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미네르바의 구속 사태를 보면서 이를 반대하는 여론도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 학력과 경력을 속인데다 명백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경향신문에 이와 관련한 글을 기고한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는 ‘과연 허위와 욕설의 범위를 공동체가 다수결을 통해 규정하여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오래 전 천동설이 진실이었던 시절에는 지동설이 허위였고, 가까이는 다수가 황우석의 줄기세포연구를 지지하던 시절 줄기세포가 없다는 주장이 허위였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무언가 ‘특별하지 않은’ 표현이 수 없이 허용되면서도 ‘특별한’ 표현이 처벌된다면 이는 전체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 미네르바 사태와 위의 글을 접하면서 시간을 되돌려 지난 해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즈음에 있었던 ‘HIV/AIDS 감염인 인권 주간’을 떠올렸다. ‘의약품을 모든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라’는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에 감염인 인권 주간을 준비하면서 다른 부분에서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몇몇 학생들에게 함께 할 것을 권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학생들로부터 돌아온 질문은 감염인에게 어떤 인권침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고, 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말았었다. 그 후 감염인의 치료접근권, 노동권 토론회를 들어보고 집회와 기자회견을 같이 하면서 그때서야 나도 잘 몰랐던 감염인의 인권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공감할 수가 있었다.
HIV/AIDS 감염인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 특별하고 다른 존재로 인식되어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시달려왔다.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무언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그랬겠지’하는 은근한 시선을 받는 것은 물론, 당연한 죄값을 받아야 하는 죄인으로, 이 사회에서 추방할 대상으로까지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미네르바의 경우처럼 무언가 다르고 특별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 광기어린 집단적 폭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동성애자가 에이즈를 확산시킨다는 주장 또한 천동설이나 황우석의 줄기세포처럼 지금은 허위 사실이 되었다. 처음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했을 때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기 보다는 확산의 책임을 뒤집어씌울 적당한 대상을 물색했던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그 과정에서 표적이 된 희생양이 바로 동성애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였다고 한다. 현재 장애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의 해결문제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동성애자, 혹은 감염인에 대한 차별문제가 아직까지도 사회의 냉혹한 대접을 받는 현실은 다른 것을 허용하지 못하고 사실이 아닌 것도 집단적으로 진실인 것처럼 몰아가는 집단적 광풍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나중에는 새로운 근거와 함께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차별받지 않아야 할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네르바에게 권력에 의해 일시적으로 규정된 ‘허위’를 이유로 처벌하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소수자에 대한 집단적 광풍에 의한 낙인과 차별 또한 부당하다.
우리는 어디엔가 다수 속에 있어야 맘이 편하기 때문에 늘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꼭 감염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기준을 정하느냐에 따라 늘 소수가 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늘 잠재된 다수의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네르바라는 좀 유별난 사람 하나 처벌하는 것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벌써부터 이미 올렸던 자신의 글을 지우고 자신을 검열하는 네티즌들이 생겨나는 2009년도판 분서갱유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HIV/AIDS 감염인, 동성애자 같은 소수자에 대한 인권 침해에 대해 지금 침묵한다면 빠른 시간 안에 우리 모두에 대한 인권 침해로 더 크게 되돌아올 것이다. ‘난 그런 사람 아니니까 잘 모르겠어.’라고 무시하기에는 좀 불편한 진실이지 않은가? 배려나 동정을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원래 가지고 있는 보통 사람의 권리나마 인정해 달라는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감염인 인권주간 마지막 날 함께 준비했던 동성애자 분들과 낮술부터 마시면서 신나게 놀았다. 그 중엔 내가 맘에 든다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당사자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었는데 지금의 이 글이 적절한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나보다 술만 더 센 그런 흔한 친구들일 뿐이었다.
이상호 _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상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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