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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혹은 <파란색은 따뜻하다>

by 행성인 2014. 2. 26.

한빛(동인련 웹진팀)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2013) / 파란색은 따뜻하다(쥘리 마로저, 정혜용 역, 미메시스 출판)

 


*주의: 이 글에는 영화와 만화원작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토마와 데이트 하러 가는 날. 약속 장소인 공원으로 가는 길에, 아델은 예감한다.

'오늘은 무척 중요한 일이 일어날거야'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예감은 그녀를 덮친다. 밝은 햇살 속 눈부신 그녀의 미소와

흩날리는 파란색 머릿결. 단 한번 눈길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렇게 아델은 파란머리 여인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날 일기장에 아델은 이렇게 적는다.

'두 발이 한꺼번에 묶인 채 원 안에 갖혀버린 느낌'

그 뒤 아델의 머릿속은 온통 파란머리 여인으로 가득하다. 파란머리 여인은 한밤 중 꿈 속에 나타나 아델의 가슴과 음부를 애무한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촉촉한 여인의 손길. 아델은 흥분에 몸을 떨며 밤을 꼬박 새운다.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아델은 토마에게 이별을 고하고, 파란머리 여인은 그렇게 아델에게 '가장 사적인 비밀' 이 되어버린다.






 

 

파란머리 여인, 엠마. 그녀 역시 그날 마주친 '갈색머리 소녀'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엠마와 아델이 다른 점이 있다면 아델에겐 첫 번째 사랑이지만, 엠마에겐 최소한 세 번째, 어쩌면 몇 번째 사랑이라는 것. 엠마는 자신이 겪은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익숙하다. 우연히 레즈비언 바에 들어온 갈색머리 소녀를 발견하고 딸기우유를 사주며 먼저 말을 건다.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는지 물어봐도 될까? 어느 계열이니?”

갈색머리 소녀, 아델의 학교로 찾아가 먼저 말을 건다. 공원 나무 밑에서, 전화 통화로, 둘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간다.

행동하는 예술가인 엠마. 그녀의 성(性)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공적 자산이다. 연인 사빈과 함께 레즈비언 정체성을 예술로 표현하고, 전시하고, 시위한다. 아델과 만난 후 사빈과 헤어졌지만, 엠마의 행동은 변함없다.

'엠마에게 그녀의 성(性)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공적 자산이다.

사회적, 정치적 자산. 하지만 내게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것이다.

엠마는 나의 이런 생각을 비겁함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저 행복해지려고 애쓸 뿐이다.'(p131)

아델은 엠마를 사랑했지만, 엠마와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 간극속에서 아델은 번민하고, 외로워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남자와의 하룻밤 섹스로 채우려 한다. 엠마는 아델이 남자와 바람 핀 사실을 알게 되고, 동거하던 집에서 아델을 쫓아낸다. 둘의 사랑은 이별을 맞는다.






 

그 뒤, 둘은 어떻게 됐을까.

이 지점에서 원작과 영화는 갈린다.

원작에서, 엠마를 잊지 못한 클레망틴은 슬픔 속에서 몇 달을 지내게 되고, 그 사이 심장병을 앓던 클레망틴의 몸은 망가져 간다. 보다 못한 클레망틴의 친구가 엠마에게 연락해 클레망틴과 엠마는 다시 만난다. 바닷가에서 사랑을 나누려는 순간, 클레망틴은 심장발작으로 쓰러진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늦었다는 통보를 받는 클레망틴. 클레망틴은 몇 주 남지 않은 삶 속에서, 자신의 일기장을 엠마에게 남기고,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며 죽는다.

영화에서, 헤어진 후 아델은 유치원 교사로, 엠마는 예술가로 각각의 삶을 갈아가지만 아델은 엠마를 잊지 못한다. 2년 뒤, 아델은 엠마를 찾아간다. 엠마는 큰 전시회를 열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고, 새로운 여자와 귀여운 아기와 함께 가정을 꾸렸다. 아델은 평범한 유치원 교사 그대로다. 엠마의 전시회를 찾아간 아델. 아델은 엠마의 작품들을 보며 상념에 잠긴다.

전시회장을 나와 거리를 걸어가는 아델의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야한데 이렇게 야하지 않는 영화는 처음이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 두 명이 서로의 가슴과 음부에 얼굴을 파묻는다. 손가락과 입을 이용한 다양한 체위들. 참 야한 장면인데, 전혀 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이 덤덤한 느낌. 만약 벌거벗은 남자가 나왔다면? 다 벗을 필요도 없다. 탄력있는 목선과 이어져 내려오는 매끄럽고 단단한 쇄골만 봐도 난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빨개지고 있을 테니까.

이성애자인 내가 비록 엠마와 아델(클레망틴)의 사랑의 떨림을 같이 느낄 순 없었지만, 엠마와 아델(클레망틴)의 사랑을 이해할 순 있었다.

원작에서, 죽음 앞에 선 클레망틴은 엠마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내가 가지고 가는 건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들, 대부분 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야... 우리의 웃음, 우리의 사랑...네 시선에 깃든 파란색, 온몸으로 부딪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널 사랑했던 청소년기, 그 시절 밤마다 내게 찾아들던 네 머리카락의 파란색(...) 네가 내게 주었던 삶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을거야(...) 우리가 깨워 불러낸 사랑은 우리의 죽음을 넘어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간단다."(p154-155)

비록 클레망틴은 죽지만, 엠마와 클레망틴의 사랑은 죽음 이후에도 소멸하지 않을 것임을 원작은 암시하고 있다. 사랑은 죽음을 극복한다. 그리고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 원작은 엠마와 클레망틴의 사랑을, 영원하고 특별한 사랑으로 이해하게 해 주었다.

영화에서, 아델과 엠마의 사랑은 다소 평범하게 끝난다. 한 때 사랑했지만, 이젠 헤어져 제 갈길을 가는 흔한 첫사랑 처럼. 하지만 사랑은 추억의 한 페이지 속에 남아있다. 엠마가 자신의 전시회에 걸어 둔 그림은 아델과 사랑했던 그 때 그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사랑은 비록 이별로 끝이 났지만, 그림 속 한 장면, 흑백사진 속 한 장면처럼 추억 속에 남아있다. 영화는 엠마와 아델의 사랑을, 누구나 한번 쯤 겪었을 첫사랑처럼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해 주었다.

내가 결코 체험해 보지 못할 일을 이해하게 해 주는 것. 이것이 예술과 문학의 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애자인 내게 이번 영화와 원작 만화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