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11월 3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확정 고시되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정권의 역사 인식을 강요하는 수단이 되기 쉽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황교안 국무총리는 `친일 독재 미화`의 왜곡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성숙한 우리 사회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정부도 역사왜곡 시도를 좌시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역사를 서술하는 다른 언어가 사라지는 것, 역사 속 사건 중 선택되어 드러난 것이 단 한가지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위험하다.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신라 36대 왕인 혜공왕은 불국사와 에밀레종을 완성한 왕으로만 역사 교과서에 기록되어 있다. 혜공왕은 여자처럼 꾸미고 노는데 열중했던 왕이다. 고운 얼굴에 여자 옷을 입기를 즐겼으며 비단주머니를 차고 다녔던 왕인지라 삼국유사에는 원래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아들을 원했던 경덕왕이 표훈도사를 시켜 옥황상제에게 아들을 빌어 혜공왕이 태어났다는 야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에밀레종에 얽힌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려도 혜공왕의 성별정체성에 대한 언급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다.
신라시대 화랑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화랑도에서 동성애적 행위와 사랑은 꽤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인정한다. 일례로 득오라는 낭도가 죽지라는 화랑에게 바친 ‘모죽지랑가’는 죽지랑을 사모하는 노래이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화랑들의 이야기는 인재 양성제도와 국방력 강화 방법의 차원에서만 언급될 뿐이다.
고려시대 31대 공민왕이 여장을 하고 미소년들과 잠자리를 했다는 것, 7대 왕인 목종과 유행간의 동성애도 교과서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문종의 두번째 부인 봉씨와 여종 소쌍의 동성애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사건이 역사 교과서에 실릴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석가탑을 만든 아사달과 아사녀의 설화는 역사 교과서에 실려있다. 단지 성소수자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역사 교과서는 이성애가 당연하다는 인식을 형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속 인물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의 부분에서도 그러한데 다른 부분에서는 오죽할까?
더 우려가 되는 것은 역사 교과서 이후 다른 교과서에서도 국정화 시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지난 9월 17일에는 '동성애 조장' 교과서를 규탄하는 시위가 있었다.
사진출처: 국민일보
사진출처: 국민일보
집회에서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교과서 문구를 언급하며 “서구의 타락한 문화인 동성애가 ‘소수자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초·중·고 교과서마저 동성애를 옹호·조장한다면 자라나는 세대에겐 동성애가 아름다운 사랑이며 즐겨도 되는 좋은 성문화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저 주장의 억지스러움은 위에서 언급한 우리 역사 속 늘 있어왔던 성소수자의 이야기로 바로 반박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세가 심해지면, 역사 교과서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 문화 형성을 위해서 사회문화 교과서를, 보건 의식을 위해 보건 교과서를, 도덕적 의식 함양을 위해 도덕 교과서를 국정화 시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그 사이 성소수자뿐 아니라 모든 소수자 인권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교과서가 효과적인 도구로 쓰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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