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어제는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이후 유엔에서 제정한 기념일이라고 한다. 사실 내게 인종차별이란 말은 쉽지만 친숙한 말은 아니다. 그간 신문에 인종차별이란 말을 자주 보긴 했지만 그건 주로 미국 등에서 일어나는 '인종 갈등'에 대한 상식이나, 해외에서 한민족의 위상을 드높이는 선수나 동포들이 어떤 식으로 차별을 받았는지에 대한 분개할 만한 사례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무슨 그런 게 있어? 인종차별이란 백인이 흑인이나 아시아인에게 하는 그런 거 아냐?
그러나 차별이란 가하는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주민 혐오'란 이름으로는 이미 여러 사례를 알고 있다. 유명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베트남 출신 엄마를 둔 댄서에게 날아든 악플과, 이자스민 의원 관련 기사에 빼곡히 쏟아지는 비난들에는 다른 인종과 그들의 나라를 비하하는 말들이 어김없이 끼어 있다. 둘러보면 이런 감정들은 일상적이기까지 하다. 최근 시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가 SNS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이때는 인종차별이란 단어가 전면에 나왔다. 하지만 언론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어찌 된 일인지 작년 말 '한국에 심각한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발언한 유엔 특별보고관 관련 보도 외엔 국내의 이야기를 잘 접하기 어렵다.
어제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다른 회원 분들과 함께 보신각에서 열린 '인종차별을 멈춰라' 행사에 다녀왔다. 다양한 발언들이 있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강제추방 반대나 고용허가제 철폐 등의 구호들이다. 일찍이 이주노동자 집회에서 들었던 내용들이지만 인종차별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차별이란 등급을 나눠 구분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경제수준이 보다 낮은 나라 사람들의 노동력을 소모품처럼 활용하도록 허용하는 고용허가제, 혹시라도 출국하지 않을까봐 의도적으로 정당한 권리 보장도 하지 않는 '출국 후 퇴직금 수령 제도' 같은 것들이 차별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어느 분의 발언처럼 한국인 또한 해외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했고 일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런 차별은 매우 부당한 것 아닐까?
또한 발언 중엔 단어에 깃든 차별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다함께 “STOP RACISM!”을 외치면서 곱씹어 보니 내 안에도 차별적인 생각과 말들이 많이 존재할 것 같았다. 마치 주변에서 보이지 않아 무슨 차별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을 받는 성소수자처럼, 인종차별의 사례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여성의 날 행사에서 본 여성 혐오란 단어에서도 든 생각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본 행사가 끝난 뒤 “인종차별을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데, 누군가 무리를 향해 “인종차별 안한다!”고 단언하듯 외치는 것을 듣고 떠오른 섣부른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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