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지난 4월 24일, 25일, 양일간 일본에서 열리는 가장 큰 성 소수자 자긍심행진인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2015 (Tokyo Rainbow Pride 2015, 이하 TRP 2015)가 열렸습니다. 퀴어문화축제기획단미디어팀 소속이기도 한 저는일본에서의 자긍심 행진이 어떻게 열리는 지 견학하기 위해, 동시에 한국의 퀴어문화축제를 알리기 위해, (그리고 벅차게 놀러) 다녀왔습니다. 
 

 

 

 


일본에서 열리는 자긍심 행진을 참여한 것은 두 번째입니다. (작년 10월, 필자가 다녀온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 참여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지난 해에 참여했던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가도심 속의 아기자기한 공원인 오기마치 공원에서 열렸고 참여한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에 비해 TRP 2015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연상시킬 정도로 넓은 요요기 공원에서 열렸습니다. 큰 부지만큼 부스도 많고 사람은 더더욱 많아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습니다. 

 

 


   
도쿄가 일본의 수도여서일까요? 일본 전국 각지에서 살거나 활동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로 무지개 굿즈를 만들어 내는 독특한 디자이너 히라카와미카(平川美香) 씨의GomiKondon Store 부스도 있었고,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부스도 있었습니다. 개인 화장품 샵을 운영하는 분들의 허브제품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요, 마사지 샵을 운영하는 분들은 즉석으로 마사지를 싸게 받을 수 있는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게이 분이 해주신 발마사지는 너무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랐다고 합니다.)공원 한쪽에서는 게이거리의 대명사 신주쿠니쵸메 가게들의 협찬을 받아 다양한 먹거리 부스를 운영하여 점심/저녁 시간에 찾는 사람들로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어요. 뭔가 일본의 마쯔리와 자긍심 행사 간의 기묘한 동거…라고나 할까요?성소수자를 포함한 실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는 다시 보는 반가운 얼굴도 있었습니다.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에서퍼포먼스를 했던 일부 팀들과각종 이벤트로 사람들을 반겨준 부스를 이번 TRP 2015에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나고야 출신의 레즈비언으로 이루어 진 NSM=과20대부터 40대까지로 이루어진 게이 아이돌 그룹 무지개반파이츠(虹組ファイツ)는 이번에도 변함없는 귀여운 무대를 보여주었고요. 교토의 전통결혼식 주관 호텔 그란비아교토(ホテルグランヴィア京都)에서는 각종 무지개 먹거리를 팔던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에는 시부야동성파트너십 조례와 관련한 결혼식에 대한 설문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무지개색 가족(にじいろかぞく)에서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어린이와 함께하는 휴게부스를 운영했는데요. 작년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에서 걸어놓은 깃발에 제가 적은 글이 다시 있었어요! 그 사실을 말했더니 더욱 반겨주었습니다.

   
기업의 참여 또한 제가 봐 왔던 어느 행사보다 더 많았습니다. 구글은 물론이고 GAP, IBM, 필립스, DHC, MINI(자동차), Lifeguard(에너지드링크) 등의 여러 분야의 대기업들이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지지하거나, 혹은 더 나은 조건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일본에 주재하는 대사관들도 각 나라의 맛거리 체험이나 유학/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혹은 자국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행사 관광 홍보를 하는 등 LGBT와 관련한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퍼레이드 다음가는 TRP의 백미는 다양한 무대의 퍼포먼스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서지방에서 본 전통 음악과 율동을 선보이는 아라누-지(新虹-あらぬーじ)의 공연을 포함해서, 신주쿠니쵸메 쇼의 대명사 드랙퀸들의 퍼포먼스, LGBT를 주제로 한 디제잉과 아이돌유닛, HIV/AIDS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토크쇼, 프로 아티스트로 데뷔하여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FTM 3인조 그룹의SecretGuys, 모노마네(ものまね; 성대모사/모창을 지칭하는 일본어입니다)의 스페셜리스트, 시미즈미치코(清水ミチコ)씨의 다양한 레퍼토리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쇼 프로그램들로 가득해서 공연장을 떠나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TRP 2015에서는 토요일에는 레즈비언 커플의 공개 결혼식 또한 거행되었습니다. 퍼레이드가 열리기 전에, 시부야 구에서 동성 커플을 결혼한 것과 같은 관계로 인정하는 파트너십 증명서 발행과 관련한 조례가 가결된 것은 알고 있으시죠? 이와 관련해서 파트너에게 즉흥적으로 제안한 공개 결혼식이 실제로 이루어지다니! 이 커플 정말 대단합니다! 행사장에서는 이 두 사람을 축하하고 환호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렌 씨와 야에 씨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두분 정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셔야해요! :)

   
[오른쪽 아래; 선생님! 당신의 반에도 동성애자는 있다구요! / 시부야구 고마워요! 동성애자라도 결혼하고 싶어요!]


퍼레이드가 있었던 일요일은 토요일보다 3배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요요기 공원에 왔습니다. 10시부터 12시 반까지 각 부스에서 퍼레이드 신청을 받아 진행하는데, 특정 부스는 30분만에 마감이 되기도 했고, 전체 행렬 접수는 12시도 안되어 종료가 될 만큼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어요. 저는 퀴어문화축제 기획단과 함께 사전에 TRP 2015 스탭의 협조를 받아 맨 첫번째 행렬에 서게 되었습니다.


 
퍼레이드 행렬은 우선 요요기 공원 시부야 출구에서부터 출발하여 시부야 일대를 돌고 하라주쿠와 메이지 신궁을낀 도로를 지나 다시 요요기 공원으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좁은 도로를 포함해서였는지 한꺼번에 모든 행렬이 통과하는 대신 11개의 팀을 나누어 따로 돌았다는 것이 한국과는 달랐습니다. 그렇지만 퍼레이드 도중에 혐오세력의 방해는 없었기에 즐겁고 쾌적한 퍼레이드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관광지를 무지개빛으로 물들일 때의 짜릿함, 그리고 약 2시간 동안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뿌듯함은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아마도 잘 모르실겁니다? (웃음)

 

 

   

TRP 2015가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의 사회 각층에 있던 여러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를 확인할 수 있지 않아서였을까 합니다. <오체불만족>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오토타케히로타다(乙武洋匡) 씨 또한 이번 퍼레이드에 참여해 함께 행진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보고나서 혹시나 했는데 나중에 트위터를 보니 본인이 맞더라고요!) 사회적 약자들끼리의 연대가 일본에서도 또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의 섬돌향린교회, 성공회의 길찾는 교회처럼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중심인 보수적 종교 집단에 맞서 성소수자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근데 여기 목사님, 여의도의 XXX교회를 알고 있으시던데요…?  

 

   
레즈비언 결혼식 때 축사를 해주었던 전 시부야 구청장, 구와하라토시다케(桑原敏武)씨의 발언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기존의 법들은 LGBT의 존재를 모른 채 제정된 법이다. 법 앞의 평등을 이야기할 때 법이 바뀌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정치인/행정가, 혹은 연예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제가 결혼하는 것 마냥 마음이 울렸습니다.
  

 


굳이 유명하거나 사회적인 지도층이 아니어도,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 또한 TRP 2015를 빛내주었던 것 같습니다. 기업 부스 측에서의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참여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일반 참여자 중에서도 공원에 나들이를 오면서 함께 행사의 이모저모를 보고 가는 가족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익혀나가는 계기들이 나중에 더 큰 지지와 연대로 자라날 것이라 기대해도 괜찮은 걸까요? 이처럼 다른 양상의 혐오와 직면해 있는 두 나라이지만, 평등을 주장하고 권리증진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일본이 조금은 부러웠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의 참여 또한 매우 열성적이었다는 것도 TRP 2015에서 굉장히 인상적으로 느꼈던 부분이었습니다. 총 222명의 사람들이 모금행사를 돕거나, 정리를 하거나, 주변 안내를 하는 등,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TRP 2015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성별정체성/성적지향이란 요소는 이성애중심사회에서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만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이 아주, 정말 아주 조금은 무슨 말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성소수자당사자, 혹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한다는점에서 우리는 하나로 묶일 수 있고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각각 다르고 잘 할 수 있는 것 또한 가지가지입니다.TRP2015에서 자신다움을 자랑스러워 하며 어떤 사람은 노래를 불렀고, 어떤 사람은 코스프레를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게이여서 솜씨가 좋은 걸 수도 있고, 트랜스젠더여서 춤을 잘 췄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역설적으로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필요한 건, 자신이 무엇이든, 어떤 모습으로, 어떠한 삶을 살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살아내는 자세 아닐까요? 그리고 누구나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다름이 긍정이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각자의 위치에서할 수 있는 만큼,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깨달은 무언가를 글로 쉽게 풀어내기는 참 어렵네요.구리고 구린 제 글솜씨를 탓하세요.)

 
 
[오른쪽 위; 무리해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아도 괜찮아! // 오른쪽 아래; 당신이누구라도, 내가무엇이라도, "그런거아무래도좋잖아~!"란말이긍정적으로쓰일수있는세상이되길~]

 

없는 돈 쥐어짜며 TRP2015에 오길 참 잘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얻어가는 여행이었습니다.다음 일본여행도 퍼레이드를 끼고 계획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서지방, 도쿄 쪽을 가보았으니 다음에는 나고야 쪽을 가볼까 하네요, 나고야는 11월 전후로 열린다고 하니 아마 그때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여행 후원 적극 환영!!!)

   

Ps. TRP 2015 기획단 분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의 자긍심 행진,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합니다. 이번에는 무려 퍼레이드 행렬과 함께 할 차량으로 찾아온다고 하니 축제에 참여하시는 여러분들도 많은 기대와 환영, 부탁드립니다! TRP 여러분! 정말 즐거웠습니다! 6월 13일, 퀴어문화축제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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