금지곡이 됐는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그때야 뭐 워낙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냥 그 시절 권력자를 욕하자.


더군다나 1980년대에는 이른바 메탈 음악이 한국에서 유행했는데, 말 좀 잘 한다는 어느 DJ는 청취자가 신청한 ‘It’s a Sin’ 에 대해 “그런 음악을 남자가 듣냐.”라는 식의 발언도 했다. 그 DJ 조차도 어쩌면 PET SHOP BOYS가 거성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보컬과 키보드로 이루어진 2인조이기 때문에 무슨 공연이 되냐 부터 시작해서 꽤나 심심할 것 같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다. 이들도 무대가 텅텅 빈다는 걸 알고 일찍이 무대예술에 투자를 많이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완성된 모습은 화려한 군무와 뒤에 비치는 비디오 아트 등에 있는데 이 비디오 아트는 앞서 언급했던 Derek Jarman이 라이브 무대에 참여하고 직접 만들기도 했다.


Derek Jarman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가 만든 뮤직비디오를 보자. 이 노래는 PET SHOP BOYS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1987년도에 만들어진 앨범, ‘Actually’에 수록된 ‘It's a Sin'


 

이 외에도 다른 뮤직비디오들을 찾아보면 ‘Television’, ‘It Couldn't Happen Here’, ‘Live’ 싱글 모음인 ‘Videography’까지 이들의 비디오는 위트 있고 때로는 차가운 느낌과 함께 조롱 섞인 말, 보통의 비디오와는 다른 분위기와 전개방식, 연극적 구성이 특징적이고, 또 다루기 꺼리는 AIDS나 Homo Sexual, Prostitution 등을 주제로 한 풍자적인 것들이 많다. (부분 출처: Pet Shop Boys CD Coverlet)

 

대충 무대 스케일이라도 가늠하시라는 의미에서 영상 하나 띄운다. 이 영상은 2009년 Brit Awards 시상식 공연에서 Lady GaGa(레이디 가가), 밴드 The killers(더 킬러스)의 보컬인 Brandon Flowers(브랜든 플라워스)가 함께 했다. 그리고 이 날! PET SHOP BOYS는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 영상에서 나오는 곡 순서를 안 알려 주면 욕먹을까봐 리스트도 첨부하겠다. 무슨 앨범에 들어가 있는지는 그냥 알아서 찾아보길 바란다.

1: Suburbia

2: Love ETC.

3: Always on my mind

4: Go West

5: Domino Dancing

6: All over the world

7: West End Girls

 

‘이것은 퀴어다!’라고 명확히 드러나는 곡인 LOVE ETC.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왜 그런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뮤직비디오 보시고 직접 판단하시길.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사랑이 있다는데 여러분들은? (있으면 뭐해! 내 것이 아닌데! 라고 하진 말자.)




 

끝으로 최근에 나온 신보를 소개하고 약간의 찬양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다. 30년 동안 쉬지 않고 신스팝을 고수하며, 가장 고전적이며 가장 진보적인 사운드를 구가하는 건 이들이기에 가능하다. 단순히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계속 이어간다는 건 필자와 같은, 그리고 여러분과 같은 리스너들에게는 분명 행복한 일이다. 다소 커밍아웃하기 어려운 시기인 90년대 초반에 커밍아웃을 했음은 물론, 음악으로도 충분히 사회에 확실히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그들의 음악을 앞으로도 계속 기다려 본다.

 



2013년에 나온 이들의 앨범! ‘Electric’

전체적으로 달려달려~ 분위기다. 영국 음악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93년 ‘very' 앨범 이후로 가장 높은 성적을 받는 앨범이다. 예전에 발매된 음악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 그리고 하나 더, 정휘아가 꼽는 숨은 명곡!

2010년에 베스트 앨범인 Ultimate가 발매되었는데, 이미 그 전에 두 장의 베스트 앨범이 나왔다. 첫 싱글 ‘West End Girls’가 발매된 지 25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고 가장 알짜배기 곡들만을 모았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가장 마지막 트랙에 신곡을 삽입했는데 그 곡은 바로 ‘Together’.

 



아, 춤추고 싶다!

 

 

글쓴이: 정휘아

글 쓰면서 먹고 살고 싶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는 자유기고가.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예능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대표급 미친년으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