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사 (동성애자인권연대)
이미 공지했듯이 동성애자인권연대, 흔히 ‘동인련’ 이라고 줄여 부르는 우리 단체가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단체명을 바꾸기로 결정한 이유와 단체명 변경 계획은 지난 웹진에 실린 운영위원회 제안글(http://lgbtpride.tistory.com/822)에 잘 나와있다. 이제 단체명 변경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9월 정기회원모임 프로그램에서 회원들과 단체명 변경의 목적을 공유하고 새로운 단체명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고, 회원들의 의견과 이이디어를 모으기 위한 온라인 설문도 시작됐다.
단체명 변경은 우리 단체의 역사와 현황을 돌아보고 지향을 토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를 잘 표현하는 가장 우리다운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서 단체명 변경을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과정 속에서 단체의 오늘을 평가하고 과제를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9월 정기회원모임에서 회원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 동인련의 모습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9월 정기회원모임에는 3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해 단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단체의 부족함은 무엇인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새 이름에 대한 아이디어도 모았다.
나에게 동인련은?
해방공간 / 친정집 / 도전 / 배움 / 비빌자리 / 사랑방 / 다양성 / 학교 / 버팀목 / 이웃 / 평등 / 활동 / 에어백 / 마을 / 무지개 / 만남의 장소 / 게이일수 있는 곳 / 공동체 / 열정 / 안전한 공간 / 친구 / 활기찬 / 가족 / 희망 / 친구 / 운동과 삶 / 새로운 자극 /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 /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혐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곳 / 인권이란 것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던져준 곳 / 명절에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들 / 뒷풀이가 매우 재미있는 곳 / 내 현재 삶의 부채 의식
먼저 회원들 각자가 동인련을 어떤 공간으로 여기는지 얘기해보았다. 먼저 동인련은 회원 중심의 공동체 성격을 지녔다. 현재 동인련 회원 수는 500명이 넘는다. 후원여부와 상관없이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수도 한 해 수백 명에 이른다. 회원들은 단체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맺고, 동인련은 가족이자 이웃, 때로는 삶의 버팀목이 된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답게 동인련은 많은 회원들이 마음놓고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여긴다. ‘다양성'도 중요한 특징이다. 동인련은 나이, 성정체성, 장애, 질병 등 여러 요소에서 정말 다양한 회원들이 존재한다. 때때로 다양한 회원들 사이 경험이나 인식 차이 때문에 회원들 사이에 오해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동인련은 언제나 ‘다양한 회원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왔고 차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단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역시 동인련은 ‘인권 운동’ 단체다.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배우는 학교이자 운동과 삶을 연결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곳’인 것이다.
동인련은 이게 아쉬워!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 /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등에 관한 활동이 적다 / TG에 대해 너무 모른다 / 이성애자 등의 참여와 관심부족 / 거리에 더 많이 나가자 / 운동, 저항의 힘이 더 잘모이고 거리로 나갔으면 / 나오던 사람만 나오는 것 / 커뮤니티와 함께 / 친근함과 예의 사이의 아슬아슬 줄타기 / 너무 빨리 가려고 하지 않았으면 / 홈페이지 / 활동과 회원들의 일상이 잘 연결되고 있을까? / 프로그램 부족 / 행사가 많았으면 / 너무 많은 다양성.. 가끔 힘들때도/ 뒷풀이를 지금보다 즐겁게 / 좀더 많은 멤버쉽의 기회가 있기를 / 소풍 등 사무실 밖에서 만나거나 외부로 목소리 내는 것
이런 동인련이었으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단체 /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제공하는 워크샵 / 존중을 가지고 지금처럼 꾸준한 연대 / 편안하게 눈치 안보는 곳 / 청소년 성소수자 좀 더 쉽게 / 여러 정체성의 장이 되었으면 /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자기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 이성애자가 늘어나 인권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곳 / 일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으면 / 더 많은 회원들이 활동과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단체 / 회원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그 개선을 위한 소통의 장이 많았으면 / 인권단체이자 퀴어 커뮤니티 허브로 역할을 / 동인련의 생각, 연대 등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많아지길 / 수도권과 지방에서도 활동이 있었으면 / 더 많은 후원 / 일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으면 / 강렬하고 강하게 /
단체에 아쉬운 점과 바라는 점들을 살펴보면 활동의 내용과 방식부터 내부 문제까지 여러 토론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의 참여를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자신을 성소수자로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들은 활동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회원들이 활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일정은 많은데 행사나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리로 나가는 일이 왜 중요한가? 회원들이 원하는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잘 보장되고 있을까? …
이런 문제들이 단체명을 변경하는 것과 당장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활동 모습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단체명 변경을 결정한 중요한 이유인 ‘다양한 정체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기 좋은 조건은 이름만 바꾼다고 조성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름 변경은 우리가 다양한 정체성을 환영하며 함께 활동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알릴 수 있다. 처음 단체명 변경이 제안된 2년 전과 달리 현재 회원들은 단체명 변경의 필요성을 훨씬 잘 이해하고 있다.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회원들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활동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단체를 찾는 회원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는 것은 동인련의 가장 큰 장점이다. 생업 때문에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기꺼이 자기 역할을 하려는 회원들도 많다. 회원들은 각자의 경험과 위치에서 다양한 욕구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관건은 우리가 이런 물음들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일상적으로 토론하는 일일 것이다. 단체가 성장하고 회원이 늘어나면서 활동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나누는 일 자체가 매우 중요해졌다. 활동 경험이나 조건 등에서 회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편차를 극복하고 공동의 경험과 성과를 남기는 민주적인 운영 감각을 익혀야 할 것이다.
단체명에 꼭 들어가야 할 단어는?
공동체 / 네트워크 / 무지개 / 변태 / 성소수자 / 시민 / 연대/ 연합 / 인권/
자긍심 / 자유 / 자주 / 퀴어 / 평등 / 평화 / 해방 / 행동 / LGBT
단체의 앞으로 비전, 미래를 담은 이름, 해외 단체들이 부르기에 괜찮은 이름, 입에 착착 붙는 이름, 처음 온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올 수 있는 이름, 성소수자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단어, 의미가 있는 이름.
새로운 이름에 대한 회원들의 바람이다. 꼭 들어가야 한다고 꼽은 단어들에는 우리가 실현해야 할 가치들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새로운 이름에 우리의 지향과 가치를 잘 담아내고 그 이름에 걸맞는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모쪼록 새 이름을 찾는 과정이 동인련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풍성한 논의를 이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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