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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퀴어퍼레이드

[스케치] 대구 퀴어문화축제

by 행성인 2016. 6. 29.

겨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올해에도 대구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이들을 위해 퀴어버스가 마련되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남인사마당에 도착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퐁퐁 회원과 즐겁게 떠들며 대구를 향해 달려갔다. 대구 퀴어퍼레이드체 처음 참여하는 퐁퐁은 궁금한 점이 많아 보였다. 너무 들뜬 나머지 조금도 자지 않고 담소를 나누다가, 거짓말처럼 대구에 도착했다.

 

짐을 들고 부스 행사장으로 가는데, 어딘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영~광 영광 영광 영! 광!" 마치 영광굴비를 홍보해도 좋을 것 같은 그 익히 들은 찬송가. 지긋지긋해하며 행사장소로 걸어갔다. 이미 여러 현수막이 달려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웃겼던 것은 "동성애 홍보대사 박원순은 물러나라!"라는 현수막이었다. 대구에서 박원순을 찾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싶었다.

 


작렬하는 햇살을 맞으며 부스를 돌아다녔다. 대구의 태양은 서울보다 지면에 가까이 있는 느낌이었다. 차별선동세력의 시선과 외침 또한 서울시청광장보다 가까이 있었다. 저들의 혐오가 우리 등에 화살처럼 꽂혔다. 계속 피켓을 눈앞에 들이대거나 피켓을 들고 부스 앞에서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비이성적인 차별선동에 우리는 재치있게 응수했다. "믿지 마셈", "이거 아님"이라고 쓰인 피켓을 든 분들이 차별선동세력 옆에 웃으며 서있고, 행성인 소속 창현님은 준비해온 목탁을 치고 불경을 욌다.

 

불미스러운 일이 없지는 않았다. 대구 퀴어퍼레이드 부스 중에는 포스트잇에 자기 경험이나 피해 사례, 혹은 추모의 의미를 담아 글을 써서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도 참여하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는데, 나이주의 관련한 발언들을 적어 붙이는 게시판에 "똥꼬충 꺼져"라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이것이 차별 사례를 적은 건지 긴가민가 했으나 나이주의와 전혀 관련 없었기 때문에, 결국 떼어내서 부스 담당자에게 보여주고 버렸다. 여기까지 와서 포스트잇을 굳이 작성해 붙이다니 참으로 찌질하고 저열했다. 이 외에도 몇 번의 충돌이 있었다. 초록색 마스크를 쓰고 온 할머니는 피켓을 들고 와서 우리를 잡고 혐오발언을 외쳤다. 혐오선동으로 유명한 기독교 방송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우리를 허락 없이 찍기도 했다. 차별선동세력이 우리 쪽 사람들에게 몇번이나 시비를 걸기도 했다. 어떤 여성분이 "아저씨 절 언제 봤다고 반말하세요?" 라고 항의하는 모습을 스쳐지나가면서 보기도 했다. 언뜻 서울 ㅇㅇ 교회라고 쓴 조끼를 입은 사람도 봤다.

 

 

 

퐁퐁과 나는 함께 앉아 공연을 봤다. 무대를 즐기다보니 혐오세력의 목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듯 했다. 흥겨운 공연 속에서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함성만 들려왔다. 특히 큐캔디 공연에 열광하며 사진을 찍었으나, 사진만으로는 그들의 생동감 넘치는 춤을 다 담지 못해 아쉬웠다. 퍼레이드 시작시간에 맞춰 우리는 행성인 부스로 돌아와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역시 이번에도 차별선동세력들은 퍼레이드 차량을 막아섰고, 퍼레이드 시작이 늦춰졌다. 이 와중에 또 시비를 걸고 사진을 허락 없이 찍는 차별선동세력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돌발행동도 퍼레이드를 향한 우리 열기와 퍼레이드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퍼레이드 도중 계속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처럼 인분을 끼얹는 것은 아닐까, 염산이나 황산이나 쓰레기를 던지면 어떡하나.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어떤 차별선동세력 아저씨가 "퀴어가 마신 물을 마시면 전염된다" 고 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물을 뿌린 사람 역시 없었다. 하지만, 거리에 그들의 구호가 적힌 팸플릿이 더러 있었다. "청소년들이 바텀알바 3만원을 받습니다! 근절해야 합니다!" 같은 것도 있었다. 예전에는 10만원이라고 하더니 3만원으로 줄은 것을 봐서, 이 모든 게 불경기 때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퍼레이드는 굉장히 길었다. 두 시간 조금 넘게 걸었다. 이 와중에도 차별선동세력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따라오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오늘을 위해 따로 운동을 하나보다. 어떤 아저씨는 삿대질을 하며 "환상에서 깨라"고 말했는데, 계속되는 외침에  "싫은데~ 안할건데~"라고 대꾸했더니 아저씨는 기가 찬 듯 혀를 끌끌 찼다. 유치함에는 유치함에 대응해야지 어쩌겠는가. 또다른 아저씨는 뭐라고 마구 고함질렀는데 목소리가 너무 걸걸하고 쉰 나머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참 애처로운 모양새였다. 그나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할렐루야!" 밖에 없었다. 메가폰을 들고 "대구 시민 여러분 깨어나십시오!" 라고 부르짖던, 목사로 추정되는 분도 있던데 정장을 입고서도 계속 외쳐대는게 더워보였다. 이분은 순간이동을 하시는지 저 뒤에 있다가도 앞에 나타나셔서 메가폰을 잡고 일장연설을 했다. 성력이 가득 넘치면 마법을 부릴 수 있나 보다. 한 여자분은 "아직 건강할때 회개하라!"와 비슷한 글이 써진 종이를 들고 주문처럼 성경을 외며 우리를 잡기도 하고 계속 외쳐댔다. 그 외에도 "건강한 가족은 건강한 남자와 건강한 여자로 구성됩니다!"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나는 이미 건강하지 못하니 제외된건가 하고 혼자 웃었다. 흔한 HIV/AIDS 혐오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창현은 "여러분 HIV/AIDS보다 전 관절염이 더 무섭습니다! 관절염은 치료도 없어요! 이렇게 있으시면 관절염 걸려요!" 하고 공중보건 설교를 했다. 이외에도 재치있는 반응이 많았다. ‘에이즈 세금폭탄’ 어쩌고 관련한 글귀에는 "탈세는 나빠요 교회세를 내세요" 라고 사과가 웃으면서 말했고, 그 더위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게다가, 아이의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다)에겐 "아동학대!"라고 고함지르기도 했다. 퐁퐁은 "한국은 저출산 1위 국가입니다 동성애 절대반대"라는 피켓을 든 사람에게 "저출산의 원인은 여성혐오 때문이에요! 공부를 하고 인권감수성 관련한 책을 좀 읽으세요! 제발 좀!"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우리는 헐레벌떡 짐을 싸고 버스로 향했다. 원래는 7시에 떠날 버스였지만  퍼레이드가 마무리된 시간이 7시였다. 나와 사과, 퐁퐁은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단체사진을 찍지 못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탄 채, 졸면서 서울로 향했다. 서울 퀴어퍼레이드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 대구 퀴어퍼레이드. 내년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오고 싶다.