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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퀴어퍼레이드

[스케치] 2016 서울 퀴어문화축제의 이모저모

by 행성인 2016. 6. 15.

l2lMrFox(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6월 11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줄여서 행성인)의 부스는 서울광장 북서쪽 22번과 24번에 걸쳐 있었다.

행성인부스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관련 안내 책자와 육우당 문학상 작품집, 무지개 깃발 뱃지를 판매했다. 또 앞에서는 웹진팀에서 제작한 호외를 나눠줬는데, A3 사이즈로 인쇄된 호외는 행진시에 접어서 피켓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제작되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부스에서는 부모모임에서 제작한 물건을 판매했고, 팜플릿을 나눠주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부모님들께서는 부스를 찾아온 성소수자 부모님을 상담해 드리기도 했다.

행성인부스에는 단체 소모임 ‘전국 퀴어 모여라(전퀴모)’가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전퀴모는 수도권 외 지역에 사는 성소수자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인데, 캠페인에서는 퍼레이드 행사장에 찾아온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출신 지역을 조사했다. 정말 방방곡곡에서 오셨다. 심지어 해외에서 오신 분도 여럿 있었다. 반응은 스티커가 산처럼 쌓일 만큼 뜨거웠다. 많은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이 지도에 붙은 스티커를 보면서 ‘내가 사는 지역에도 성소수자와 함께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는 것을 느끼며 위안과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설문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열정(붉은색 : 맨드라미)적으로 투쟁(보라색 : 아킬레아)하며 -차별 없는 세상을- 기다린(노란색 : 해바라기)다.’ 는 꽃말이 담긴 꽃씨를 나눠 주었다.

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도 ‘일터의 성소수자들 X 민주노총여성위원회’ 라는 제목으로 부스를 독자적으로 진행했다. 여기서는 집회나 소풍 때 사용할 수 있는 무지개 휴대용 방석을 판매하였다. 또한 여성 차별과 폭력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으며, 성소수자들이 직장 내에서 겪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노동권팀 부스는 다른 단체와 연대하여 활동하는 행성인의 활동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번 퍼레이드 부스행사에서는 여느때보다 행성인과 그와 연계된 부스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도 뜨거웠다. 피켓과 캠페인 선전물 하나하나 회원들이 손수 만들었기에 보람도 컸을 것이다. 

 


부스가 열린 직후 풍물놀이패가 부모모임 부스를 찾아왔다. 노래를 부르고 함께 춤도 추면서 응원해 주셨고, 액막이도 해 주었다. 부모모임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 모두 큰 흥과 힘을 얻었다.

퍼레이드 직전에 부모모임에서 프리허그를 진행하기도 했다. 호응만큼이나 반응도 뜨거웠다.  허그를 통해서 어머님의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혐오세력의 난동은 2015년처럼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참가자들을 향해 막말을 하거나 언쟁을 벌이는 혐오세력은 여전했다.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서울광장을 둘러싸고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기도를 하면서 행사를 방해했다. 경찰의 제지도 무시한 채 경거망동을 계속 이어갔다. 더 나아가 행사에 참여하는 중요 인물들을 막기도 했으며, 행사장에 난입하여 혐오발언이 담긴 기도를 하기도 했다.

어쨋든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드넓은 서울광장이 무지개 물결로 가득 찼다. 서울광장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모습은 웬만큼 큰 행사나 집회가 아니면 보기 힘든 광경이다.

올해 행성인은 행진차량을 준비했다. 올해는 행성인과 민주노총이 나란히 선두에 섰다. 그 뒤로 여러 사회, 종교, 학생, 시민단체가 뒤따랐다. 행렬 뒤편에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사랑과 혐오에 저항하고 성소수자 자녀를 지지하는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행성인 행렬에는 단체에서 오신 분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참가자들이 200 m 정도 되는 긴 행렬을 이뤘다. 넓은 거리를 가득 채우고 함께 춤을 추며 노래 불렀다. 활동가들이 외치는 구호를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 음향이 잘 들리지 않은 대오의 뒤쪽에서는 백파이프를 불며 흥을 돋우는 분도 있었다.

 우리를 지켜보며 조용히 응원해 주시는 분들 사이에는 혐오세력도 곳곳에 있었다. 그들은 행진하는 우리를 향해 야유와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차량 앞에 뛰어들어 행렬을 온 몸으로 가로막기도 했다. 우리는 혐오세력이 뭐라고 하던 상관하지 않았고, 심지어 혐오세력에게 손을 흔들며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퍼레이드를 마치고 함께 모여 찍은 사진이다.

퀴어문화축제 측은 서울광장에서 두번이나 연 것에 대하여 ‘성소수자 인권의 승리’ 라고 하였다. 수 만 명이 서울의 중심에 모여 함께 즐기며 우리들의 존재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모습은 많은 성소수자와 지지자 분들에게도 크나큰 감동을 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뒤풀이 때 참가했던 회원들에게 행사가 어땠는지 물어보았는데, ‘음지에서 나와 밝은 곳으로 향해가는 느낌’ 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퀴어퍼레이드를 통해 일 년을 살아갈 수 있는 자긍심을 얻어간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퀴어퍼레이드를 마냥 편히 즐길수 만은 없었다. 혐오가 점점 가시화 되어가고 있으며, 혐오세력의 난동이 심해지고 있음을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예컨대 앞서 이야기 했듯이 축제에 훼방을 놓는 것뿐 아니라, 학교에 있는 성소수자들을 색출하려고 행사장에 잠입하여 돌아다니는 몰상식한 학생 및 교수들이 있었다. 가족과 친지에게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한 것을 들킬까 우려한 회원분들은 부스 뒤에서 가발과 진한 선글라스를 꼈다. 뿐만 아니라 공연을 하는 중에는 행사장 밖에서 들려오는 같은 학교 학생들의 혐오발언을 그대로 듣고 있어야 했다.

사실 많은 성소수자들이 이번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수 있을지 걱정했다. 작년 퀴어문화축제처럼 집회신고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으며, 박원순시장이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서울광장 사용 허가를 철회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히도 집회신고와 서울광장 사용 허가는 무탈하게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혐오세력은 퀴어문화축제 전인 8일 부터 10일 24시 까지 집회를 방해하기 위한 ‘예수축제’를 열었고, 11일 2시까지 부스를 철거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혐오세력이 설치한 부스는 철거 되었다. 그러나 퍼레이드 바로 전날 서울시는 퀴어퍼레이드 전날에 참여 단체에게 ‘영리를 목적으로 한 광고 및 판매행위를 금지한다.’ 는 내용을 카톡 공문으로 보냈다. 활동가들은 카톡으로 공문을 보내는 방식에 분노했고 공문의 의도에 항의하기도 했다.

행사를 마친 후 상황은 어떠한가? 퀴어문화축제를 보도한 기사에는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고, 더 나아가 서울광장 사용 허가를 내 준 박원순시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악플이 수천 개가 달렸다. 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석한 후 개개인에게도 혐오가 담긴 메시지가 날아왔다. 예컨대 나는 행사 후 지인에게 ‘너도 예수의 자녀이니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너를 현혹하는 사탄을 이기고, 음행(성소수자 지지)에서 돌아오기를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 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2015 퀴어퍼레이드와 지금 사이엔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혐오와 차별은 특정 종교단체를 넘어서 학교와 직장으로 퍼져나갔다. 지난 11월에 숭실대학교에서는 인권영화제를 취소했고, 1월에는 중앙대학교 인근 한 카페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조장하는 자칭 ‘다큐’ 를 상영했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서울대 열린예배를 명목으로 반동성애를 설파하고 총신대에서는 염안섭 원장이 동성애 및 HIV 감염인 혐오를 조장하는 강연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각 학교에서는 ‘반동성애 동아리’가 하나 둘 생겨났고, 성소수자 동아리를 홍보하는 현수막과 지지자들의 대자보가 혐오세력의 테러에 의하여 처참하게 찢겼다. 우리는 성소수자들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집회를 여러 번 열었다. 집회에 나갈 때 마다 활동가 분들이 분노와 슬픔에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성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무관심 했고 오히려 여성가족부가 대전시 성소수자 조례 삭제 요구와 성소수자-여성단체와 면담 거부를 통해서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무시했다. 더 나아가 위정자들은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혐오발언을 남발했다.

퀴어문화축제의 밝고 신나는 분위기를 통해 얻은 프라이드로 잠시 짜릿하게 웃을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여전히 많은 성소수자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혐오와 차별이 없어지는 날까지,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한 모든 분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는 밝은 날이 올 때까지 함께 연대하고, 계속 행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