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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마롱 쌀롱

알렉스, 소녀에서 소녀로 : 분열과 분리 그리고 그 다음

by 행성인 2015. 9. 6.

마롱(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분열 : 알렉스와 다른 알렉스
 
알렉스는 화장품을 산다. 새 옷을 산다. 새 학교에 등록을 한다. 다른 알렉스와 함께. 알렉스는 다른 알렉스와 항상 함께 다닌다. 다른 알렉스는 알렉스가 남자로 키워졌던 시절의 자아로, 남성 호르몬제가 초래한 지나친 공격성과 성욕 등 많은 문제들을 대변한다. 이 문제들은 알렉스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트랜스젠더 주인공의 자아 분열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서사적 장치다. 이 서사적 장치는 주인공의 성장과 혼란을 극적으로 보여주지만, 자아들 사이의 괴리는 주인공과 그 주변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많은 소설의 서사는 분열된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거나 적어도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쪽 자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나간다. 하지만 이 소설의 다른 알렉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알렉스가 다른 알렉스를 대하는 모습은 다른 알렉스를 자신의 한 부분이며 친구로 인정한다는 느낌을 준다.
 
다른 알렉스는 알렉스의 사회생활에 가끔 악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다른 알렉스는 알렉스 내부의 적이나 오점이 아니다. 다른 알렉스는 알렉스에게 강요된 소년 시절이며, 강제 투약된 테스토스테론이 훼손한 소녀 알렉스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다른 알렉스의 부분은 알렉스가 모델 활동을 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알렉스가 모델 일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인 알렉스의 모습을 보며 영감을 받았다. 부모에게 훼손당한 다른 알렉스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
 
알렉스는 다른 알렉스, 즉 소년 알렉스로 사는 것은 거부했지만 다른 알렉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알렉스는 다른 알렉스를 자신의 과거이며 내면의 친구로 인정한다. 이 소설의 특별한 서사 덕분에 분열되고 훼손된 자아로 취급되며 사라질 수도 있었을 다른 알렉스는 알렉스의 친구이며 모델로서의 장점이 될 수 있었다.
 
  
분리 : 가정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소설은 알렉스의 이야기와 알렉스의 어머니, 헤더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교차되는 형식을 취한다. 헤더가 쓴 글들은 역설적으로 헤더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인물이며 알렉스를 마음대로 휘두르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알렉스의 아버지는 알렉스와의 모든 대화에서 알렉스를 상처 입히고 헤더는 알렉스에게 몰래 남성 호르몬제를 먹이거나 피부에 발라주려 한다. 알렉스의 부모는 알렉스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동시에 알렉스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았다.
 
알렉스와 알렉스의 부모는 소통할 수 없다. 헤더는 알렉스를 때린다. 알렉스에게 소리를 지르고 원하지 않는 음식을 먹게 한다. 알렉스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분노를 폭발시킨다. 알렉스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알렉스를 남자로 만들기 위해 약물을 투여한다. 알렉스의 아버지는 알렉스에게 헤더를 이해하고 배려할 것을 강요한다. 말로 상처를 준다.
 
뿐만 아니라 알렉스의 부모는 알렉스에게 남성 호르몬을 주입하고 먹이며 알렉스를 남성으로 만들었다. 간성으로 태어난 알렉스가 어떤 성별을 갖게 될지는 부모가 결정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여자가 되고 싶은지 혹은 남자, 아니면 다른 성별을 갖고 싶은지는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알렉스의 부모는 알렉스를 자신들이 원하는 성별로 만들고 싶어 한다.
 
알렉스의 부모는 알렉스를 훼손해 다른 알렉스를 만들었다. 헤더가 알렉스를 껴안으려 할 때 헤더가 껴안는 것은 다른 알렉스다. 헤더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알렉스 역시 다른 알렉스다. 알렉스의 부모는 여성인 알렉스, 있는 그대로의 알렉스를 원하지 않는다.
 
알렉스는 가정폭력을 당했다. 가정폭력과 같은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를 치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가해자로부터의 분리다. 가해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알렉스는 행운아다. 이 소설은 알렉스의 성 정체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동시에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는 청소년 또한 보여주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다룬 소설은 많았지만 주인공의 부모의 친권을 박탈하고 집을 나가는 결말은 흔하지 않았다. 알렉스가 부모에게서 벗어나서 기뻤다. 알렉스는 가정폭력의 가해자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했고, 글쎄. 점점 괜찮아질 것이다.
 
 
혐오 범죄 그 후
 
알렉스에게 일어난 ‘그 일’은 알렉스를 전 학교에 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 일’을 계기로 알렉스는 강요당한 남자 노릇은 그만두고 여자로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자 알렉스의 부모는 온갖 방식으로 알렉스에게 상처 주기 시작한다. 크로켓 변호사의 도움으로 알렉스는 자신이 ‘원래’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친권을 박탈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헤더가 학교에 와서 난동을 부린다. 알렉스는 그 일로 친구를 잃고 교사들 앞에서 '국수’(알렉스는 자신의 성기를 국수라고 부른다)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이 외에도 어려움은 많다. 알렉스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동차 사고 현장을 보듯이’ 자신을 본다고 말했다. 낙관할 수 없는 삶 앞에서 알렉스는 다른 알렉스와 손을 잡고 걷는다.
 
그래도 상황이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다. 스타일리스트 리엔은 ‘국수’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녀는 알렉스에게 계속해서 일을 가져다줘 알렉스가 일할 수 있게 해준다. 알렉스가 첫눈에 반한 친구인 아미나도 상관하지 않는다. 알렉스를 레즈비언이라고 아웃팅한 타이도 그럭저럭 알렉스 곁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항상 알렉스를 실망시켰다. 알렉스는 그 사실을 안다. 알렉스는 실망과 혐오와 폭력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내가 웃은 것은 언제나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스는 폭력과 위협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막연한 희망이나 긍정 없이, 그저 삶과 위협이 함께 계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알렉스는 광고판을 올려다보고 폭력과 마주하면서도 웃고 뛰며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