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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에이즈, 동성애 그리고 <공동행동>의 기억들

by 행성인 2009. 3. 30.

 

돌이켜보면 <HIV/AIDS 감염인 인권 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 활동은 굉장히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소속 단체에서 주로 내부 업무에 치중하다가 오랜만에 연대사업을 맡게 된 탓도 있겠지만, 그동안 충분히 고민해보지 못한 이슈여서 처음에는 정말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자리만 멍하니 지킨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염 경로, 감염인들의 치료접근권․노동권․프라이버시 등 에이즈는 여타 감염성 질환과 달리 그 자체로서 사회․정치적인 쟁점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에이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수한 편견과 오해는 물론 동정과 시혜의 시선도 참으로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습니다. 언론은 에이즈 감염인들이 호텔 주방장이었다거나 누구누구와 성관계를 했다거나 하는 사실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며 감염인들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유포하기 일쑤였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지지 서명을 부탁하자 선뜻 동참해주던 시민들의 반응도 ‘불쌍하다’는 수준을 크게 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동행동>은 꾸준한 활동을 통해 에이즈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고 사회적 인식을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한 것 같습니다. 에이즈 관련 보건의료 워크샵, 에이즈예방법 국회 대응 활동, 에이즈감염인 인권 증진을 위한 문화행사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활동이 없었습니다. 특히 ‘에이즈의 날’ 기념식장에서 정부의 에이즈 정책을 비판하며 ‘감염인 인권 증진이 에이즈 예방이다’라는 구호를 외쳤을 때에는 참말 눈물이 나올 뻔도 했습니다.

<공동행동> 활동을 시작할 때에는 주로 ‘세계화와 의약품 접근권’이라는 측면에서 고민을 집중했지만, 에이즈라는 사회적 질병은 보건의료 영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동성애 이슈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동성애자는 HIV 감염에 취약한 집단이자 감염 후에도 각종 사회적 낙인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공동행동>에서 만나게 된 동성애자 인권 활동가들은 그 누구보다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동성애자 인권 활동가들 덕분에 좀 더 적극적으로 <공동행동>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답니다. 퀴어 페스티벌에서 몇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대학 과 후배가 커밍아웃을 하고 당당하게 활동하는 모습도 제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감염인들과 동성애자들이 거리에 나와서 행진을 시도한 것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한편 모 단체 기관지에 실린 기사가 큰 논란을 일으킨 기억도 납니다. 이 기사는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외래문화를 무분별하게 도입한 부정적 결과로 묘사했습니다. 사회운동 안에서도 동성애 이슈가 제대로 인식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계기였습니다.


<공동행동> 활동은 마무리되었지만, 앞으로 더욱 많은 일들이 남아 있겠지요. 얼마 전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을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가 ‘한시적 무상공급’카드를 들고 나왔다고 하는데, 그 이면에 숨은 검은 의도를 잘 헤아려야 하겠지요. 또 에이즈예방법과 같은 법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에이즈 감염인과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떳떳이 주장하고 쟁취할 수 있도록 사회운동들과 진보적 시민들이 함께 힘을 보태야 합니다. 한미FTA 투쟁과 반전집회에서도 호흡을 함께 했던 감염인, 동성애자 인권 활동가들의 저력을 믿겠습니다.


류주형 _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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