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연(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우리 같이 놀아요…우리 같이 불러요”, 산울림의 노래 ‘개구쟁이’의 가사이다. 아마 5월만큼 이 가사와 잘 어울리는 달이 없을 것 같다. 겨울의 추위도,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도 모두 지나가고 화창한 날씨와 푸르른 녹음이 가득한 달. 이보다 더 같이 모여 놀고 노래 부르기 좋은 달이 있을까. 그런 5월의 하루, 조금은 특별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세계보건기구가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1990년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IDAHOT)을 기념하기 위한 영상을 찍는 행사가 열린 것이다.


12시 반 무렵,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벌써 몇몇 사람들이 사전 촬영을 진행하기 위해 도착해 있었다. 스태프 분들은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촬영에 한창이었다. 아직 많은 분들이 도착하지 않아 조금씩 촬영이 이어지던 중, 스케치를 위해 사진을 찍으며 둘러보던 필자에게 한 분이 다가왔다.


"출연해 보지 않으실래요?"


'지나가던 중 이번 행사를 우연히 보고 흥미를 가져 참여하게 되는 이성애자' 역할을 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하필이면 카메라를 들고 온 모습이 '시내에 놀러나왔다가 이 행사를 보게 된' 역할에 딱 부합했다. 이것도 스케치에 들어갈 즐거운 에피소드가 되겠다는 합리화와 함께, 10분동안 최고의 발연기를 선보였다.


발연기를 끝내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른 촬영을 진행중이었다. 사전 촬영의 주연 분들은 각각 '학생', '직장인', '성소수자'로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역할을 하였다. 연기자들은 뜨거운 햇살을 맞으면서도 진지하게 촬영에 임했다. 양산으로 해를 막고, 간간히 다른 분들이 뿌려주는 미스트를 맞기도 했지만 날이 더운 건 어쩔 수 없는지 촬영 중인 연기자분들의 표정은 조금 지쳐 보였다. 하지만 촬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성소수자, 직장인, 학생 뒤에서는 연습이 한창이다


사전 촬영이 진행되는 계단 뒤로 다른 사람들이 미리 플래시몹에서 부를 노래와 율동을 배우고 있었다. 노래는 앞에서 언급한 산울림의 '개구쟁이'를 개사한 것으로,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모든 혐오를 없애자는 내용이었다. 어찌 보면 약간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귀여우면서도 간단하게 IDAHOT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가사였다. 가사와 함께 배우는 율동 역시 가사에 딱 맞는 동작들을 가지고 있었다. 손으로 그리는 무지개, 혐오에 반대하는 'X'자 손모양 등 알기 쉽게 오늘 모두가 전하려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계속해서 사전 촬영과 연습은 이어지고, 2시가 다가왔다.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더는 계단 뒤에 모여 연습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였다. 2시가 넘자 모든 사람들이 계단에 모여 앉았다. 새롭게 온 사람들과 함께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대로에서 잘 보이는 계단에서 사람들이 수많은 무지개 깃발을 들고, 걸치고, 펄럭이는 모습이 시선을 끌었는지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행사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였다. 마침 옆 건물에서 결혼식도 있고, 광화문 광장에는 다른 행사가 겹쳐 단체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지켜보다 가기도 하였다.

 

연습이라도 그늘 속에서 해야지 펄럭이는 행성인 깃발


2시 40분, 드디어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영상의 마지막에 들어갈 부분을 찍기 위해 사람들 사이로 무지개 카펫을 펼쳐 놓았는데 멀리서 보니 카펫보다 폭포처럼 보였다. 무지개빛 폭포가 계단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이후 사람들이 율동과 합창을 하는 장면 촬영에 들어갔다. 여러 번의 반복 촬영이 이어져 힘들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친 기색 없이 영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연습 때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는데, 한 외국인은 감탄을 하며 사진을 찍고 갔다. 한 행사 참가자는 그 모습을 보며 “저 사람들이 오늘의 이 행사를 더 많이 알리고 퍼트려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은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이런 행사를 가지는 것일 테니까.

무지개 폭포


5번에 걸친 율동 영상을 촬영하고, 간단한 발언 시간을 가졌다. 첫 발언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씨였다. 발언의 시작이 재미있었는데, 자신은 “오늘이 집회 자리인 줄 알았지 이런 문화 행사같은 자리일 줄 몰랐다”고 하며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럼에도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주변의 부당함을 함께 마주하자는 메시지를 던져주셨다. 다음 발언자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청소년팀의 사과였는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약간 당황하며 앞으로 나왔다. 자신이 발언을 할 줄 예상하지 못한 듯 짧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혐오는 부당하다는 이야기를 크게 던지고 갔다.


세번째 발언자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하늘님이었다. 부모모임의 다른 분들과 알록달록한 부모모임 깃발을 날리며 앞으로 나와 발언을 시작했다. 지난 10일에 열린 아시아 LGBT 부모모임 포럼의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소감을 전하며 성소수자의 부모로서 던질 지지와 응원의 말씀을 해주셨다. 성소수자가 행복한 사회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회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준 발언이었다. 이후 자유 발언을 위해 한 참가자분이 나오셨다. 본인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재학중이라 밝힌 발언자분은 나름의 학술적 기반에 근거해 평등한 사회,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역설하였다.

 

발언 시간

 

발언이 끝난 후 노래 합창을 녹음하는 시간을 가졌다. 목소리만 녹음하면 되는 순서인 만큼 금방 끝났다. 그렇게 모든 촬영이 끝나고 단체 사진을 찍으며 쉬고 노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금 노래 ‘개구쟁이’를 떠올리게 한다. 서로가 누구이고, 누구를 좋아하는지와 상관 없이 같이 모이고 같이 놀 수 있는 모습, 혐오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더 자주 볼 수 있을 장면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 찍은 영상이 편집되어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공개되었다.

 

▶  2016 IDAHOT Campaign Song, Seoul,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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