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nn(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불온한 당신 (2015, 이영)

 

 

겹치기 출연

 

먹방이 대유행이다. 공중파에서 종편에 이르기까지 채널을 돌릴 때마다 지지고 볶는다. 그러다 보니 몇몇 유명해진 쉐프들이 끊임없이 겹치기 출연을 한다. 유사 프로그램이 많아지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개성 없고 식상하다.

 

지난 9월 막을 내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불온한 당신>을 보면 차별과 소외를 드러내고 싸우는 사람들 중 집회현장에 지겹도록 겹치기 출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집회, 철도민영화 반대 집회, 성소수자들의 축제와 각종 인권과 관련한 회의… 요리도 다르고 재료도 다른데 신기할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칼날을 휘두른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그들의 겹치기 출연은 티비 프로그램처럼 채널을 돌리며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은 낱낱의 개인이 아니라  ‘세력’이기 때문이다.

 


불온한 세력

 

영화 <불온한 당신>의 감독은 영화 속에서 당사자로 경험하고 관찰자로 응시하고 목격자로서 기록한다. 감독은 “당신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비난하는 혐오세력들을 광장에서 만난다. 그들이 불온하다며 딱지를 붙이고 혐오를 쏟아 붓는 대상은 체제에 이견을 제시하거나 인권과 같은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본의 이윤 논리에서 불평등과 불의 대신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이다. 공공성을 지키고자 나선 노동자들의 파업, 성소수자의 인권,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다양성과 정의를 부정하는 혐오세력이야말로 ‘불온한 세력’이라고 일갈한다.
 


개인과 세력

 

감독은 영화에서 혐오세력들의 불온함이 어떻게 일관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70세 ‘바지씨[각주:1] 이묵’을 통해 소수자 ‘개인’의 삶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구성원 또는 집단으로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삶은 다시 어떻게 국가나 사회집단, 혐오세력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동성애자로 정체화하기도 전에 고향에서 당연하고 온전히 ‘나’로 여겼던 젊은 ‘이묵’은 7,80년대 여성 동성애자들이 결집했던 서울 성북을 거친다. 노인이 된 그가 고향과 객지를 오가며 고향과 공동체의 환대 대신 비밀스러운 역사를 숨겨야 하는 삶의 공간에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의 역사를 추적한다. 감독은 이묵의 역사를 통해 ‘나’를 넘어 집단으로 연결되는 과정과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는 단순한 개인이 집단으로 여겨질 때 더욱 불온한 대상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최근 세력화한 혐오세력은  애초 일부의 보수 개신교 신자들의 돌출행동이었으나 경제 위기 등과 맞물려 동성애자를 희생양으로 삼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이들과 결탁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즉 ‘동성애 반대’는 ‘친미반공’과 연결되고 성소수자, 노동운동, 이주민을 한데 묶어 공격하는 혐오의 전술인 것이다.

 


이해받기보다 당연히 인정해야할 존재


 '정체성'이 누군가에게 부정 당하는 것은 삶 전체와 내가 맺은 관계의 부정이다. 영화는 2011년 동일본 지진이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그들의 경험을 통해, 혐오세력이 불온하다고 몰아세우는 사람들의 삶이 불온의 낙인을 넘어 불안과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동성애가 관용과 이해의 대상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삶을 위해 당연히 인정해야하는 이유가 된다. 끔찍한 재난 상황에서 서로의 관계를 내놓지 못해 생존을 확인하기 어려웠던 논과 텐의 ‘불가피한 커밍아웃’ 사례는 성소수자에게 삶을 인정받는 것은 생존의 문제임을 거듭 주장한다.

 


불온한 ‘우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

 

박근혜 정부 들어 평범한 이들의 삶은 점점 불안하고 불행해 졌다. 국가나 정부가 우리의 삶을 지켜주지 않을 것 또한 점점 더 명백하다. 논과 텐이 그랬듯 세월호의 유가족들은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아직도 이유를 밝히지 못한 채 고개 숙일 것을 강요 받고, 성소수자 역시 광장을 둘러싼 혐오세력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영화는 얼굴을 바꿔가며 사회적 소수자를 공격하는 이들의 뿌리와 고리에 접근하고, 나아가 그들에 순응하지 말 것 그리고 다양한 약자들이 연대해야 함을 웅변한다.

 

영화는 ‘서울시청 무지개농성’을 통해 우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무엇보다 연대를 강조한다. 차별없는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위해 서울시청을 점거했던 지난 2014년 12월의 성소수자 운동은 불온한 세력들을 향한 진정한 연대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나 소수자의 인권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 또는 정치적 수사로도 인색해하는 세력들을 향한 한국사회의 아우성이었다. 당시 시청 로비를 메운 성소수자 운동과 이들을 향한 연대는 혐오세력의 정치적 본질-경제위기와 양극화의 희생양 찾기-를 제대로 보여주었고, 당시 엄동설한에도 90일 넘게 평택 쌍용차 공장 굴뚝에서 투쟁한 이창근 동지가 한 말처럼 싸움이 쉽지 않은 시대에 ‘한국 인권의 베이스 캠프’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 또한 사회진보를 거부하는 혐오세력에 맞서 지금의 성소수자의 인권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리트머스였다.

 

 <불온한 당신>은 성소수자 개인의 삶을 둘러싼 혐오세력의 불온함의 고리와 뿌리를 뒤흔들고 끊어내기 위해 소수자 운동이 다양한 운동과 연대하고 연결할 때, 우리를 불온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우리를 위협하지 못할 것임을 주장하는 영화다.

 

 

 


 

  1. 1970년대 여성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부치'를 가르키는 말. '팸'의 경우 치마씨로 불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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