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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성소수자

“동무, 인권불알 키셨습네까?” - 세 번째 모임 '지구인은 변태 중'

by 행성인 2015. 10. 27.

기록: 에버(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청소년인권팀)

후기: 씨엘(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청소년인권팀)

참여자: 착한쌀, 에버, 씨엘, 오소리, 말발

 

 

 

 


탈학교 청소년은 일상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주제인데요. 그러한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편견 혹은 고정관념이 많을 거란 생각에 ‘지구인은 변태중’이라는 제목으로 마련한 이번 회에는 참여자가 많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만, 예상보다 적은 수의 참여자가 오셔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두 탈학교 청소년 게스트와 Q&A를 진행하다보니 오히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좀 더 가깝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씨엘: 저는 중학교를 대안학교로 갔어요. 거기서 10월까지 있다가 자퇴했고요. 지금까지 탈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데 지금 현재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습니다. 영화랑 책을 자주 봅니다.

말발: 대안학교에서 어떤걸 배웠어요?

씨엘: 생명 존중과 통일 등등 (웃음)
 
착한쌀: 저는 중학교 1학년때 자퇴를 했어요. 그 뒤로는 학교 밖 청소년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지냈고 지금은 알바를 하면서 지내고 있죠.
말발: 착한쌀은 중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절차가 어떻게 되나요?
착한쌀: 저 같은 경우는 부모님과 상의를 하고 교장선생님과 담소를 나눈 후 바로 자퇴했어요. 학교 최초의 1학년 자퇴생이었죠.
 
에버: 여기 나와서 이야기 좀 해달라고 했을 때 어땠나요?


착한쌀, 씨엘: 그냥 뭐... (키득)
 
에버: 탈학교의 계기가 따로 있나요?

 

착한쌀: 가정 문제가 큰 스트레스였어요. 그 상황 속에서 학교 생활이 매우 힘들었죠. 평소 친구 관계는 나쁘지 않았지만 나를 공격했던 둘 때문에 홧김에.
말발: 가정문제라면?
착한쌀: 이혼 문제, 돈 문제죠. 허허
에버: 착한쌀을 괴롭히던 친구 두 명과는 어떻게 관계가 나빠지게 된 거예요? 혹시 이른바 ‘일진’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나요?
착한쌀: 일진 같은 것도 아닌 애매한 것들이 저를 욕하기 시작하고 그것에 동조하는 반 분위기가 시작됐어요.
 
씨엘: 저는 대안학교에 들어간 것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 매우 극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주입시켰어요. 그리고 교육방식이 정말 완벽한 주입식 교육이어서 매우 불편했어요. 그래서 대안학교를 기대하고 선택했지만 별다를 것이 없었죠.
말발: 극우적 성향이라고 했는데, 예를 들면?
씨엘: 예를 들자면... 개신교가 최고다! 삼성이 최고다! 학교가 기독교를 좋아했어요.
에버: 혹시 기독교 재단이였나요?
씨엘: 아뇨. 그건 아닌데 학교 설립자가 목사였거든요.
에버: 그럼 대안학교는 왜 자퇴하게 되었나요?
씨엘: 대안학교 교칙이 매우 보수적이었어요. 여성은 맨살이 들어나는 옷을 금지하고, 염색이나 파마 금지, 연애 금지, 전자기기 금지, 심지어 웃긴 건 친환경 제품이 아닌 것을 사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소지품 검사를 하고 심지어 침대 시트까지 뒤졌어요. 또 용돈을 기숙사 사감이 직접 관리했고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사용 용도가 무엇인지 밝혀야 했죠.
말발: 그럼 사탕을 먹고 싶으면 사탕을 사먹겠다고 말해야 돈을 줬다는 거예요?
씨엘: 그렇죠.
말발: 헐! 그러면 그런 규칙은 학생들이 정한건가요?
에버: 몇 가지는 학교측에서 일방적으로 정했지만 대부분 학생회에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들었어요.
오소리: 그런 학교는 저도 다니기 싫을 것 같아요. 저 같아도 자퇴를 했을 텐데, 다른 학교로 다시 진학할 생각은 안했나요?
씨엘: 당시 대안학교를 다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심지어 경제도 안 좋아서... 이명박!
 
에버: 자퇴를 하고 두 달 여간 동안의 생활이나 심정은 어땠나요.

 

착한쌀: 엄청난 해방감이 들었어요. 프리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지냈죠.
씨엘: 저는 반대로 허망한 기분이 들었어요. 순간적으로 학교 사람들이 보고 싶기까지 했었죠. 평소에 나를 가두어 익숙했던 규제들이 한 번에 없어져서 불안하기까지 했어요.
오소리: 그러면 착한쌀 님은 자퇴를 후회했던 적은 없어요?
착한쌀: 자퇴를 하고 싶어서 했지만 1년 정도 지나니 계획 없는 생활에 회의감이 들어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버: 당시에 자퇴를 했을 때 주변인들의 시선은 어땠나요.


착한쌀: ‘인생 포기자’로 취급 당했어요. 제일 슬펐던 건 가족들이 내 상황을 다 알면서도 내가 믿었던 사람들 조차 저한테 “뭐하고 살거냐.”며 인생을 포기한 사람 취급해서 슬펐어요.
씨엘: '학교 생활 부적응자', '부모가 참 진보적인가 보다' 라는 시선을 받았어요.
오소리: 집에서 말리지는 않았나요?
씨엘: 처음에는 말렸지만...
착한쌀: 저는 엄마가 특히 말렸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고) 학원만 다니며 공부를 하다가 검정고시를 보려 했는데 중1 나이가 되어야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으로 입학하려고 시험을 봐서 들어갔어요.
말발: 그럼 12살까지는 학교를 다니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나요?
착한쌀: 전혀! 논술학원 같은 곳을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글쓰는 솜씨가 좀... 훗
말발: 자화자찬. (키득)
착한쌀: 학교 다니는 애들 부럽지 않게 바빴어요.
에버: 그럼 씨엘은 대안학교를 자퇴했을 때 주변인들은 어떻게 생각했나요?
씨엘: 수능을 준비하려나 보다,  공부하려나 보다 했어요.
 
에버: 탈학교 이후의 생활이 어땠어요?

 

착한쌀: 14살부터 15살까지 그냥 놀았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게임만 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고 인터넷에서 자퇴를 수없이 검색했어요. 그러다 자퇴생 모임 카페를 알게 되었고 그 곳에서 온라인/오프라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생활하다가 지금은 알바충. 딱히 불편했던건 공부를 하려면 되려 돈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

씨엘: 엄마가 발레, 피아노, 영어 학원을 보내줬어요. 학원을 1, 2년 다니다 16살 때부터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면서 연출도 해보고, 청소년 인문학 토론회에서 기획단으로 활동을 했는데 ‘이 곳도 청소년을 단지 기계 부품으로 생각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어요.
 
에버: 그럼 탈학교 이후에 가장 좋았거나 힘들었던 것은 뭔가요?


착한쌀: 빈 시간 동안 더 많은 사람과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는 거요. 힘들었던 건  스스로 계획을 만들어 생활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들었어요.
씨엘: 좋았던 것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다는 점, 영화를 주구장창 많이 봤어요. 힘들었던 건 공모전 같은 곳에서 학교/소속이 어디냐고 물어봤을 때 답을 할 수 없었고, 교복을 안입고 다니니 초등학생 혹은 비청소년 취급을 당하며 할인 혜택도 받지 못했던 것. 지나가다 엄청난 연상에게 대시를 받은 적도 있어요.
오소리: 착한쌀은 하고 싶은 것을 했나요?
착한쌀: 아뇨. 제 혼잣말을 들으셨군요! (웃음) 디자인, 연기, 음악 등등 많이 배우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어려웠어요.

 

 

에버: 지금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그걸 바탕으로 탈학교 청소년을 지원하는 정책이 어떤게 생기면 좋을 것 같나요?


착한쌀: 돈이 제일 필요해요!!! (다 같이 웃음) 그리고 탈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개인 정보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감시법이 사라져야 해요! 어디에 있나 추적하기 위한 것인데 기분 나쁘죠.
씨엘: 탈학교 청소년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려 하는 숙려제 등의 프로그램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에버: 지금까지는 있는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한거잖아요. 그러면 새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착한쌀: 탈학교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항상 검정고시 관련, 교과 관련 수업만 해주는 것은 매우 불필요한 것 같아요.
에버: 맞아요. 자신이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학교가 싫어서 나왔는데, 정작 밖에 나와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화나는 현실이에요.
씨엘: 같은 지역에 사는 탈학교 청소년들끼리 서로 만날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이 마련되어야 해요. 물론 착한쌀님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도 있지만 처음부터 오프라인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에버: 학교를 다녔을 땐 어떤 점이 불편했나요?


착한쌀: 학교 생활 자체가 시험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매우 불편했어요. 예를 들면 교사에게 이 내용을 모르겠다고 물어봐도 “그것은 시험에 나오지 않아!” 라며 오히려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나요.
씨엘: 주입식 교육이 제일 불편했죠. 교사는 한 명이지만 학생 3~40명을 상대하니 무리가 있을 수 밖에 없죠.
오소리: 그러면 몇 명이 적당하고 생각해요?
씨엘: 열명에서 열다섯명이 적당한 것 같아요.
에버: 아무래도 정원이 많다 보면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이 어려워지고 저절로 수업도 일방적이게 되는 것 같아요.
씨엘: 교사가 학생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게 불편했어요.
에버: 교사 재량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에 조금은 제한을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착한쌀: 수업 자체를 시험 위주로 하다 보니까 수업의 진도가 너무 빨라요. 그것이 고쳐졌으면 좋겠어요.
말발: 수업 일수와 시간, 범위를 줄여야 할 것 같네요.


에버: 대안학교 관련해서 비판하고 싶은 것 없나요?

 

씨엘: 제가 다녔던 학교는 입학금, 기부금, 월마다 내는 돈 등 학비가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심지어 다른 학교는 천 만원씩 챙겨가기도 해요. 대안적인 삶만을 추구하다 보니까 학생들을 학생들만의 공간에 가두는 느낌이 들었어요.
에버: 공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대안교육이라며 생겨난 대안학교인데 공교육 보다 더 어이가 없네요. 아무래도 비인가 학교는 교육부의 감시도 없으니 사각지대에 놓여있겠죠. 그럼 씨엘은 현 공교육에 대해 할 말 없어요?
씨엘: 학교를 폐지해버려... (웃음) 공교육이 취업이나 진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에버: 교육이, 교육이 아닌 현실인거죠. 그러면 학교 교칙은 어떻게 생각해요?

착한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 인권 개무시!


에버: 지금까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면,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의 입장으로서 바라본 학교는 어떤 점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착한쌀: 학생의 자율적 의지보다는 제 3자인 교사나 학부모의 의중만 중요시 되는 것이 완전 바뀌어야 해요. 완전 싫죠!
에버: 자퇴는 물론 수학여행, 소풍, 급식 등에 부모 동의란이 있는 건 정말 어이가 없죠. 학생에게도 본인의 의지가 있는데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고.
씨엘: 수업이 끝났는데도 불과하고 진도가 늦다며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모습은 어이가 없었어요. 심지어 한 시간 이상 붙잡혀 있었죠.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방학도 세 달 정도로 늘리고 수업 일수도 줄이고, 끝나는 시간도 훨씬 앞당겨야 해요.
착한쌀: 청소 시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씨엘: 학생 뿐 아니라 교사도 동참해서 청소 같은 잡일을 해야 해요.
에버: 심지어 학생을 종 부리듯이 하는 곳도 많죠.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서 앞에 있는 학생에게 별 중요하지도 않은 심부름을 시킨다거나. 저는 공부하고 있는 학생에게 옆 반 담임교사에게 과자 좀 전해달라고 시키는 교사를 봤었는데 정말 화가 났어요.
씨엘: 지금 교과 과정을 보면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인데 이걸 토론 형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소리: 그러면 수학 같은 교과목은 어떻게 해요?
씨엘: 수학 같은 것은 “이건 이거니까 이걸 외워!”라기 보다는 “이건 왜 이렇게 될까?”라는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에버: 맞아요. 그냥 무조건 외우라고 하면 듣는 입장에서 지루하기도 하고 능동성이 떨어지죠. 그리고 수업을 못 따라가는 학생이 분명 있을 텐데 그걸 무시하고 계속 주입 시키려는 건 분명 잘못됐어요. 조금의 물음표 조차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니...
씨엘: 맞아요.
 
에버: 탈학교를 생각하거나 시작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착한쌀: 탈학교를 선택할 일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지만... 누구나 자신의 길은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학교의 모습은 너무 좁고 갇혀있어요. 그 곳을 나오게 되면 더 많은 이야기와 경험을 할 수 있을거예요.
씨엘: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그냥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말발: 만족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나요? (웃음)
씨엘: 하고 나서 만족할 수도 있죠!
에버: 도박이네요.
 
에버: 그러면 탈학교를 생각하는 사람의 지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착한쌀: 자기 마음대로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발: 넌 이렇게 될 거야~ 저렇게 될 거야~ 이런 걸 말하는 거죠?
착한쌀: 네, 그렇죠.
에버: 씨엘은요?
씨엘: 자신(부모)의 바람, 희망, 꿈을 자녀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에버: 이후에 어떤 계획이 있나요? 구체적이어도 좋고 굳이 구체적이지 않아도 좋아요.


착한쌀: 일단 대학을 어떻게 들어갈지 진학 관련해서 고민 중이고요. 제가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그 쪽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고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씨엘: 저는 유학을 가서 심리학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과제빵도 배워보고 싶어요.
 
에버: 마지막 질문인데요, 탈학교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어떤 터닝 포인트 또는 의의를 가져다 주었나요?


착한쌀: 오히려 그런 게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에버: 그만큼 자퇴가 그렇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아니라는 거네요? (웃음) 사실 주변에서 자퇴가 무슨 자살과 비슷한 것인 듯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냥 이것도 살아가면서 내리는 수 많은 결정 중 하나일 뿐인 거죠. 물론 사람마다 그 크기는 다르겠지만.
씨엘: 저는 “이게 나였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말발: 그러면 씨엘은 누구였다고 생각했나요?
씨엘: 저는 제 가슴에 만족해요.
(다같이 웃음)
말발: 그 말은 왜 나온 거에요? (웃음)
에버: 다시 물어볼게요. 본인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씨엘: 네. 그냥 여러분들이 보는 모습 그대로가 바로 저에요.
 
에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온 대화록을 읽는 사람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서 현재 우리 사회의 교육방식에 대해서 비판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그럼 다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