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게임, 좋아하시나요?

 

일전에 다른 글에서 말씀 드렸듯이,  성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투쟁하는 우리는 하나로 묶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혹시 읽어보신 적인 없는 분은 여기를 참조해 주세요!)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모두 다 가지가지인 상태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어쩌다 공통분모가 생기면 함께 부대낄 지점이 생기고, 그 지점이 사라지면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여정이 삶이 아닐까 해요. 저의 여정에도 누군가와 함께 해 왔던 때가 수시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일부는 ‘게임’이었습니다.

 

저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PC게임부터 시작하여 플레이 스테이션과 같은 콘솔에도 자주 손을 댔었고요,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과 오락실 게임을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접해오는 게임 소식들도 체크하고, 재밌어보이는 신작이 나오면 하루 이틀정도는 플레이하여 어떤 점이 신선하고 좋았는지, 혹은 미흡했는지를 따져보기도 합니다.  

 

게임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욕망의 발현이 가능한 컨텐츠라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현실에서는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들을 가상 공간에서 하나하나 실현해 볼 수 있다는 점이지요. 몬스터와 마법이 있는 판타지 세계관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술을 연마하여 싸워 나가는 것, 낚시꾼이 되어 대어를 낚아보는 것,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연애를 나눠보는 것 등등, 인간에게 존재하는 다양한 욕구가 투영 되어 무궁무진한 방식으로 충족시켜주는 컨텐츠는 게임이 단연 독보적이지 않을까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게임 내 ‘결혼’ 시스템, 그 자잘한 이모저모


‘관계’의 욕구 또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욕구이며, 게임 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현실 세계에서 친했던 사람끼리 게임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게임 내에서 친해지고 그 뒤에 현실로 만남이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는 않아요. 인스턴스 던전을 돌다가 친해져서 친구를 맺거나 길드에 가입하고, 혹은, 요즘 단어로 말하자면 소위 ‘랜선연애’를 했던 유저들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더러 있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리고 그 중에는, 게임 캐릭터끼리의 ‘결혼’ 또한 했었던 분들도 포함될 겁니다. 온라인 상의 결혼이 실제 ‘결혼’으로 이어졌다거나, 온라인 ‘결혼’ 관계에 매달려 현실 세계의 결혼 상대에게 소홀해 갈등을 겪게 되는 등의 다양한 양상의 사회적 파급 효과를 불러 왔지요.

국내 게임 시장에서 결혼 시스템이 구현된 것은 NC소프트의 ‘리니지’ 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만, 찾아보니 아니었어요. 훨씬 그전부터 결혼시스템은 존재해 왔습니다. 텍스트 기반의 MUD 게임이었던 ‘단군의 땅’ 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람의 나라’, ‘라그나로크’, ‘아스가르드’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에서 결혼은 흔히 찾아볼 수 있었고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시스템이었습니다.    

 

 

 

다만, 게임마다 구현된 ‘결혼시스템’ 방식은 천차만별입니다. 단순히 형식적인 관계를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만 하는 것부터 처절하게 현실적이다 싶을 정도로 한국의 결혼 풍습과 제도를 잘 구현하고 있는 게임까지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넥슨이 서비스하고 있는 ‘메이플 스토리’가 이 부문의 끝판왕이 아닐까 하는데요. 결혼식장, 예복, 심지어 하객 참여에 필요한 아이템까지도 전~~부 유료화, 그것도 모자라 단계를 나누어 프리미엄화 하여 과금을 유도합니다. 이 얼마나 충실한 현실계급의 반영입니까?!
 

 

게임 내 동성 결혼 시스템, 그리고 파이널 판타지 14 온라인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혹시 동성결혼을 지원했던 게임은 있었을까요? 해외 게임의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혹시 SIMS(심즈)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아시는 분들이 있으신지요? 가상의 도시 세계를 배경으로, 실제 살아가는 삶의 다양한 활동들을 수행 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여기서는 동성 캐릭터 간 애정표현, 키스, 심지어는 은밀한 시간(?!)을 보내는 묘사도 있습니다. 결혼은 물론이고, 입양도 가능합니다.

 


 


 

국내 게임 서비스는 어떤가요? 안타깝게도, 동성 결혼이 정식 서비스로 제공되었던 게임은 아직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변칙적인 플레이로 동성간 결혼이 가능한 시기가 있던 사례가 존재합니다. ‘바람의 나라’ 인데요, 이것이 가능했던 건 결혼식에 필요했던 조건이 캐릭터의 실제 성별이 아니라, 아이템에 부여된 ‘성별’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나마도 시스템의 변경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지금에 와서는 웃지 못할 헤프닝으로 회자되고 있을 뿐이네요. (혹시 제가 간과하는 게임이 있다면 꼭꼭 알려주세요!!)
 

그렇지만 어쩌면, 국내 온라인 게임도 동성 결혼이 정식 서비스로 지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14 온라인’ (이하 ‘파판 14’)이 바로 그것입니다. ‘파판 14’는 일본의 RPG 명가 스퀘어 에닉스에서 만든 MMORPG이며, 현재 한국에서는 주식회사 Actoz(액토즈)에서 정식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시리즈를 걸쳐 두터운 팬층을 확보해 놓고 있던 게임타이틀이었기 때문에 많은 게이머들이 사전신청을 하고 플레이 하기도 했습니다. (서비스 초기에는 저도 간만에 밤을 새서 게임을 했어요. 로그아웃 하고 나니 해가 뜨더라고요! 와우!)
 

‘파판 14’가 국내에서 이슈화되었을 당시에는 동성 결혼 시스템 또한 유저들의 이목을 이끌었습니다. 트위터 유저가 올린 게임 상 동성 캐릭터끼리의 Eternal Bond(파판 14 내에서의 명칭입니다.) 스크린 샷은 4자리수의 리트윗 수를 기록하기도 하고, 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분들이 캐릭터간 결혼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어요.

 


 

 

 

사실 ‘파판 14’가 처음부터 동성간 결혼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 또한 이성 캐릭터끼리의 결혼에 대한 유저들의 피드백(이라고 쓰고 “항의”라고 읽습니다)을 받아 가능한 일이었어요. 좀 더 찾아보니 이 부분은 다른 게임 또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도모다치 라이프’ 게임의 경우, 이 문제로 닌텐도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성소수자 및 인권 단체로부터 항의를 받았습니다. 주요 게임의 설정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닌텐도는 이들을 대상으로 사과 해야 했습니다. “이후 시리즈에는 반영할 예정”이라는 말도 함께요. 스톤월 항쟁으로 인해 성소수자 인권에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게임 상에서의 성소수자를 둘러싼 변화들도 결국 투쟁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했던 것입니다.
 

 

게임콘텐츠등급제와 동성애/동성결혼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파판 14’의 게임 정보는 해외에서 서비스 중인 인터네셔널 버전보다 1년 이전의 시스템으로 구동 중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Eternal Bond는 현재까지 미구현 된 상태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에 대한 유저들의 뜨거운 관심은 공개 질의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대한 액토즈의 대응은 미온적이었고, 유저들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이상한 질문에는 그 이상 답을 드릴 수 없다든지, 법률적인 문제가 있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마도…”라는 답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나올 뿐이었어요.

 

 

 

 

[01:27:00부터 해당 사항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법률적인 문제라고 하면 어떤 걸 이야기했던 걸까요? 아마 ‘게임등급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유추해 봅니다. 등급제에 대한 문제는 결국 게임회사 및 배급사가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요소일테지요. 어떤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서 타겟 유저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고, 이는 게임 회사의 이익과 직결되니까요. (다만 현재 ‘파판 14’는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았는데도 이러한 이슈를 신경쓰고 있는 점은 조금 의아하네요.)

 

동성결혼과 관련한 게임 등급 분류는 어떻게 될까요? 선례를 통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아까 잠시 언급해 드렸던 ‘심즈 4’의 경우, 한국에선 전작과 마찬가지로 15세 등급 판정을 받았습니다만, 논란의 여지는 존재합니다. 전작이었던 ‘심즈 3’에서는, “간접적이고 제한된 선정적 표현”으로 15세 등급을 받았습니다만, ‘심즈 4’는 이와 더불어 추가적으로 동성애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심의 결과의 등급결정 사유에는 동성 간 사랑나누기 등을 “사회적 통념을 다소 벗어난 행위”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성 간의 선정성 또한 함께 더불어 뭉뚱그려 놓으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선정적인 행위에 구태여 ‘동성애’를 추가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다시 제기하게 됩니다.

 


 

 


 

성적 소수자에 관한 이슈가 현실에서 도마에 오르고 저울질 당하고 있는 것처럼, 게임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엿볼수 있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에서 더욱 극대화 되었는데요. 러시아에서 ‘심즈’는 성인 등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소위 ‘반 동성애법’으로 일컬어지는 ‘동성애 선전 금지법’에 의거하여 성인 게임으로 분류된 것이 그 이유에요. 혐오세력의 가시화와 조직화, 그리고 드세지는 그들의 만행에 미루어 보았을 때, 어쩌면 최악의 경우에는 게임에서조차 우리의 존재는 검열당하고 투쟁을 부르짖고 살아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현실과 게임에서의 동성간 Eternal Bond를 꿈꾸며

 

게임에서까지 동성결혼이 필요한 이슈인가 하는 화두는 함께 이야기해 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정 게임에서까지 결혼이란 걸 원한다면 둘이서 성별을 맞춰서 플레이하면 될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에요. 동성애 혐오세력이 주야장천 이야기 해 왔던 헛소리, 바로 “동성애는 후천적인 선택이다” 라고 하는 말이 현실이란 맥락에선 통하지 않지만, 게임에선 다르거든요. 캐릭터의 성별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가 명확히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러한 선택이 과연 올바른 절충안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쉬이 걷어낼 수 없습니다. 실제로 ‘심즈’를 플레이 하면서 게임에서까지 동성 커플을 만들어놓고 꽁냥꽁냥(…)거리던 게이 커플을 봐 왔거든요. 게임 내의 여러 플레이 방식이 유저 간의 친목을 돈독히 하듯이, 결혼 시스템 또한 커플의 러브러브 연장선, 내지는 염장질(?!)이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앞에서, 어느 누가 감히 오만하게 “너네 굳이 그런 걸 해야 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쯤에서 동성 결혼에 대한 찬반지점을 다시금 되짚어 보고 싶습니다. 바로, “너희가 사랑하면 된 거지 왜 꼭 결혼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말은 현실세계에서 결혼이 갖는 제도적인 의미를 배제하고서라도 굉장히 폭력적이며 저차원적인 반응이 아닐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과 누군가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은 천지 차이인데도 말이에요.  


 게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누군가가 하고 싶은 플레이 방식이 있고, 그것이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구현이 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유저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일부 유저는 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차별의 연장선에 놓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여나 “고작 게임에서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하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돌려드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작 게임인데 그런 것까지 신경쓰셔야 하냐” 라고요. 관계에의 소구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양면성을 띄고 있는 걸요.

 

언젠가는 저도 게임상에서라도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와 함께 플레이할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현실에서 못 다이룬 커플의 꿈을 모니터 안에서라도 이루고 픈 욕망을 발견한 한 Gaymer가 여기 한 명, “동성애 청정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고;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8%A8%EB%9D%BC%EC%9D%B8%20%EA%B2%8C%EC%9E%84/%EA%B2%B0%ED%98%BC#rfn-1

디스이즈게임

http://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sf=subject&page=28&n=54753

http://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55715

IGN News

http://www.ign.com/articles/2014/06/11/e3-2014-final-fantasy-14-getting-two-new-classes-gay-marriage

http://www.ign.com/articles/2014/06/11/e3-2014-final-fantasy-14-getting-two-new-classes-gay-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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