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에이즈 운동을 하며 배워가는 것

Posted at 2008.12.08 14:02// Posted in HIV/AIDS

 

에이즈에 관심가진 게이

가족. 이제는 눈물부터 난다. 이십대에는 무관심해버리고 말면 그뿐인 그들이었는데. 내가 저들에게 “나 게이야”라는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말해야하나?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다. 6년 전 여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학교친구들과 집식구들에게 아웃팅 당하던 악몽. 작은 누나도 그 남자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나 보다. 가족여행 해변가에서 작은 누나는 “너 이반이냐? 너 결혼은 할 거냐? 엄마아빠 불쌍하지도 않냐?”라고 물어왔다. 오랜만에 아프다는 말을 되뇌이던 기억이 난다. 입안에 핏물이 아직도 쓰다. 그 여자. 내가 HIV감염인들 “만나고 다니는 거”알면 무슨 말을 할까. 에이즈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그 자체로 위험하다.

 

더러운 호모새끼들의 병

나 같은 호모가 에이즈에 관심을 가질 때 사람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감염인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오죽할까. 그런데 어쩌면 감염인에 대한 더럽다는 혹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낙인은 오히려 게이 사회에서 더욱 철저한 것처럼 보인다. 성적인 문란함. 동성애자들을 공격하는 무기인 그 하찮은 착각이 다시 감염인들을 향해 겨누어 지고 있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HIV에 대한 성적인 은유들이 허구라는 사실은 둘째치고라도, 나는 애매한 단어이긴 하지만 “성적 문란함”, 그 변태스러운 느낌이 좋다. 아무래도 난 참 밝게 자란 호모인것 같다. 그런 내게서 “문란한 섹스” 뺏어가려는 그 요상한 눈빛 거두어줬으면 좋겠다. 에이즈는 감염성 질환일 뿐이며, 섹스는 어떤 형태이든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므로.

더구나 게이라서 에이즈에 더 잘 걸리는 것이 아니다. HIV가 게이들만 골라서 감염시키지도 않으며 애널 섹스하는 사람들만 감염시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마다 게이바에 콘돔 나눠주시는 분들이 그리 곱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 이성애자들 자주 가는 술집에 콘돔 나눠줄 생각은 해봤을까?



사람이란 동물은 정말 타인의 절망을 먹고 사는가.

동정과 봉사는 더러운 짓.

나는 왜 이곳 KANOS에 있을까. 10여년 동안의 긴 대학 시절을 마치면서 스무살의 느꼈던 사람에 대한 애정이 어느새 모호해져 버렸다. 더구나 지난 6년의 의대 시절, 그 숱한 사람들과의 차가운 기억들은 나의 이십대를 더 이상 추억하고 싶지 않은 정서로 몰고 갔던 것 같다. 공허함을 매워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호모들이든 헤테로이든.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함으로부터 밖으로 나서야만 했다.

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이 불안함이 한낱 무료한 일상으로부터 오는 투정에 지나지 않음을 증거해 주며 사는 사람들, 저 밑바닥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그래도 너희보다 나은 처지이고 너희는 나보다 아주 많이 힘겨우니까, 내가 너희들 보고 좀 위안삼고 나도 눈물겨운 동정심 주게 되면 내 삶이 조금 덜 공허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생각들을 글로 적어 보니 지난 10년동안 관계맺음의 방식조차 잊어가고 있었다는 생각에 다시, 아프다.

KANOS 이곳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제는 감염인들이 저 극단에서 드라마틱하게 살고 있지도 않으며 동정과 봉사의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삶을 엿보면서 나의 삶처럼, “산다는 것이” 늘 녹녹하지 않고 때로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모두 짖이겨 버리고 싶다. HIV진단 이후, 맺어왔던 인간관계의 파괴, 노동할 수 있는 권리의 침해, 심지어 의료 접근권에 대한 제한. 그래서 HIV문제는 어두울 수밖에 없나보다. 이 망할 놈의 세상의 빛깔처럼.

아직도 풀리지 않는 고민은 철거민 아닌 사람의 철거민 운동, 이주 노동자가 아닌 사람의 그들에 대한 관심. 오지랖이 넓은 걸까. 나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은 이 세상, 그 무게감 다 잊고서 살고 싶을 때가 많다. 일도 하기 싫고 “돈많은 남자” 만나 쉽게 살고 싶을 때도 있다.

 

감염인과 비감염인. 그 뜨거운 포옹은 뭘 어떻게 하는 거지?



디스터비아 _ 한국 HIV/AIDS 감염인 연대 KANOS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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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5 00:13 신고 [Edit/Del] [Reply]
    디스터비아... 누구일까 한참생각했는데, 제가아는 그분이 맞는것 같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타인의 내면을 너무 깊숙이 들여다본 느낌이랄까요.


    마지막에 풀어놓으신 푸념과, 살짝 신경질적으로 던져내버리신 질문, 값진 고민의 불씨로


    받아안기는 했는데, 역시나 저 또한 쉽게 답하는 재주가 없기에, 다음에 생각나면 더 얘기해봐요.
  2. 나라
    2008.12.17 00:39 신고 [Edit/Del] [Reply]
    아주 솔직한 글이네요. 그래서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기도 하구요.
    잘 읽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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