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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혐오에 저항하는 작은 몸짓 - 2015 아이다호 공동행동을 준비하며

by 행성인 2015. 5. 11.

마루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회원)



2015 아이다호 공동행동 준비 소감에 앞서 작년 아이다호 때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저는 작년 4월 긴 망설임 끝에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처음 발걸음을 디뎠습니다. 하지만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은 터라 아이다호는 미국의 아이다호 주와 관련된 날인가? 아니면 무슨 호수와 관련된 축제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중요한 약속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저는 작년 아이다호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시내 한복판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얼굴을 드러내고 참여할 만큼의 자신감이나 자긍심이 부족했습니다.


아이다호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Biphobia and Transphobia: IDAHOT)입니다. 1990년 5월 17일 세계 보건 기구(WHO)가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하여 매년 5월 17일을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로 지정한 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2014 아이다호 기념행사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렸고 전시와 캠페인, 플래시몹 등을 통해서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이들이 모여 무지개 빛 만큼이나 다채로운 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2014 아이다호를 지나보냈지만 그 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고 대구퀴어문화축제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성소수자 운동과 함께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2015년 아이다호가 다가옵니다. 올해 초 동성애자 인권연대의 이름이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행성인)로 바뀌고 활동회원모임이 생기며 그 속에서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의 힘을 모아내는 역할을 맡게 된 저는 2015 아이다호에 작은 힘이라도 반드시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년 12월 성소수자 인권보호를 명시한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제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서울시를 규탄하며 펼친 ‘무지개 농성’을 계기로, 성소수자인권활동가 및 커뮤니티는 혐오에 맞선 전사회적 캠페인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에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무지개 농성에 쏟아진 지지와 연대, 후원금을 기반으로 전국적 캠페인 <2015년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을 조직,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2015 아이다호 공동행동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행동하는 날’을 상(像)으로 정하고 ‘혐오를 멈춰라! 광장을 열어라!’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2015 아이다호를 맞아 ‘무지개 농성’과 뜻을 같이 하는 전국에 있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무지개 버스가 기획 초기부터 논의되었습니다. 큰 틀에서 밑그림을 그리던 공동행동 회의는 서울역 광장으로 문화제 장소가 정해진 후 더욱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고 조직, 홍보, 문화제 기획을 담당하는 팀으로 역할을 나누었습니다. 함께 버스를 타면서 아이다호의 활동을 알리고 무지개 한마당을 통해 지역 활동의 내용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자는 것으로 무지개 버스의 의미는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지난 시청 농성에서 아낌없는 지지로 연대해주신 노동, 여성, 빈곤, 평화, 이주, 장애 시민단체와 개인에게도 아이다호 공동행동 참여를 제안하여 50여 곳 이상의 단체와 100여 명 이상의 개인이 참여 의사를 밝혀주셨습니다.


저는 문화제 기획팀의 일원이 되어 아이다호 행사 준비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녁에 있는 메인행사에 앞서 무지개버스 참가자들의 참가 동기와 삶의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는 장이 될 ‘무지개 버스 한마당’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질 문화제에서는 여러 현안을 공유하며 성소수자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성소수자들의 죽음을 함께 추모하며, 광장을 지키고 싸워온 사람들과의 연대와 든든한 지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만들자는 기조로 매무새를 다듬어 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이러한 규모의 행사 기획에 함께해 본 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분들과 함께 준비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을 던집니다. “이 행사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크든 작든 내가 어떠한 역할을 맡고서 그것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거듭되는 회의 속에서 전체 계획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많은 분들과 함께 대화하며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 속에서 제 역할의 윤곽을 잡아나가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작고 사소한 성공의 경험을 누적시킴으로써 얻는 자신감으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15 아이다호 공동행동 캠페인은 오로지 성소수자만의 행사도, 아이다호 공동행동 기획단만의 행사도 아닌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게 될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2015년 5월 16일 오후 2시 서울역 광장. 그곳에서 혐오를 멈추게 하는 울림에 목소리를 보태고, 광장을 열어젖히는 손이 되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