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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영화 <스톤월>: 논란과 그 이후

by 행성인 2015. 9. 5.

겨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이번에 개봉할 영화 <스톤월>은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현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 실제로는 유색인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면모들이 ‘표백’되었다, 트랜스 여성들의 존재가 삭제되었다 등의 내용들이 <스톤월>을 향한 주된 비판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 때문에여러 담론 역시 촉발되었다. 이를 더 깊게 파헤치기 위해, 실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젠더퀴어 운동가 D(익명으로 남길 원했다)를 인터뷰했다.

 


스톤월 항쟁, 그 배경과 지워지는 정체성

 

Q: 스톤월 항쟁이 촉발된 배경을 설명해 줄 수 있는가?

D: 스톤월 항쟁은 1969년에 시작되었는데, 당시는 미국에서 여러 변화가 일어나던 때였다. 리처드 닉슨이 막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가하고 있었고, 그 전년에 마틴 루터 킹이 암살되었던 때였다. 즉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고 스톤월 항쟁은 그런 상황 안에서 벌어졌다.

 당시에는 “이성의”옷을 입는 것이 100% 법적으로 처벌 가능했고 경찰들이 정기적으로 인기 있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바에 와서 고객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어느 날 경찰들이 문을 뚫고 들어와 스톤월에서 고객 검열을 하겠다고 했다. 그 전에 어떠한 경고조치도 없었고 사람들이 짜증이 난 상태였다.

 경찰들이 고객들을 한 줄로 서게 한 다음 신원을 공개하게 했고 트랜스 여성들과 드래그 퀸들이 여성의 옷을 입었는지 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자기 신원을 공개하는 걸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찰들이 이들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곧 군중들이 모여들었는데 삽시간에 규모가 확 커졌다. 이 와중에서 경찰과 다른 사람 한명 사이에 싸움이 붙었고 그리고 스톤월 항쟁이 시작되었다.

 

Q: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픽션화된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D: 롤랜드 에머리히는 대중들에게 용서받을 기회를 자기가 스스로 차버렸다. 스톤월 영화는 허구의 시스젠더 백인 게이 캐릭터를 내세우면서 실제 항쟁에 참여하고 그걸 책임진 현실의 유색인 트랜스젠더 여성들을 지워버렸는데 그걸 변명이라고 하다니, 모욕적이다! 그는 사과를 하기는커녕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 주인공 캐릭터가 관중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변명했는데, 관객들은 자기와 100% 똑같지 않은 사람이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또한 유색인 트랜스 젠더 여성들이나 성소수자인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를 영화에서 보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은가. 특히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역사의 한 장면이라면 더욱 더 그런 묘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응, 그리고 진실이 퍼지는 경로

 

Q: 대중들은 어떻게 반응했나?

D: 대부분 이런 ‘표백’과 ‘배제’가 굉장히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한 5년 전에 텀블러 등의 블로깅 사이트에서 LGBT역사 관련 문건이 퍼지기 전, 유투브에서 관련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전에는 이런 문제를 그냥 덮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역사적 오류가 보이면, 특히 이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관련해서는 바로 지적을 한다.

 

Q: 아 그러니까 소셜 미디어가 LGBT 역사를 보존하고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크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D: 그렇다! 고등학교때만 하더라도 LGBT역사에 관한 중요한 자서전 등은 광범위하게 도서관을 뒤지거나 대학생, 교수들에게만 열람 가능한 학술적 저널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트위터나 유투브, 텀블러, 페이스북, 버즈피드에서도 LGBT역사에 관해 기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다.

 

Q: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CNN같은 좀 더 주류의 전통적 언론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D: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류 언론의 구독자가 좀 더 예전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류 언론은 인터넷의 영향력과 사설 하나가 몇 시간 안에 얼마나 빨리 퍼지는지를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경쟁을 하려면 좀 더 넓은 주제에 대해서 다뤄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Q: 감독이 관객으로 삼은 시스 게이 백인 남성층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D: 그들 역시 감독에게 실망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게 주류를 대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와 그리 많은 접점이 없기 때문에 아주 잘 알지는 못했지만 감독이 스톤월에 대해 쓴 변명에 대한 반응을 보면 그들 역시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물론 이에 반대하면서 영화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난 아직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Q: 처음에 미국 미디어에서 ‘표백’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나, ‘인종바꿔치기’운동[각주:1] 때처럼 구심점이 있는, 조직적인 보이콧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가?

D: ‘인종바꿔치기’운동처럼 조직적이고 구심적이진 않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보이콧운동 중이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대신 표값만큼의 돈을 트랜스젠더나 퀴어 NGO나 기타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역사의 재발견과 세대간의 연결

 

Q: 당시 항쟁때 실제 있었던 사람 중 이 영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한 사람이 있는가?

D: 미스 메이저가 있다. 여기에 인터뷰 링크가 있다. http://www.autostraddle.com/how-dare-they-do-this-again-miss-major-on-the-stonewall-movie-301957/

 

Q: 이번 논란을 통해 유색인 트랜스젠더들과 그들의 내러티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는가?

D: 그랬으면 좋겠다. 자넷 모크[각주:2], 라번 콕스[각주:3], 캣 블래크[각주:4], 다크매터[각주:5] 등등 지금까지 관심을 못 받았던 분들이 더 많은, 긍정적인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Q: 이런 활동을 통해 젊은 유색인 트랜스젠더들과 좀 더 나이든 유색인 트랜스젠더간 연계성 같은 게 강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현재의 성소수자 역사는 뭔가 좀 파편화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80년대 AIDS가 돌면서 많은 분들을 잃었기 때문에 나이든 분들 중에서 롤모델로 삼거나 멘토 역할을 해 줄 사람이 많이 없다. 더 나아가 언론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스톤월 항쟁에서 보듯이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어린, 신생운동처럼 묘사하는 게 대부분이다.

D: 동의한다. 세대간 연계성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뭔가 굉장한 간격같은게 있었다. 아예 한 세대를 AIDS 때문에 잃어버리면서 그런 단절이 일어났지만 이번 논란 때문에 성소수자 역사가 다시 재조명되고 지금까지 생존하신 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그 간격을 메꾸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Q: 비단 SNS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 아니면 뭔가 강의 등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일어나는 일인가?

D: 후자다. 사람들이 <파리는 불타고 있다>등 예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며 그 간격을 메꾸고 있다. 또한 콤튼 카페테리아 항쟁[각주:6]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Screaming Queens> 역시 새로 나왔고, 대학에서 이들을 상영하면서 토론과 이 시대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하고 있다. 마치 족보를 훑어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많은 젊은 성소수자들이 이런 작업을 하며 미국에서의 동성결혼 이슈뿐만 아니라 LGBT 노숙자 문제, 구직 문제, 차별금지 조항 개정 등의 이슈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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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를 통해 가장 중요했다고 느낀 점은 바로 소셜 미디어가 가진 힘이었다. 사회적 소수자는 주류 언론매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기 때문에 대안적인 매체를 주로 쓰게 되는데, 미국에서는 이런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LGBT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것이 이번 스톤월 영화에 대한 역사적 오류나 억압적인 논리를 지적할 수 있게 된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이런 정보의 공유가 세대 간 단절을 메꾸는 역할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현재 한국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나 자료 역시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롤모델이나 멘토를 찾는 데 힘들어하고 있다. 역사적 단절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정보의 공유가 더 넓게 퍼졌으면 한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물론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중요한 영화”라고 넘어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실제 미국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 운동가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트랜스젠더 배제, 유색인 성소수자 배제가 된 매체는 그 자체로 트랜스젠더나 유색인 성소수자들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인권운동을 하려면 누구 먼저, 그 다음 너의 인권을 챙겨줄게라고 말하는 단계성이 없어야 한다. 모두가 중요하다.










  1. Racebending. <아바타: 아앙의 전설>이라는 TV 애니메이션이 <라스트 에어벤더>라는 영화로 각색되면서 유색인종이었던 주인공들을 대부분 백인으로 바꿔버려서 나온 말. [본문으로]
  2. Janet Mock.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분으로써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가, 저술가, 그리고 PEOPLE 잡지 웹사이트의 전 편집가였다. [본문으로]
  3. Laverne Cox.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 배우. [본문으로]
  4. Kat Blaque.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 유투버. [본문으로]
  5. Darkmatter. 남아시아계 트랜스젠더 행위예술가 듀오. [본문으로]
  6. 스톤월 항쟁의 배경이 된 트랜스젠더 항쟁. 역시 경찰과 트랜스젠더 여성 사이에서 발생한 싸움이 항쟁으로 번졌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